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양 감독의 <수춘도> 명나라 말기 숭정제의 직할 부대인 금의위 총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 루양 감독의 <수춘도> 명나라 말기 숭정제의 직할 부대인 금의위 총기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 조이앤 시네마

장첸과 류시시 주연의 <수춘도>는 여타 무협영화와 다르다. 등장인물의 현실적 고뇌와 갈등을 깊이 있게 다뤘다.

먼저 '무협영화'하면 떠오르는 것이 화려한 CG와 와이어 액션으로 만들어진 SF급 블록버스터다. 그러나 영화 <수춘도>는 이를 과감히 탈피하여 사실성을 강조한 검술 액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나라의 녹을 받는 '공무원'이 느끼는 출세욕(승진)과 가난한 처지를 비관하는 등 고민의 흔적이 느껴진다. 여기에 '엇갈린 사랑과 우정'이란 곁가지를 덧붙였다.

<수춘도>, 공무원 비리의 평행이론​

영화 <수춘도>는 2010년 <맹인 영화관>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던 루양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낯선 감독의 이 영화는 '역사 무협 극을 이렇게도 개조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특히 이 영화를 보며 딱 떠오르는 것이 '평행이론'이었다. 어찌 그리 지금의 상황과 똑같은지 말이다.

TV나 신문으로 보는 역대 총리와 장관급들의 청문회는 위장 전입이라든지 세금 탈루에 금품수수 등이 고구마 줄기처럼 끝이 어딘지 모르게 엮이어 나온다. <수춘도>에 나오는 인물들 역시 명나라판 '청문회'에 세운다면 공직자 자격에서 모조리 낙마할 사람들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 명의 금의위 총기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다보면 당시 금의위가 나라에서 받는 녹은 상당히 박봉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세 명의 금위의 총기들은 항상 가난에 허덕이며 돈과 승진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더불어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는 고급관리들의 부정축재나 매관매직을 일삼는 행태가 만연해 있음을 예견해 볼 수 있다.

영화 <수춘도>에서는 금의위 총기 역으로 나오는 '로검성', '심련', '진일천'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주요 인물로는 환관 '위충현', 그의 양자 '조정충', 금의위의 수장 '허대인', 마지막으로는 로검성 형제의 막내인 진일천을 따라다니며 협박을 일삼는 '정수'를 들 수 있다.

일단, 영화의 큰 틀을 이루는 인물인 위충현은 실존인물이다. 명나라 말기 황제 천계제 때의 환관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즉위에 오르자 쫓기는 몸이 되고 만다. 영화 초반 금의위 총기인 심련 앞에서 황금을 건네며 목숨을 부지한다.

영화 <수춘도> 특별출연이라지만 류시시(묘동)의 분량은 적지 않다. 또한 그녀이 억울하게 몰살당한 것도 금의위에 의해서였으며, 그를 구해주는 이 또한 금의위 총기다.

▲ 영화 <수춘도> 특별출연이라지만 류시시(묘동)의 분량은 적지 않다. 또한 그녀이 억울하게 몰살당한 것도 금의위에 의해서였으며, 그를 구해주는 이 또한 금의위 총기다. ⓒ 조이앤 시네마


위충현의 양자이자 동창의 실세인 조정충은 자신의 안위와 출세를 위해 양아버지인 위충현을 죽이라 명한다. 그러나 위충현이 살아 있음을 알자 몰래 접근하며 계략을 꾸미는가 하면, 숭정제에게 자신의 비리가 탄로 나자 미련 없이 명나라를 떠나 후금 사람이 된다. 금의위 수장인 허대인 역시 마찬가지다. 뇌물로 자리에 오른 그는 부하들에게 돈을 받아 승진을 시켜주고 죄수를 풀어주기도 하는 등 부패한 관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세 명의 금의위 총기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이들 삼 형제는 각기 다른 사정을 갖고 금의위에 들어온 의형제이다. 첫째인 로검성은 간부인 '백호'로 승진하기 위해 금의위 허대인에게 꾸준히 돈을 바친다. 둘째인 '심련'은 조정충의 명을 받고 의형제와 함께 위충현을 죽이러 갔다가 엄청난 황금을 받는 대가로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다른 사람의 시신을 불태워 위충현이라 속이고 금의위 바친 것이다. 막내인 '진일천'은 원래 도적 떼였는데 우연한 기회에 금의위 무사를 죽이고 대신 금의위 들어갔다. 신분을 속인 채 금의위 일을 하고 있으나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형 '정수'에게 꾸준히 돈을 쥐어 줘가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처럼 <수춘도>는 권력의 실세가 그 힘을 잃고 쫓기는 과정에서 현재의 검찰기관이라 할 수 있는 금의위 총기들의 이야기가 삽입되고, 그 실세가 아직도 막후에서 힘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 권력기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일상엔 그 크기가 많던 작든 간에 다양한 비리로 얼룩져 있다. 관료들 간의 청탁과 뇌물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그것이 과거로부터 관행처럼 행해지고 있어 누구도 도덕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한다.

돈과 권세에 눈이 먼 관리들의 욕망!

​극중, 심련이 위충현에게 거액을 받고 다른 사람의 시신을 보내어 위충현을 죽인 것처럼 꾸민다. 그러나 위충현의 시신이 거짓인 것을 눈치 챈 위충현의 양자 조정충으로부터 심련과 로검성, 진일천은 사지에 내몰리게 된다.

엄패위 저택에서 벌어지는 살인극은 돈과 권세에 눈이 먼 관리들의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금의위 수장과 조정충은 엄패위가 거세당과 한패거리라 누명을 씌우고 로검성 삼 형제에게 엄패위를 잡아오라 명한다. 그러나 이미 조정충과 엄패위의 아들인 엄준빈은 한통속인지라 로검성 형제가 엄패위의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금의위는 대문을 잠가 로검성 삼 형제가 엄패위의 집에서 싸우다 죽도록 계략을 꾸민다. 그리고 자객을 보내 로검성 형제 앞에서 엄패위가 활에 맞아 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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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춘도> 엄패위 저택에서 벌어지는 15분간의 혈투는 마치 망치 하나로 십수명의 적을 제압했던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떠오른다. 그리고 최근에 개봉했던 <킹스맨>에서 해리가 교회 안에서 저질렀던 인면수심 살육의 현장을 보는 듯하다. 이 짧은 장면은 각기 다른 검(로검성은 장검, 진일천은 쌍검)을 사용하는 형제들의 칼사위를 보여주며 그 재미를 더한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이 장면은 가감없이 사실감이 극대화되어 각기 다른 욕망에 눌린 자들의 분출점을 칼사위와 핏줄기에서 찾을 수 있다.

▲ 영화 <수춘도> 엄패위 저택에서 벌어지는 15분간의 혈투는 마치 망치 하나로 십수명의 적을 제압했던 <올드보이>의 최민식이 떠오른다. 그리고 최근에 개봉했던 <킹스맨>에서 해리가 교회 안에서 저질렀던 인면수심 살육의 현장을 보는 듯하다. 이 짧은 장면은 각기 다른 검(로검성은 장검, 진일천은 쌍검)을 사용하는 형제들의 칼사위를 보여주며 그 재미를 더한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이 장면은 가감없이 사실감이 극대화되어 각기 다른 욕망에 눌린 자들의 분출점을 칼사위와 핏줄기에서 찾을 수 있다. ⓒ 조이앤 시네마


이어지는 살인극! 로검성과 심련, 진일천의 뛰어난 무술은 엄준빈과 그의 휘하 무사들을 모조리 제압한 후 당당히 대문을 열고 나온다.

한편, 심련은 위충현을 살려준 대가로 받은 돈을 로검성과 진일천을 위해 사용한다. 금의위 수장인 허대인에게 가서 로검성을 '백호'로 승진시켜주고 자신들을 남경으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동생인 진일천을 따라다니며 협박하는 '정수'에게도 돈을 줘 더 이상 동생을 괴롭히지 말라 전한다. 그리고 심련 자신은 기생집에 팔려간 묘동을 빼내기 위해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데려온다.

그러나 로검성은 부쩍 씀씀이가 많아진 심련을 보며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심련과 로검성, 진일천은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경성을 떠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숭정제가 신임하는 '한광', 조정충 그리고 진일천의 사형인 '정수'에 의해 일이 틀어지기 시작하는데... ​

정신세계의 혼돈을 그린 무협 느와르

​<수춘도>는 한때 대한민국의 극장가를 점령했던 홍콩 느와르와 상당히 유사하다. 현대극으로 리메이크를 해도 전혀 낯설지 않을 주제이다.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주윤발과 장국영이 보여주었던 당시 젊은이들의 정신적 혼돈이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루양 감독은 무협 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하를 호령하는 절세 무공'이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설파하는 철학적 대사'를 나열하지 않고도 시대를 아우르는 무협 느와르를 만들어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명나라 말기 숭정제(17세기 초). 북쪽으로는 만주족이 세운 후금이 호시탐탐 대륙을 노렸고, 황제의 무능을 업고 ​나타난 환관들은 자기 입맛대로 나라를 주물러댔다. 대륙 남쪽에서는 이자성이 난을 일으켜 왕조의 안위마저 위태할 지경이었다. 거기에 17세기 전 세계적으로 지속된 기상악화와 천재지변으로 백성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가고 있었으니 당시의  시대상은 혼돈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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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춘도> 조정충과 한광 앞에서 불에 타버린 위충현을 보여주는 금의위 총기들. 그러나 위충현은 심련에게 막대한 황금을 주고 달아났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조정충은 세 명의 총기들을 죽이기 위한 계략을 세운다.

▲ 영화 <수춘도> 조정충과 한광 앞에서 불에 타버린 위충현을 보여주는 금의위 총기들. 그러나 위충현은 심련에게 막대한 황금을 주고 달아났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조정충은 세 명의 총기들을 죽이기 위한 계략을 세운다. ⓒ 조이앤 시네마


뿐만 아니라 황제의 직할 부대로서 금의위는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없는 죄를 만들어 내 일가를 몰살하기도 하고 능력과 자질보다 아첨과 허언을 일삼는 자들에게 관직을 내렸다. 그리고 환관들의 권력 거점인 동창은 숭정제가 즉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를 이어온 그 위세만큼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런 이유인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는 매우 의심이 많았다고 한다. 평소 검소하고 국정에 열심을 보인 숭정제는 가신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의심 병으로 인해 많은 신하들을 제거하는 불안한 심리를 드러냈다.

1630년에는 산하이 관에서 만주족을 방어하던 원숭환을 처형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 일은 명나라의 국운이 기울게 되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고 한다. 숭정제는 1644년에 결국 이자성에게 북경을 빼앗기고 목매달아 자살하고 만다. ​

권력자가 백성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가신들이 권력자 마음을 헤아린다​

영화 <수춘도>가 보여주는 사회적 배경이나 등장인물의 내적 갈등은 21세기 현재에도 전혀 다르지 않다. 권력자가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때 가신들은 권력자의 마음을 헤아리려 든다. 이때 권력의 서열화가 진행되고 관직은 출세를 위한 도구가 된다.

결론적으로 출세를 위해서는 개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향상시키는 것보다 실세에 줄을 대는 것이 더 빠른 길이 된다. 이런 현상은 자신을 경영하지 못하는 사람이 국가경영에 참여함으로써 나라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영화 <수춘도> 기녀인 묘동을 사랑하는 심련이 그녀를 기방에서 빼내오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나오는 장면이다. 기방에서 조정충과 대결을 벌인 그는 어깨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 영화 <수춘도> 기녀인 묘동을 사랑하는 심련이 그녀를 기방에서 빼내오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나오는 장면이다. 기방에서 조정충과 대결을 벌인 그는 어깨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 조이앤 시네마

눈이 내린다. 그녀는 심련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면 묘동을 향한 심련의 감정은 정말 사랑일까? 아님 금의위 명을 수행하기 위해 묘동의 집안을 몰살하고 어린 묘동을 기방에 팔아넘겨야 했던 짐을 덜기 위함이었을까? 어느 것도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단지 초점 없는 그의 눈만이 정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금의위 총기 삼형제와 조정충의 대결을 커다란 구도로 짚어낸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인 색감은 어둡다 못해 우울하다. 피를 뿜는 장면이 아니면 옛날 흑백필름으로 보일 정도다.

다만 심련이 지켜주는 묘동과 진일천이 사랑하는 정언이 등장할 때만큼은 화려하고 밝은 색감을 드러내준다. 이러한 극과 극의 색감은, 로검성 형제들이 금의위 총기라는 위치에 있음에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랑과 권력에 다가서지 못하는 현실사이에서 갈등하는 흔적을 나타내기 위한 연출로 보인다.

빨간색의 옷을 입은 묘동과 금의위 옷을 입은 채 피를 흘리는 심련은 같은 색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이제서야 묘동과 심련은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을까?

수춘도 위충현 장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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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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