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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란 표현은 쓰지 않겠다. 진정으로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 나이 열일곱. 막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겨울 무렵, 나는 그들을 처음 보았다. 다니던 교회에서 1년에 3~4번쯤 하는 봉사활동에 고등부가 참여하게 되면서였다. 휴게실에서 맘껏 공짜 탁구를 칠 수 있다는 이유로 교회에 다니던 내겐 거추장스런 일이었으나 별달리 할 일도 없었기에 형들을 따라 나선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봐야 미리 준비한 김밥과 음료를 서울역 노숙인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출발 전, 각자의 역할과 주의사항 따위를 전해 들으며 나는 낯선 이에게 김밥 한 줄을 건네는 게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겠구나 하고 걱정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일행을 싣고 온 차가 김밥 한 상자와 함께 나를 서울역 광장에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얼룩진 얼굴, 초점 없이 흐린 눈동자, 박스 위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고약한 인상의 사람들에게 김밥 한 줄을 건네며 말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이제껏 내가 단 한 번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일이 없으며 그런 상상조차도 해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누워 있는 노숙인을 골라 그들 곁에 김밥과 음료를 내려놓고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김밥은 많게만 느껴졌고 위험해 보이지 않는 노숙인은 적어서 한참을 헤매고서야 할당 받은 양을 거의 채울 수가 있었다. 나는 미처 나누지 못한 김밥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버려둔 채 도망치듯 차에 올랐다. 그렇게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고 나는 한동안 스스로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 날 내가 확인한 거라곤 그들이 내게 이방인이었고 그들에겐 나 역시 그럴 것이란 사실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그들을 잊고 살았다. 그들과 나는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며 다시는 엮일 일이 없다는 듯이. 이것이 노숙인과 관련한 나의 유일한 기억이다.

편견을 깨부수는 숭고한 경험의 기록

책 표지
▲ 질병과 가난한 삶 책 표지
ⓒ 청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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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노숙인을 무능하고 나태하며 무절제하고 폭력적이라고 여긴다. 노숙인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조차도 그들을 자신과 같은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노숙인 쉼터가 건립될 때마다 부닥치는 지역주민의 반대 여론, 역사나 공원 등에서 노숙인을 몰아내려는 목소리를 종종 듣곤 하지만 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 이러한 편견을 깨부수는 책이 있다. 노숙인 역시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며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프고 병든 부분을 돌아보는 것임을 일깨우는 책이다.

지난 십수 년간 '길 위의 의사'로 불리며 노숙인을 돌봐온 내과의사 최영아씨의 책 <질병과 가난한 삶>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떠올렸고 그 때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마리아 수녀회 도티기념병원 내과과장이자 비정부기구 마더하우스의 대표로 재직 중인 저자는 2001년 내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이래 지난 14년 동안 의료보험이 없는 가난한 환자들을 돌봐왔다. 그동안 그녀가 거친 병원은 청량리 다일천사병원, 영등포 요셉의원, 서울역 다시서기의원, 마리아 수녀회 도티기념병원 등인데 하나같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병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저자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향한 세상의 왜곡된 시선이 변화하길 바라면서 자신의 석사논문을 바탕으로 이 책을 꾸렸다고 말한다. 가난과 질병으로 인한 모든 고통이 노숙인 한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의 왜곡된 인식이 노숙인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왔으며 지금도 미치고 있기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장이라 하겠다.

저자는 '노숙인(homeless)'에 대한 정의로 논의를 시작한다. 책에 따르면 노숙인은 가정과 일정한 주거가 없는 사람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열악한 환경에 내몰려 생활하는 이를 뜻한다. 저자는 14년 동안 노숙인 진료경험과 철저한 자료조사, 외국 사례와의 비교연구를 통해 한국의 노숙인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저자는 노숙인 문제가 우리사회의 가장 아프고 약한 부분이기에 질병으로부터 몸을 치유하듯 이 문제를 고침으로써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 사회의 노숙인은 약 22만 명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저자는 노숙인이 이같이 늘어나게 된 이유로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기준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황폐해진 인간성을 들고 있다. 기존의 인간적 가치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가정과 사회에서 실패를 맛본 이들이 자존감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회전문 현상이 노숙인 문제 해결을 막는다

책에 따르면 한국 노숙인 대부분은 거리, 무보증 월세와 일세방, PC방, 사우나, 한시적인 자활근로와 병원생활까지 여러 주거형태를 전전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회전문 현상'이라 정의하는데 오랜 관찰경험을 통해 노숙인 대부분이 이 같은 회전문의 한 지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진단한다.

노숙인은 열악한 주거환경, 어려운 경제여건, 질병 및 장애 속에서 만성적인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간다는 것이다. 책은 다양한 통계지표를 통해 노숙인이 회전문 현상을 겪으며 다양한 질병에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증명하고 이들이 노숙인 진료시설 및 치료시설을 전전하다 죽음을 맞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현재 한국에는 노숙인 종합지원센터, 일시보호시설, 자활·재활·요양시설, 급식시설, 진료시설, 쪽방 상담소, 그 밖의 노숙인 지원 서비스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 단체 사이의 상호협력과 연결 시스템이 부재할 뿐 아니라 정부의 '생색내기'식 행정까지 더해져 노숙인 문제의 근본적 대안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노숙인의 지역사회 재정착을 위해서는 주택을 비롯해 다양한 물품과 서비스를 확보하고 이들 개개인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노숙인 무료 급식소 모습.
 노숙인 무료 급식소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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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정부가 국가예산으로 지원하는 노숙인의 머릿수를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한 사람을 장기적으로 지원하는 걸 기피하고 있는데, 이것이 부정적 효과를 낳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이 같은 정책이 회전문 현상을 반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숙인이 시설에 입소하더라도 퇴소 후 민간 임대주택이나 공공 임대주택으로의 상향 주거이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을 지적한다. 회전문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을 끊어내지 못하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뉴욕 CGC(Common Ground Community)의 지원주택 프로젝트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뉴욕의 낡고 오래된 건물과 쉼터를 개·보수 하여 만성적 노숙인에게 영구적 주거공간과 공동체를 제공해온 이 사업은 노숙인의 사회 복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주변지역 노숙인 관련 범죄를 현저히 감소시키고 다른 노숙인 지원 사업에 비해 소요되는 비용까지 줄이는 큰 성과를 얻었다. 한국의 노숙인 관련 정책이 일회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책은 후원금과 국가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숙인 단체들이 서로 경쟁하며 긴밀한 소통과 분담작업을 소홀히 하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정부와 민간의 영역 모두에서 전면적인 수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노숙인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내재된 인종주의적 인식

저자는 소록도 자혜의원과 형제복지원의 사례를 들며 한국사회에 인종주의적 사회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는 이러한 인종주의가 같은 나라, 동일한 공동체 안에서도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해 약자를 차별하고 격리하도록 영향을 미쳐왔다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부터 폭압적인 독재정권을 거치며 대중들에게 인종주의적 인식이 학습되었으며 이로부터 노숙인을 비롯해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암묵적으로 유지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1960년대 어느 대학병원이 노숙인들을 무료로 치료해 준다고 속여 데려와서는 장기이식이 필요한 환자에게 노숙인의 장기를 떼어 수술한 사례를 증언한다. 그리고 이 병원이 현재까지도 장기 이식분야에 있어 선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병원이 이와 같이 폭력적인 행위를 감행했고 또 지금까지도 멀쩡히 영업하는 게 가능했을 만큼 우리 사회에 인종주의적 편견이 짙게 깔려 있다는 주장이다. 불편하지만 선뜻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적나라한 비판이라 하겠다.

오랜 기간 노숙인을 진료해 온 전문의의 글답게 상세한 통계와 적확한 현실인식이 돋보였다. 오늘날 한국의 노숙인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정부와 민간의 노숙인 관련 사업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핀 시도가 의미 있게 느껴졌다. 자신의 지난 삶을 통해 완성한 이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가 노숙인을 사회의 낙오자로만 바라보는 건 그들에게도, 나아가 우리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은 노숙인 문제의 근본적 목표가 격리와 수용이 아닌 노숙인의 공동체 재합류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이를 위한 노력만이 우리 사회를 보다 선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나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부류의 환자들은 자신을 도우려고 다가오는 사람들(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공무원)을 훈련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 의사는 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많은 질병으로 인해 성격이 좋지 않아 진료하기 힘든 환자들이 똑똑하고 친절한 의사로 훈련시켜 준다. 의사소통의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의사로 하여금 인내를 배우게 하고 사람 간 소통하는 법을 배우도록 해 주는 것이다. (물론 의료인 측에서 이를 통해 배우기를 계속 거부하면 평생 못 배울 수도 있다.)

이런 가난한 환자들의 영향력은 의사들뿐만 아니라 이들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영역의 사람들에게도 작용한다. 물론 좋은 영향도 있고, 나쁜 영향도 있다. 이 연약하고 불행하고 아픈 사람들의 영향력은 실로 지대하다. 마치 우리 몸의 가장 아프고 약한 부분이 생기면, 온몸이 신경을 쓰게 되고 온 정신이 그 아픈 부위에 골몰하면서 몸 전체가 함께 아픈 것과 같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가장 약하고 아픈 부위가 건강해지기 전까지는 사회 전체가 건강하고 온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프고 약한 그룹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 본문 204쪽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질병과 가난한 삶>(최영아 지음 / 청년의사 펴냄 / 2015.02. / 2만 원)



질병과 가난한 삶 - 노숙인을 치료하는 길 위의 의사, 14년의 연구 기록

최영아 지음, 청년의사(2015)


태그:#질병과 가난한 삶, #최영아, #청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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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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