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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당 앞에서 뿌린 전단
 대구시당 앞에서 뿌린 전단
ⓒ 변홍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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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좀 없어요? 있으면 내놔 보세요."

내 다이어리를 한참이나 뒤적이던 대구 수성경찰서 수사과 지능범죄수사팀 A 경사가 말했다. 다른 여섯 명의 경찰들도, 뭔가 꼬투리를 잡아보겠다고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책이며 노트, 종잇조각들을 뒤적인다. 물론 A 경사의 말은 농담이겠지만, 도대체 뭐가 있겠나?

나는 이미 지난달 16일 오후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에 '박근혜 비판 전단'을 뿌렸다는 사실과 사진을 SNS 등을 통해서 공개했다. 개인 성명서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밝혔듯이, 전단을 뿌린 이유 역시 간단하다. "대한민국은 박근혜의 나라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작은 외침이다. 그리고 "공화국 시민은 누구라도 대통령을 공공연히 비판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숨길 것도, 거리낄 것도 없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 같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인 '표현의 자유' 행사가 마치 범죄인 양 호들갑을 떨면서, 결국 지난 3월 12일 이른 아침, 내 집과 아내의 출판사 사무실을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야단법석을 떨면서 그들이 챙겨간 것은 결국 낡아빠진 내 휴대전화와 전단 300여 장이다(아, 전단을 담아놓았던 상자도 압수품목에 들어 있다).

지금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한 혐의도 확정 못하고 있다. '경범죄처벌법 위반'에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형법 제309조)'으로 출석요구서의 혐의 내용이 바뀌더니, 이번 압수수색 영장에는 다시 '명예훼손(형법 제307조)'으로 되어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처벌의 명분을 만들어, 정권 비판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지인가? 

게다가 뚜렷한 명분도 없다 보니, 무리수를 두게 된다. 과잉수사와 위법, 인권침해를 낳게 된다. 가령 앞서 3월 9일 오전에는 아내가 운영하는 출판사 사무실에 영장도 없이 찾아와서는, 사무실 내부를 캠코더로 촬영하고, 관련도 없는 직원의 얼굴까지 찍어 갔다. '주거침입'이자 명백한 '인권침해'다.  

또 압수수색 당일인 3월 12일 아침에는 영장제시 문제를 놓고, 한 시간 가량 실랑이를 벌였다. '사유는 별지에 기재'라고 되어 있는데, 그 '별지'를 보여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영장을 사진으로 찍어 두겠다고 했더니,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모두 법적 근거 없는 소리이고,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이다. 결국 영장 내용을 모두 확인하고, 하나하나 묻고 따지다 보니, 대문을 열어 주기 전에 한 시간이나 걸렸다(이 과정은 우리 가족이 모두 동영상으로 촬영해 두었다).

극에 달한 박근혜 정권의 실정, 한계에 이른 시민 분노

영장 발부의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박근혜 비판 전단'의 배포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휴대전화와 메모 등 각종 기록물을 압수하겠다는 것이고, 남은 전단을 배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잔량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전단 배포의 '경위'가 궁금하다고? 그건 박근혜 대통령에게 물어 봐라. "어쩌다가 당신을 비판하는 전단이 이렇게 자꾸 뿌려지고 있는 거냐"고. 다른 것은 다 접어 두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불법적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져 실형을 선고 받은 마당에, "국정원 신세를 진 바 없다"고 큰소리치던 사람이 그 범죄의 '장물'이나 마찬가지인 대통령직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민주공화국에서 용납될 수 있는 일이냐고, 그런 '경위'로 자꾸 시민들이 이렇게 전단을 뿌려대는 거 아니냐고, 경찰은 국민의 입장에서 묻고 따져야 하는 거 아닌가?

남아 있던 전단 300여 장 압수해서 확산을 방지하겠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어느 보수단체가 경찰의 수사를 촉구하면서, 방치하면 "대통령 비난 삐라 살포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지만 그 예측은 분명히 맞아떨어질 것이다. 그것은 다른 누구의 책임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이 극에 달해 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박근혜 비판 전단'이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도시와 마을에서 배포되고 있는 것은, 위헌적이고 반민주적인 현실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는 것에 그 원인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이미 내가 배포한 전단에서 밝혔듯이, 수사해야 할 것은 민주시민이 아니라, 불법선거로 대통령직을 차지하고, 진실을 호도하기 위해 '종북몰이'로 헌정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나라 주인인 국민의 정당한 비판이 명예훼손?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전단이 연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 뿌려졌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박근혜 정부의 담뱃값,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 등 세금 정책을 규탄하는 전단이 살포되자,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이라는 명의로 뿌려진 해당 전단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약속했던 공약과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부산, 신촌 이어 강남에도... 박 대통령 규탄 전단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전단이 연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 뿌려졌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박근혜 정부의 담뱃값,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 등 세금 정책을 규탄하는 전단이 살포되자, 거리를 지나던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이라는 명의로 뿌려진 해당 전단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약속했던 공약과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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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가소롭다. 실정법의 법리를 따지기 전에,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먼저 훼손될 수 있는 '명예'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개인 박근혜'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직을 차지하고 있는) 박근혜'와 그의 실정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명예'는 과연 누가 부여하는 것인가. 공화국의 시민 말고 그 명예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따로 있는가? 헌법 이외에 그 권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근거가 따로 있는가?

그런데 위헌적인 불법선거를 통해 대통령직을 차지한 자에게,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정당한 비판을 하는 것이 어떻게 '명예훼손'이 될 수가 있는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면, 경찰의 논리는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억지이고, 명백한 정치 탄압이다. 

자칫하면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서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편을 들어 주더니, '박근혜 비판 전단' 배포로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도 입을 다물고 있는 껍데기뿐인 '국가인권위원회'에는 별로 기대할 것도 없겠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그런 식으로 고무줄처럼 마음대로 판단되고 적용되는 현실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 권력에 의해 검열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공화국 시민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지는 권리이자, 민주주의의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이다. 특히 자유민주국가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다른 기본적 인권과 비교하여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헌법재판소도 표현의 자유가 "민주체제에 있어서 불가결의 본질적 요소"임을 인정하고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민주사회의 기초이며,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을 위한 열린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민주정치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헌법재판소 1998. 4. 30 선고 95헌가16 결정 참고).

압수수색 소식에 날 응원해준 10대 동무들

"선생님, 힘내세요!"

지난 주말에 만난 청소년 인문학 모임의 10대 동무들이 압수수색 소식을 뉴스에서 보고 입을 모아 응원해 주었다. "부모님과 함께 '좋아요'를 누르고, 뉴스를 SNS로 공유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동무도 있었다.

전국에서 지인들뿐만 아니라 안면이 없는 수많은 시민이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옛 친구들도 안부를 물으며 성원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는 것 같아서 고맙다"고, 일요일 오후에 동네에서 만난 이웃들도 웃으며 술잔을 권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암울함과 퇴행을 한탄하는 목소리들도 적지 않지만, 달리 보면 우리 사회는 이만큼 자유로워지고 동료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눈에 띄게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이만한 '사건'이면 나는 아마도 어딘가로 끌려가 더 끔찍한 모욕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경찰이 과잉수사를 하면 할수록 그것을 조롱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불의한 권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이 모든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키우기 위해 싸워온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노력의 결실이다. 이 소중한 결실을 우리는 빼앗겨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투쟁하지 않으면, 그리고 우리 자신의 힘을 믿고 서로 조직하지 않는다면, 이만큼 확보해 놓은 자유조차 다시 잃고 말 것이다. 지금의 민주주의에 만족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비관만 해서도 안 된다. 한숨 쉬고 현실을 욕할 힘이 있으면, 차라리 전단을 뿌리고, 피켓을 들고, 데모에 참여하자.

"공화국은 특정인의 것, 혹은 특정 집단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이라는 사실을 부단히 확인하는"(조승래, <공화국을 위하여> 중에서) 깨어 있는 시민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주인들이다. '박근혜 비판 전단'이 지금 이곳저곳에서 계속 뿌려지고 있는 것은 이것을 선언하는 주인들의 정당한 행동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시인이자 <시와 공화국> 저자입니다.



태그:#박근혜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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