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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잡지 읽기를 좋아하고 옷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던 대학생이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경험을 쌓고 싶어서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 한 공고가 눈에 띄었다. '패션 어시스턴트'를 뽑는다는 것인데, 패션잡지 기자의 일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흥미가 생겨 지원했다. 간단한 면접을 보았다. 공고문에는 월급이 적혀 있지 않았다. 면접 때 담당자는 한달 월급이 30만 원이라고 말했다. 담당자는 그 돈 받고도 일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일단 나는 해보겠다고 말했고, 그렇게 패션잡지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기자가 부르면 회사에 가는 시스템이고, 월급을 30만 원을 받는다고 해서 가끔 나와서 일을 도와주는 식이라고 생각했다. 최저시급 5580원을 기준으로 한달에 50여 시간을 일하면 대략 30만 원을 번다. 그래서 단순 계산으로 일 주일에 12시간 정도만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후에 계산해본 나의 한 달 노동시간은 대략 150여 시간 정도 되었다(나는 해당 패션잡지에서 두 달을 일했다). 최저시급으로 계산하면 80만 원이 넘는다.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으나 이건 업계에서는 늘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건 관행... 절대 안 바뀌어요" 나는 좌절했다

지난해 10월 17일, 패션노조 회원과 알바노조 조합원들이 서울패션위크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지난해 10월 17일, 패션노조 회원과 알바노조 조합원들이 서울패션위크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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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도중 소위 '이상봉 열정 페이'사건이 터졌다. 이상봉 디자이너실에서 일하는 청년 디자이너들은 '열정 페이'라는 미명 아래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10만 원부터 110만 원의 급여을 받으며 일을 했다는 것이다. 많은 비난이 쏟아졌고, 후에 디자이너실의 청년들은 근로계약서도 쓰며 대우가 좀 나아졌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패션업계에 일하던 나로서는 '우리 환경도 개선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나보다 먼저 회사에 들어온 어시스턴트의 말은 날 좌절로 빠뜨렸다.

"이게 관행이고 절대 안 바뀌어요. 어차피 우리가 그만두어도 이 일 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일하는 사람은 다시 뽑으면 돼요."

지금 현재 패션잡지의 기자들도 대부분 어시스턴트를 거쳐서 기자가 되었다. 이런 관행이 문제시되지 않은 것은 업계 모두가 이 불공평함을, '한 단계 올라가기 위해 겪어야 하는 당연함'으로 보기 때문이다. 

결국 수많은 어시스턴트들 대부분이 6개월을 못 버티고 나가 버린다. 근로계약서는 고사하고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개인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인터넷상에 어시스턴트를 공고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능력 있는 인력들을 유지하는 방법은 환경 조성과 노동력에 대한 대우다. 어시스턴트들이 바라는 것은 많은 돈도 아니고 복지혜택도 아니다. 그냥 일한 만큼만 받는 거다. 10시간을 일하면 10시간치 돈을 받고 20시간의 일을 하면 20시간의 돈을 받는 것이 그들에게는 꿈이다.

최저임금은 인간이 최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하의 금액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받는 것마저도 사치일 수밖에 없는 패션 어시스턴트를 위로하며, 하루 빨리 패션잡지계도 환경이 개선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태그:#열정페이, #패션, #어시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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