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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5가 두드러지는 오오극장의 입구 간판
 숫자 5가 두드러지는 오오극장의 입구 간판
ⓒ 김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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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의 단골 데이트 장소이자 바쁜 현대인들이 즐기는 최소한의 문화생활 공간인 극장. 요즘은 대형 멀티플렉스가 보편화되면서 언제든 가기만 하면 적당한 시간에 관람이 가능할 만큼 상영관이 많아졌다. 편리해진 만큼 관객도 많이 늘어났다. 필자가 살고 있는 대구 강북지역에도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까지 3곳이나 되는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경쟁하면서 관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상영관은 늘어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연간 상영되는 영화 편수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만 보더라도 영화 <명량>의 스크린 독점이 논란이 됐다. 소위 돈 되는 일부 대형 영화 중심으로 상영관이 중복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멀티플렉스 중심의 극장문화가 영화시장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좋은 평가를 받은 많은 영화들이 극장에 걸릴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을 제외하고 전국 유일의 독립영화전용극장

이런 가운데 지난달 11일 대구에 새로운 극장이 문을 열어 관심을 모았다. 바로 대구 유일, 아니 서울을 제외하고는 전국 유일의 독립영화전용상영관 '오오극장'이다. 개관한 지 1달이 되던 지난 10일, 이름부터가 독특한 이 극장을 찾아갔다. 극장 한쪽에서 함께 운영하고 있는 작은 카페인 33다방에서 프로그램 팀장을 맡고 있는 권현준(37)씨를 만나 오오극장과 독립영화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오오극장의 다섯 운영진 중 한명인 권 팀장은 현직 다큐영화 감독이다. 지난해에는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의 안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다큐 <탈선>을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현재 상영작 선정과 각종 기획행사를 마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우선 오오극장에 대한 소개를 부탁했다.

"오오극장은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와 대구민예총, 미디어핀다 세 곳의 단체가 공동으로 설립한 독립영화전용 극장이다. 극장을 찾은 이들에게는 좀 생소하겠지만 사실 독립영화상영관은 협회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2000년 창립 때부터 고민했으니 15년 만에 성사된 셈이다. 대구가 문화적으로 여러 가지 결핍이 많은 곳인데 지난 2012년 한 세미나에서 무엇보다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 절실하다는 이야기가 오가면서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해 2년여 만인 지난달 11일 문을 열었다. 지역의 문화다양성을 바라는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만든 극장이다."

오오극장의 객석수는 모두 55개이다. 극장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각 좌석에는 기부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오오극장의 객석수는 모두 55개이다. 극장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각 좌석에는 기부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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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관 극장과 곽병원 사이에 위치한 오오극장은 규모로 본다면 조그만 소극장을 연상 시키는 정도다. 관객석의 수도 55석에 불과한 작은 극장이다. 오오라는 이름도 이 객석 수에서 따왔다고 한다. 현재 하루 6번 상영하는데 4~5편의 영화가 순환식으로 걸리고 있다. <조류인간>, <파티 51>, <기화>, <개:dog eat dog> 등 현재 상영작을 보니 역시나 생소한 작품들이다. 여러 가지가 궁금했지만 그중에서도 개관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관객 수나 수입 등 운영 상황이 어떤지 궁금했다.

개관 후 한달, 하루 평균 관객 20여 명

권현준 프로그램 팀장, 그는 현직 다큐영화 감독이다.
 권현준 프로그램 팀장, 그는 현직 다큐영화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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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적은 날은 하루 3~4명, 가장 많았던 날은 80여명이 찾았다. 한 달 동안의 실적을 대략 정리해 보니 하루 평균 20여 명의 관객이 찾고 있고 수입으로 따지면 최소 운영비와 1명의 상근 전담자의 인건비가 겨우 빠지는 수준이다. 아직은 이를 두고 뭐라고 평가를 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고 당장은 평균 관객 30명이 목표다."

권 팀장이 소개했듯이 극장 설립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극장 좌석 판매 방식의 모금이다. 말 그대로 55개의 극장 좌석을 각각 판매했다고 한다. 좌석 당 50만 원에 팔았는데 모두 완판됐고 각 의자에는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판매라고는 하지만 색다른 방식의 모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십시일반으로 250여 명의 후원자들이 정성을 보태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모금을 진행해 설립자금인 1억 원을 마련했다. 모금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 극장 한쪽 벽에 새겨져 있다. 극장 설립에 총 1억5천만 원 정도가 쓰였데 모금을 하고도 모자란 부분은 각 참여단체에서 분담했다.

극장 로비 벽에 걸린 설립 기부 참여자들, 오오극장은 많은 이들의 정성이 모여 만들어 졌다.
 극장 로비 벽에 걸린 설립 기부 참여자들, 오오극장은 많은 이들의 정성이 모여 만들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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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다양성의 전초기지, 대구 창작 동기부여 기대

권 팀장은 이렇게 출발한 오오극장이 만들어진 취지이자 앞으로의 운영방향을 세 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영화 다양성의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이다. 전국 극장에 2500여 개의 스크린이 있지만 독립영화가 걸릴 수 있는 곳은 여섯 곳 남짓이다. 적어도 200개는 돼야 상업적으로 이름이나마 알릴 수 있는데 단관이지만 최대한 역할을 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지역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이다. 특히 대구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걸릴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세 번째는 시민들과의 소통이다. 시민제작교육과 상영공간 연계를 통해 문턱 낮은 영화관으로 만들려고 한다."

오오극장은 현재 독립영화협회가 주축을 이루고 다른 단체들이 함께 하면서 운영하고 있지만 준비를 거쳐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운영을 함께 책임지면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장기적으로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준비가 되는 대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관객과 독립영화제작자들이 모두 참여해서 운영하는 극장으로 만들려고 한다. 설립할 때부터 오오극장은 커뮤니티시네마, 즉 지역에서 함께 살아 숨 쉬는 극장으로 만들겠다는 방향을 세우고 출발했다. 이를 위해 영화 상영만이 아니라 다양한 열린 프로그램과 커뮤니티를 위한 기획을 고민하고 있다."

오오극장을 자주 찾는다는 관객 한종해(43)씨는 "기존 극장들은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오오극장도 좋긴 한데 단관이라 아쉽기도 하다. 적어도 2개관 정도는 됐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관객의 입장에서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극장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양한 시각, 저자본 영화도 볼 수 있는 곳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극장 상영관 입구, 낙서처럼 보이는 글씨들이 독립영화관 다운 활력을 전하고 있다.
 극장 상영관 입구, 낙서처럼 보이는 글씨들이 독립영화관 다운 활력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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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밝혔듯이 독립영화전용관은 서울의 4곳을 제외하고는 대구가 유일하다. 서울의 경우도 관련 기관에서 운영하는 곳을 제외하면 민간극장은 한 곳뿐이다. 그만큼 다른 지역에서도 오오극장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주시하고 있다.

반면 독립영화 제작 여건은 대구가 오히려 매우 열악하다. 제작기술 발전과 지원확대로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독립영화 영역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대구는 오히려 제작되는 장편 독립영화가 한편도 없을 정도로 인프라가 부족하다. 오히려 오오극장을 통해 이런 시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기대들이 높은 상황이다.

언뜻 어린시절 동시상영관이 연상되는 작은 극장이지만 직접 방문해 보면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상영작들도 생각보다 관심을 끈다. 식상한 블록버스터에 물린 관객들이라면 한번쯤 찾아보면 새로운 문화에 눈뜰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의 생명은 다양성이다. 어쨌든 그 다양성을 완성 시키는 것은 관객들이다. 열악한 문화 불모지 대구에서 오오극장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대구 강북지역의 작은 언론인 강북신문(www.kbinews.com)에 함께 실렸습니다.



태그:#오오극장, #독립영화,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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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살고 있는 두아이의 아빠, 세상과 마을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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