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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4일 쌍용차 희망행진이 김정욱, 이창근 굴뚝 농성장 앞에서 열립니다. 이를 앞두고 지난 8일 서울에서 평택까지 응원 행렬이 자전거를 타고 굴뚝을 향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세월호 유가족 고 임세희양의 아빠 임종호님이 있었습니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굴뚝 앞으로 갔던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 기자 말

 출발하는자전거행진단
 출발하는자전거행진단
ⓒ 안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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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희 아빠 임종호씨에게 자전거 타기를 권유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그러자"고 대답했다. 전날(지난 7일) 강릉에서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 콘서트 일정이 있어 잠시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때문에 그가 낼 수 있는 시간은 주말과 밤 시간밖에 없다. 혹시라도 약속된 일정이 있는지 생각했던 것이다. 잠시도 쉴 시간 없는 그가 수원에서 평택까지 짧지 않은 거리, 자전거를 탔다. 세월호와 직접 관련된 일도 아닌데 고마웠다. 그러나 고맙다는 인사를 그는 가볍게 거절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서는 사람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마울 게 뭐가 있어요. 이게 내 일인데. 내가 금속노조 조합원이기도 하지만, 저기 굴뚝에 올라간 사람 일이 남의 일인가, 내 일이지. 간담회나 북콘서트 가서 늘 하는 얘기지만, 내 일이라 생각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1등 하면 좋겠다 하지만,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는 2등이고 3등, 10등, 40등인데. 다 재벌 회장 되는 거 아니잖아요. 회장만 있어서도 안 되고. 대부분 사회 나와서 노동자 되고, 비정규직 되잖아. 그럼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가 남 일인가, 내 자식 일이고 내 일이지요.

그래서 나는 남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월호) 사고 있기 전에 쌍용차에도 많이 왔었어요. 희망 텐트하던 해에는 공장 앞에서 노숙도 했었어요. 그때 정말 추웠는데... 그래서 낯설지도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해야지요."

세희 아빠가 근무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는 금속노조 인천지부 소속의 사업장이다. 그는 기술직으로 입사해 10년째 근무 중이다. 2007년부터 노조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그 해 산업 안전 담당으로 일했고, 2년 뒤에는 노조 사무장, 그 다음에는 노조 지회장도 역임했다. 노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자전거행진에참여한 세희아빠
 자전거행진에참여한 세희아빠
ⓒ 안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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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했지요. 뭔가 바꿔보고 싶었어요. 우리 회사 노조는 굉장히 단단해요. 단체 협약이 잘되어 있어서 회사가 외주 문제 결정할 때도 노조랑 상의해야 할 정도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하면 할수록 답답한 게 있었어요. 우리 회사 노조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전체적으로 너무 어려워졌어요. 쌍용차 문제도 있고, 여기 저기 정리해고다, 비정규직 문제다... 해결되지 않고 산적한 문제들이 자꾸 생기더라고요. 그게 노조 활동하면서 내내 부대꼈어요. 그런데 노동운동한다는 분들 만나면 막걸리 먹으면서 과거 타령이나 하고...

그게 별로더라고. 과거 얘기가 아니라, 현재를 바꿔야 하는데, 의기투합이 잘 안 돼서 답답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 노조 활동을 중단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어요. 노조 활동하면서 매 주말마다 집회다, 수련회다, 뭐한다 하면서 시간을 못 보냈거든. 세희랑 세희 동생 경원이는 점점 커가는데,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별로 없겠더라고. 그래서 노조 활동 접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 그런데 세희가 그렇게 된 거예요. 내가 팔자가 그런가 봐(웃음). 결국 요즘은 어디랄 것도 없이 주말이고 할 것 없이 다니고 있잖아."

세희는 아빠 말이 맞다고 믿는 아이였다. 자기 고집 세우던 일도 지나고 보면 아빠 말이 맞았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부터 늘 아빠 말을 따랐다. 수학여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에도 담겨 있다. 가기 싫다던 수학 여행을 떠난 길에도 아빠의 조언이 있었다. 그래서 아빠는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세희는 아빠 말을 믿는 아이였어요. 아빠 조언이 맞다는 경험을 많이 하고서 더 그랬지. 아빠 생각에는 이럴 거 같아 라고 하면, 그걸 따랐지. 강요하지 않았는데 세희는 그랬어. 수학 여행갈 때도 배 타고 가기 싫다고 하는데 내가 그랬거든. 배 타고 가면서 친구들하고 친해지고 좋은 거다. 그리고 그렇게 큰 배는 위험하지 않아. 무슨 일이 생겨도 하라는 대로 잘 따르면 별 일 없을 거야.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와... 그런데 그 일이 생겼잖아요. 내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 이후로는 세희 동생 경원이한테 아빠 말대로 하라는 말을 못하겠어. 미치겠어.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지."

그는 수원에서 평택까지 익숙했던 길을 달렸다. 굴뚝이 보이는 쌍용차 정문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김정욱과 이창근, 그리고 그의 동료들 앞에 섰다. 힘차게 '투쟁' 구호도 외쳤다. 노조 위원장으로 외쳤던 구호였고 세월호 가족으로 외치고 있는 구호다.

 쌍용차자전거행진 마치고 발언하는 세희아빠
 쌍용차자전거행진 마치고 발언하는 세희아빠
ⓒ 정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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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여기를 자주 왔어요.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왔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세월호 가족으로 왔습니다. 늘 함께 해 왔지만 오늘은 남다릅니다. 누구나 함께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일로 겪게 되는 일 앞에서는 또 달라집니다.

세월호가 그렇고 쌍용차 해고 문제가 그렇습니다. 사건을 겪으면서 더 뚜렷하고 아프게 와 닿는 게 있습니다. 이런 일을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남의 일이지만 내 일처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런 일은 닥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득중 지부장과 세희아빠
 김득중 지부장과 세희아빠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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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행진'에 동참한 이유

세희가 없는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 그와 가족들은 그 사실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지난해 초에 네 가족이 함께 떠났던 일본 여행 같은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곳 온천에서 엄마와 세희가 함께 보았던 별도 이제 볼 수 없음을 안다. 아빠는 일을 할 때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잊혀지지 않는 것을 계속 잊지 않기 위해서 간담회를 다니고, 집회를 다니고, 요청하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그를 요청하지 않아도 필요하면 간다. 지난해 4월 말 세희를 일찍 찾았지만 팽목항에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 곁에 누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오랫동안 그 곁을 지키기도 했다. 의경으로 근무하던 21년 전 서해 페리호 사고로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지 겪기도 했고, 비슷한 참사로 사랑하는 세희를 잃기도 했기 때문에 그는 잘 안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 잊지 않는 사람들이 없으면 모든 것은 너무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을 안다. 그래서 쌍용차 희망행진을 위한 자전거 길에 나섰다.

경원이는 누나가 다니던 단원고에 입학했다. 누나를 잘 따르던 아이. 맞벌이 부모님 대신 자신의 밥을 챙기고 보살피던 누나를 잊지 못하는 경원이가 단원고 1학년이 되었다. 우연하게도 누나의 2학년 반, 번호와 같다.

그런 경원이에게 아빠가 자신있게 다시 "아빠 말을 믿고 따라도 된다"고 말하는 시간이 와야할 텐데. 좋은 세상을 위해서,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그가 웃는 세상이 되어야 할 텐데...

굴뚝 위에 있는 사람들, 세월호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함께 웃는 날이 온다면 그때 열심히 살아온 아빠 말이 맞다고, 아빠는 경원이에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세희도 아빠에게 "아빠 잘했어. 아빠 말은 언제나 늘 옳았어. 괜찮아요" 말해주지 않을까. 세희 아빠 임종호씨의 자전거 행진이 헛되지 않도록, 많은 이가 굴뚝을 향해, 세월호 진실을 위해 마음 모을 수 있기를.

 굴뚝농성장 앞에서 발언하는 세희아빠
 굴뚝농성장 앞에서 발언하는 세희아빠
ⓒ 정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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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진 님은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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