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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중학교 학생들이 합동분향소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선유중학교 학생들이 합동분향소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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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볼 때도 슬펐지만, 현장에 와보니 그 정도가 확연히 달랐어요. 생각보다 상황도 심각한데 이걸 학교 친구들한테 전하려면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선유중학교 3학년 남연빈(16)양은 한 손에 비디오카메라를 쥔 채로 단원고 언덕길을 내려오며 "정말 잘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재차 중얼거렸다. 함께 온 같은 학교 학생 6명도 그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몇몇 손에는 아직도 눈물을 닦던 휴지가 말려 있었다.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선유중학교는 세월호 사고 1주기인 오는 4월 16일, 교내에서 학생들을 주축으로 자체적인 추모 행사를 열 예정이다. 행사의 핵심은 직접 만든 세월호 다큐멘터리 영상을 학교 학생들과 함께 보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세월호 사고를 잊어가고 있으니 자신들부터 제대로 기억해보자는 취지다.

선유중학교 학생회는 다큐멘터리 취재를 위해 지난 21일 오후, 3명의 인솔교사와 함께 직접 안산 곳곳을 찾고 유가족들을 만났다. 겨울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완연한 봄 날씨였지만 학생들은 거의 웃지 못했다. 4시간 동안 안산 4·16 기억저장소, 단원고 희생자 교실, 유가족들이 있는 합동분향소를 거치면서 고민 어린 표정은 더욱 깊어졌다.

"세월호 사고 잊지 않도록 다큐 만들어서 친구들 보여 줄려고요"

장동원 생존자 가족대책위 대표가 학생들에게 세월호 사고와 단원고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동원 생존자 가족대책위 대표가 학생들에게 세월호 사고와 단원고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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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세월호 다큐멘터리는 우연한 계기로 기획됐다. 학생들과 함께 온 이금자 교사는 "처음 기획부터 세부 구성까지 전적으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했다"면서 "교장 선생님께도 직접 찾아가서 행사를 설득하는 등 열의가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 언론에서 길에서 중학생을 붙잡고 3·1절을 읽어보라고 했더니 '삼점일절'이라고 읽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나 봐요. 그런데 그게 알고 보니 우리학교 학생이었다는 거죠.(웃음) 학생회 집행부 중 한 명이 창피하다면서 학생들이 기억해야 할 역사적 기념일에 대해 잊지 않도록 제대로 알리는 일을 하자고 했어요."

학생회 집행부 학생들은 자체 회의를 통해 4월의 '기억꺼리'로 세월호 참사를 정했다. 만장일치였다. 친구들 중 '일간베스트' 등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도 염두에 뒀다.

처음 이 작업을 제안한 이서연(15)양은 "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느냐"고 묻자 "세월호 사고가 많이 잊히고 있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무엇을 보고 세월호 사고가 잊혔다고 판단했느냐"는 질문에는 "SNS에 세월호 관련 얘기가 나오는 게 현저히 줄었고 뉴스에도 세월호 관련 얘기는 거의 사라져서 그렇게 생각했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학생들의 결심을 들은 학생회 담당 교사들은 세월호 기억저장소가 마련한 '세월호 기억순례'를 체험해볼 것을 제안했다. 세월호 사고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지난 14일부터 참가신청을 받고 있다. 일반인들이 안산 곳곳을 걸으면서 유족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주 내용이다. 

지난 1년 동안 뉴스를 통해 세월호 사고를 접해온 학생들은 사뭇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또 피해 학생들이 다니던 단원고등학교를 둘러보고 유가족들을 만난다는 일정에 상당히 긴장하는 눈치였다.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이지만 7명 모두가 교복을 입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금자 교사는 "당연히 사복을 입고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느냐'고 의견을 맞춘 것이라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다들 우리처럼 꿈이 있었을 텐데... 생각하니 슬픔 밀려와"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책상. 가족과 지인, 시민들이 가져다놓은 물품들이 놓여있다.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책상. 가족과 지인, 시민들이 가져다놓은 물품들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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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피해자들이 쓰던 2학년 교실 복도는 지인들과 시민들이 붙여놓은 색색의 쪽지들로 빼곡했다. 복도 맨 안쪽의 2학년 1반부터 둘러보던 선유중 학생들은 교실에 들어선 지 몇 분 만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화면으로 보던 뉴스와 직접 눈에 들어오는 실제는 움직이는 감정의 폭이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시선을 옮기며 교실 책상 위, 복도 벽, 창문 위에 빼곡히 붙은 생면부지의 쪽지와 편지를 꼼꼼히 읽었다.

흐느낌은 이따금 울음으로 변했다. 변지현(15)양은 "다들 우리처럼 꿈이 있었을 텐데 그걸 전혀 이뤄보지 못하고 죽은 것 아니냐"면서 "그걸 생각하니 갑자기 슬픔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2학년 1반부터 10반까지 피해 학생들의 책상에는 꽃과 편지, 초콜릿, 과자 등이 빼곡했다. 꽃은 유가족들이, 나머지는 지인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찾는 사람이 많아 지난해 말부터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허니버터칩'도 눈에 띄었다. 이날 단원고 현장 설명을 맡은 장동원 생존자 가족대책위 대표는 "허니버터칩은 시민들이 구해서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게 좀 구하기 힘든 과자인가 봐요. 얼마 전에는 여기에 온 아이들 몇 명이 저걸 뜯어먹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사람들이 교실에 자유롭게 오는 것을 좋아하는데 생존학생들은 이 공간이 훼손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거든요."

단원고 피해 학생들의 교실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사고 이후 이 학교 학부모들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문제 중 하나였다. 유가족들은 보존을 희망했지만 다른 학부모 중 일부가 학습 환경 등을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교실을 보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은 이재정 경기교육감의 결단 때문이었다. 장 대표는 "이재정 교육감이 '아픔도 교육이다'라는 말로 설득했다"고 말했다.

과자 얘기에 몰입하던 선유중학교 학생 중 한 명이 다음 교실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희생자 책상 중 과자가 한 개도 놓여있지 않은 책상이 있었던 것. 이경빈(16)군이 "제가 이 책상에 과자를 대신 놔도 되느냐"고 묻고 승낙을 받자 다른 학생들도 일제히 가방을 열고 과자를 꺼냈다.

이군이 꺼낸 과자는 그가 이날 점심 대용으로 산 것이었다. 이군은 "과자를 항상 가지고 다니느냐"고 묻자 "오전에 봉사활동을 하고 바로 오느라 밥을 못 먹었는데 다른 친구들도 그렇다고 해서 다 함께 편의점에 들러 과자를 샀다"면서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유가족 "전교생 볼 수 있게 실종자 9명 얘기도 넣어주세요"

선유중학교 학생들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선유중학교 학생들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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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중 학생들이 만난 세월호 피해가족들은 학생들에게 세월호 사고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장동원 대표는 "(세월호 사고 처리는) 다 끝난 거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힘들다"면서 "따져보면 끝난 게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정한 치료지원 기간은 5년이에요. 외상치료는 1년만 받을 수 있고 다른 치료지원과 중복도 안 되게 해놨어요. 지금 생존자들은 스트레스성 피부병, 호흡기 질환 등에 시달리느라 적게는 1개, 많게는 8개 병원에 다니는데 거기에 대한 지원도 안 되고 있어요."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유가족 최순화씨는 선유중 학생들이 만드는 다큐멘터리를 학교 학생들과 함께 본다고 하자 반색하며 "전교생이 몇 명이냐"고 물었다. 이경빈군이 "600명이다"라고 답하자 최씨는 "그럼 600명이 볼 수 있게 실종자 9명과 선체 인양에 대한 부분도 꼭 넣어 달라"고 당부했다.

선체 인양은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 9명의 시신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최근 기자회견, 청와대 앞 1인 시위 등을 통해 선체 인양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 일부에서는 비용을 문제 삼으며 인양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했다. 최씨는 "기성세대에게는 희망을 찾아볼 수 없지만, 학생들에게는 '진실을 그대로 전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학생들의 취재는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마무리됐다. 그들은 분향소 안에 들어가 국화꽃을 들었지만 300여 명의 영정 앞 어느 곳에도 선뜻 꽃을 내려놓지 못했다. 세월호 피해가족들의 부탁이 상당히 무겁게 다가온 눈치였다. 그들의 다큐멘터리는 오는 4월 16일에 방영된다.


태그:#세월호, #유가족, #선유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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