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가 방영되고 나서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이자 극 중 사고를 친 인상(이준 분)의 아버지로 등장한 한정호 역의 유준상에 대해 어색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의 아내 역을 맡은 유호정에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준상이나 유호정은 그간 드라마를 통해 착하고 선량해서 오히려 치이고 당하는 수난의 주인공을 주로 연기했다. 그랬던 두 사람이 '갑 오브 갑'으로 등장해 대놓고 '갑질'을 하면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운운하는 상류층으로 등장하니 시청자는 쉽게 적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6회를 경과한 SBS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이제는 그 누구도 유준상과 유호정에게 어색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그간 해왔던 착한 이미지를 겉으로는 한껏 드러내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갑'의 마인드를 서슴없이 내뱉는 모습을 통해 상류층의 위선이 가장 절묘하게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6회 말, 인상을 향해 상을 던지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몸을 던지다 가랑이가 걸려 절절매는 해프닝을 벌이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두 손 두 발을 들게 된다.

한정호-최연희 부부에 대한 당신의 마음은?

유순한 표정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인 척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속물적이면서 이해타산에 재빠른 한정호 최연희 부부. 최고의 법무법인을 이끄는 이들은 정작 자기 아들 하나, 그리고 그 아들의 아이를 낳은 여자아이 하나를 어쩌지 못해 번번이 당하고야 만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의 결혼신고서에 도장까지 찍게 된다. '갑'인 척하면서도 '갑'의 위선을 어쩌지 못해 휘말려 들어가는 두 사람이 때로는 귀엽고,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다. 

문제는 그 정도다. 자기 자식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해 번번히 아들 내외와 손주에게 휘말려 들어가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갑질'을 멈추지 않는 한정호 최연희 부부가 연기를 잘해서 좋은데 더 나아가 혹시 이 두 사람이 벌이는 '갑질'에 은연중에 공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다.

6회 말, 두 사람은 처음 정식으로 봄의 부모 서형식(장현성 분)과 김진애(윤복인 분)를 집으로 초청했다. 봄의 부모가 기가 죽을 만큼 격식을 차리더니, 결국은 '친인척 관리' 차원에서 내놓은 카드가 봄이 언니까지 취직시켜 줄 테니 시골에 내려가 과수원이나 하면서 조용히 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곁에서 들은 봄은 울고, 인상은 반발한다. 안 그래도 봄이 부모에게 사과하라고 했던 인상은 사과는커녕, 한술 더 뜨는 부모에게 대든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 장면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 장면 ⓒ SBS


이 지점에서 TV를 보는 당신은 어떤 입장에 서게 될까. 위선적인, 그리고 지극히 이기적인 부모에게 대드는 인상에게 공감을 하게 될까. 잘 사는 사돈댁에 딸내미 취직이라도 부탁해 볼까 갈등하다 결국은 큰딸마저 따라오게 하지 못하는 서형식 김진애 부부에게 마음이 쓰일까. 그도 아니면 분명 손가락질받을 한정호 최연희 부부의 인간적인 매력에 자기도 모르게 공감할까. 만약에 사돈이 자식을 취직시켜주고, 과수원까지 준다면 나라면 어떻게 할까? <풍문으로 들었소>의 묘미는 어쩌면 돌아가는 드라마의 스토리보다 이를 보며 자아분열을 겪는 시청자의 시각에 더 방점이 찍혀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 평범한 우리네 삶은 서형식과 김진애에 더 가깝다. 한 발을 언뜻 잘못 디디면 바로 서형식처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파산자가 될 우려가 크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묘하게 체면을 차리느라 절절매면서 결국은 '인지상정'의 인간사를 넘지 못하는 한정호 최연희 부부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그것이 사고 치는 자식의 문제에 이르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아직 고등학생인 아이들은 반성은커녕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애쓴다. 분명 그들에게는 아름답고, 존중받을 사랑이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골치 아프니 이들에 대한 감정 역시 오락가락한다.

그런가 하면 구차한 서형식 김진애 부부에 대한 감정도 묘해진다. 궁상맞은 그들의 삶이 마치 내 삶인 양 구질구질해지면서 외면하고 싶은 감정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한정호의 대저택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그들의 단적인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큰소리를 치던 모습과 겹치며 또 다른 인간사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런 그들이 큰딸을 취직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넙죽 받으면서도 다시 과수원을 들고나오자 당혹스러워하는 지점은 바로 '인간적 자존감'만은 지키고 싶은 우리네 얕은 속내를 들킨 듯한 모습이다. 마치 누군가의 앞에서 쩔쩔매는 부모를 보다 외면해 버리고 싶은 심정처럼 말이다.

'갑질'의 내재화를 질문하게 만드는 <풍문으로 들었소>

한정호 최연희 부부의 갑질 스토리를 블랙 코미디로 만든 <풍문으로 들었소>는 과연 내 의식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를 점검하게 한다. 아들 내외를 어쩌지 못하고,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에 혹여라도 훼방이 될까 전전긍긍하지만 그러면서도 안 그런 척하는 한정호 최연희 부부에게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는 지점은 과연 그들의 '갑'질을 자신도 모르게 '내재화'하는 것은 아닐까 반문해 보아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매번 선거 때를 중심으로, 아니 다수의 정치적 사안에 대해 서민층인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전혀 다른 선택을 하면서 그 논리를 마치 자기 것인 양 드러낼 때, 바로 그것이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한정호 최연희에게 이입되는 그 감정과 같은 것이 아닌지 드라마는 묻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매번 눈물을 흘리고, 반성하면서도 결국은 자기들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사고 친 아들 부부를 데리고 주변 사람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자 쩔쩔매는 모습은 어떤 부모라도 그럴 만하다. 하지만 그런 한정호 최연희 부부의 딜레마가 인간적으로 보이고, 귀엽다가도 서형식 김진애 부부의 딜레마에 이르러 궁상맞게 느껴지면 우리가 느끼는 딜레마의 '체면' 역시 여전히 '갑'의 내면화의 일환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마치 매회 한 편의 연극처럼, 무대 위 조명처럼 어두컴컴한 TV 속 한정호 최연희 부부의 집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깔깔거리고 뒤돌아서면 문득 나 자신은 어디에 서있는가 되돌아 보게 되는 <풍문으로 들었소>. 참 만만치 않은, 불편한, 그래서 중독성 있는 드라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풍문으로 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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