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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스님은 참 돼지처럼 보입니다."
"제 눈에 대왕께서는 부처님으로 보입니다."

이성계의 농에 무학대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이성계에게 결정타를 날리는 한마디를 더한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이지요."

미얀마에서 나는 살아 있는 부처를 만나고 왔다. 미얀마 거리 곳곳에서는 마치 우리나라 교복 입은 학생을 보듯이 수많은 가사 입은 붓다들이 있다. 이들을 보면서 이곳이 붓다의 나라라는 것을 실감한다.

대도시 양곤 시내를 둘러보면서 우리나라라면 산속 절간에서나 볼 수 있는 풍광이 생경스러웠다. 미얀마를 표현하는 말이 많겠지만 그 중에서 나는 '붓다의 나라'라는 말을 선택하겠다.

소녀의 기도 소녀에게 붓다는 어떤 존재일까?
▲ 소녀의 기도 소녀에게 붓다는 어떤 존재일까?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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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와 미얀마 미얀마 사람들에게 불교는 삶이다.
▲ 붓다와 미얀마 미얀마 사람들에게 불교는 삶이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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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붓다의 나라다

불교의 시발지는 인도다. 하지만 현재의 인도는 불교의 나라라기보다는 힌두교의 나라에 가깝다. 불교는 인도에서 출발했지만 정착하여 현재까지 원형 가깝게 지켜온 곳은 미얀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의 발생지는 아니지만 불교의 나라는 미얀마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미얀마에서 불교란 종교를 넘어선 생활이고 삶 자체다. 이들이 믿는 불교는 우리나라의 대승불교가 아닌 상좌부불교(Theravada 테라바다 불교)다. 불교원칙론에 가까운 교리에 따라 이들은 현세의 삶은 더 나은 세계로 가기 위한 일시적 과정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현세에서 물욕이나, 부지런한 생산활동, 성공 등은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세에서는 더 좋은 세상을 가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보시하고 공양하여 공덕을 쌓는 것이 큰 가치를 갖는다. 이런 가치관 때문에 이들에게 보시나 공양은 생활이 되어 있고 현세의 물질적 풍요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아침 탁발 공양하는 모습을 보면 스님들의 뻣뻣한 자세가 좀 낯설기도 하다. 아침 일찍부터 공양시간을 기다려 줄지어 걸어 가는 스님에게 사람들이 밥이나 과일 등을 공양하면 감사의 표시라도 할 법한데 스님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뻣뻣하게 걸어 간다. 이유를 물어보니 상좌부불교의 원리로 보면 현세에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스님이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스님이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원리 때문인지 미얀마 사람들은 도움을 받고도 감사의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 중 내가 만나본 미얀마 사람들은 젊은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관광객들을 많이 상대해 봐서 그런지 몸짓 눈빛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리라.

미얀마 스님들 (좌)어느 곳을 가든 승복 입은 스님을 볼 수 있다. (우) 줄지어 아침 탁발 공양하는 스님들
▲ 미얀마 스님들 (좌)어느 곳을 가든 승복 입은 스님을 볼 수 있다. (우) 줄지어 아침 탁발 공양하는 스님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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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스님 다른 대우, 폰지와 띨라신

미얀마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머리를 깎고 승려 생활을 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회 구성체로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대부분 남자아이가 10세 전후가 되면 출가의식을 치르게 되는데 이를 '신쀼(Shin Pyu)'라고 한다. 여행 중에 곱게 차려 입은 아이를 트럭에 태우고 요란하게 시내를 질주하는 차량을 볼 수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신쀼의식이었다.

이렇게 출가한 소년 스님들은 1개월~6개월 정도 부모와 떨어져 사원에서 탁발 수행을 하며 불교 교리와 예절을 배우게 된다. 양곤 달라지역 사원을 방문했을 때 천진난만하게 뛰어 노는 꼬마스님들을 보니 아무리 스님이라도 아이는 아이였다. 이러한 신쀼의식은 대부분 남자아이 중심으로 하는데 이는 미얀마 불교의 철저한 남성중심적인 불교관 때문이다. 미얀마 불교에서 여성은 전생에 공덕을 쌓지 못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실제 미얀마 정부가 관리하는 공식 스님은 남성만 될 수 있다.

미얀마는 1980년 불교정화법을 만들고 각 지방 단위에 따라 위원회를 만들어 승려를 등록하게 했다. 대략 정부가 관리하는 스님은 46만 명 이상(2001년 기준)이라고 하는데 정식 스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고시처럼 시험을 쳐서 통과해야 한다. 따웅지 시내를 헤매던 중 마침 승려 자격시험(?)을 치는 모습을 봤는데 가사를 입고 진지하게 시험 치는 젊은 스님 고시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자격을 갖춘 스님을 '폰지(Pongyi)'라고 부른다. 이렇게 미얀마 남자 스님들은 사회적으로 최고 대우를 받는다. 이에 비해 미얀마에서 '띨라신'이라고 부르는 여자 스님들의 대우는 이와 다르다.

미얀마 거리를 걷다 보면 분홍빛 가사를 걸친 스님들을 보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비구니(여성 스님)들이다. 이들은 정식 스님은 아니지만 불교에 귀의하여 수도자로 살아 간다. 주로 낮에 땡볕을 걸으며 탁발하는 모습을 보니 띨라신들은 상대적으로 너무 차별하는 것 같아 종교관을 떠나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소년 스님들 신쀼의식을 마치고 단기 출가한 소년 스님들-천진난만한 모습이 아이는 아이다.
▲ 소년 스님들 신쀼의식을 마치고 단기 출가한 소년 스님들-천진난만한 모습이 아이는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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띨라신(비구니) 폰지(남자스님)와 다르게 수도자 생활하는 띨라신(비구니), 대우 받는 폰지에 비해 모습이 팍팍해 보였다.
▲ 띨라신(비구니) 폰지(남자스님)와 다르게 수도자 생활하는 띨라신(비구니), 대우 받는 폰지에 비해 모습이 팍팍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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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티로카 스님을 만나다

미얀마를 떠나기 전날 우리는 양곤 시내 관광일정을 잡았다. 미얀마의 얼굴이라는 쉐다곤파고다를 찾았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미얀마의 고승 우티로카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쉐다곤파고다를 대충 둘러보고 한 켠에 미얀마 사람들이 앉아 쉬기도 하고 기도도 하는 장소에 앉아 있었다. 그 때 옆에서 누가 영어로 뭐라고 말을 걸었다. 가사를 입은 미얀마 노스님 이었다.

온화한 미소를 마주한 순간 노스님의 기운이 남달라 뭔지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도 한국을 잘 안다며 더욱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30여 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워낙 반 토막짜리 짧은 영어 실력이라 스님의 고귀한 말씀을 다 담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언듯언듯 들리는 단어와 스님의 바디 랭귀지에 온 신경을 곧추 세우고 이해하려고 하니 대충은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뭐 이것도 순전히 내 추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티로카 스님은 미국 유학까지 갔다 온 유학파 스님이고 우리에게 미얀마 불교의 의미를 조금 설명해 주었다.

특히 몇 번을 가슴에 손을 얹으며 'mind(마인드)' 'spirit(스피릿)'을 강조하셨는데 아마도 불교의 깨달음과 정신수양을 말씀하신 것 같았다. 각자 이해하는 방식으로 우티로카 스님의 즉문즉설을 경험한 우리는 우티로카 스님과 기념 촬영도 하고 주소와 명함도 교환했다. 물론 다시 만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지만 순간의 만남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 위함이었다. 기념 촬영을 하고 헤어지려는데 우티로카 스님이 우리를 잡으며 한마디 한다.

'Donation(도네이션, 기부)!'

아하! 우리는 스님에게 5천짯을 내밀었다. 그런데 돈을 받지 않는 거였다. 뭐라고 다시 말했는데 우리는 알아 듣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두 손으로 드리니 그때서야 마땅찮은 표정으로 돈을 시주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미얀마에서 스님에게 시주나 공양을 올릴 때는 반드시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공손하게 공양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5천짯을 적선하듯 내밀었으니 스님이 약간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 혹시 미얀마 여행 중에 스님에게 시주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공손하게 두 손으로 올리기 바란다.

우티로카 스님1 노스님에게 풍기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 우티로카 스님1 노스님에게 풍기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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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티로카 스님2 직접 써준 스님의 주소(좌), 기념 사진도 찍었다.
▲ 우티로카 스님2 직접 써준 스님의 주소(좌), 기념 사진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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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초코파이의 유혹에 빠져 '홍의(弘義)'라는 수계까지 받았지만 사실 나는 무교로 살아왔다. 미얀마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 든 불교를 보면서 종교적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종교는 절간이나 교회, 성당 같이 정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삶 속 실천으로 있어야 진정한 종교라는 생각이다.

미얀마 여행 내내 눈을 들면 보이는 것은 모두 붓다의 흔적이고 붓다의 가르침들이었다. 보름 남짓 짧은 기간 동안 미얀마 사람들의 삶 속에 수백 년간 녹아 든 붓다의 얼굴을 다 볼 수 없었지만 미얀마가 불교의 나라라는 것은 확실하게 각인 되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제목과 겹쳐 '붓다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가 인도의 동쪽으로 간 까닭은 붓다의 깨달음이 미얀마에 뿌리를 내리기 위함 아니었을까?

'미얀마는 붓다의 나라다.'

덧붙이는 글 | ※미얀마어 표기는 현지어 발음 중심으로 표기하였고 일부는 통상적인 표기법에 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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