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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방송공사(EBS)가 3·1절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3부작으로 기획 시리즈를 방영 중이다. 다큐멘터리 <역사의 그림자, 일본군 위안부>는 지난 1일부터 오는 15일까지, 매주 일요일 낮 12시 30분에 방송된다. 1편 '사실과 진실'은 고노 담화 검증 논란과 <아사히신문> 오보 논란을 통해서 일본 정부와 우익세력의 주장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8월, <아사히신문>이 발표한 기사 중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토대로 보도한 기획 기사가 취소됐다. 전쟁 당시 일본군이 제주도에서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했다는 내용인데, 구체적인 근거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오보 논란이 불거지자 아베 신조 총리는 "오해로 일본의 이미지가 손상됐다"고 발언했다. 일본 자민당 측은 "잘못된 기사로 일본 국익이 훼손됐다"며 각국 소녀상 건립 등이 오보의 여파라고 왜곡하기도 했다. 하나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사안 자체가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몰아가는 분위기다.

<역사의 그림자, 일본군 위안부> 첫 방송분 <사실과 진실>(3월 1일자)은 이와 같은 일본 정치권의 발언이 진실인지 파헤친다. 전쟁 당시 일본군 참모장이었던 오카무라의 회고록을 인용하고, 국가기록원 등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자료들을 살펴본다. 살아있는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위안부 생존자들을 직접 인터뷰한 것이 인상적이다.

'축소와 왜곡', 일본 정부가 말하지 않은 진실

EBS 기획다큐 <역사의 그림자, 일본군 위안부>의 한 장면. 전후 전범들을 기소했던 극동국제군사재판 당시의 영상이다.
 EBS 기획다큐 <역사의 그림자, 일본군 위안부>의 한 장면. 전후 전범들을 기소했던 극동국제군사재판 당시의 영상이다.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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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총리의 집권 이래로, 일본은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다. 역사를 왜곡하는 발언을 하고, 고노 담화를 둘러싼 논란도 거세졌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를 두고는 '사실 무근'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일본 우익세력의 주장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다.

<사실과 진실>은 사료와 증언을 토대로 오류를 지적한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부정하던 일본 극우단체의 말은 다양한 기록에 의해서 힘을 잃는다. 발견된 당시 일본 육군 측의 문서 '군 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은 내무성 경보국이 관여한 '도항'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을 비롯한 식민지였던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부녀자 인신매매가 성행했고, 중국 등 국외의 전선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미국의 공식자료인 '일본군 포로 심문보고서'도 결정적인 증거로 볼 수 있다. 보고서에는 당시 유괴가 있었냐는 미군의 질문에 상반된 증언이 담겼다. 각각 인신매매업자와 피해자가 발언했기 때문에 내용이 다르다고 다큐는 말한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도 일본군의 조직적 관여 정황이 드러난다. 중국에 위안부 구입자금으로 거액을 보낸 기록도 만주 중앙은행에 남아 있다. 베트남 전범 재판에서 프랑스인 자매를 감금·강간하고 살해한 일본군 병사들이 사형 당한 사례도 있다.

당시 위안소는 일본군 주둔지 어디에나 있던 필수 병점시설이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점령지 각지에서 끌려온 여성들로 구성됐다. 인간이 아니라 군수품 취급된 여자들의 고통은 영혼을 파괴하고도 남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조직적으로 국가가 군을 위해 만든 성노예 시설은 일본이 유일하다"고 다큐는 언급한다.

증거가 없다고 부인하던 일본 정부 앞에 나타난, 살아있는 증인들의 목소리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1991년 국내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던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은 그야말로 절절하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 '나눔의 집'에서 여생을 슬픈 기억 속에서 보내는 생존자들의 심정도 담았다.

야스쿠니 신사 옆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재판'

EBS 특집다큐 <역사의 그림자, 일본군 위안부> 중 한 장면. UN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은 보고서에 '위안부'라는 용어보다 '군 성노예'라는 용어가 정확하다고 적었다.
 EBS 특집다큐 <역사의 그림자, 일본군 위안부> 중 한 장면. UN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은 보고서에 '위안부'라는 용어보다 '군 성노예'라는 용어가 정확하다고 적었다.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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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당시 아시아에서 위안부 피해자는 최소 2만에서 최대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람은 238명뿐이다. 일본군이 '범죄의 증거'를 없애고자 모집된 위안부들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전후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서 열린 극동군사재판에서는 위안부 문제는 언급조차 없었다. 지난 8일 방영된 <역사의 그림자, 일본군 위안부> 2부 <끝나지 않은 재판>은 2000년 12월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재판을 중심으로 당시의 일왕과 일본 정부가 유죄인 이유를 되짚는다.

"(위안소 덕분에) 아마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라며 동원 강제성을 은폐하려는 일본 우익세력의 말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생존 할머니의 처절한 외침이 영상을 보는 내내 귓가를 맴돈다. 혹시 그래서였을까? UN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는 1996년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

"'위안부'라는 용어는 연일 거듭되는 강간과 심각한 육체적 학대와 같은 고통의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따라서 특별보고관은 '군 성노예'라는 용어가 훨씬 정확하고 적절한 용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2000년, 전후 반세기가 지나서야 마침내 여성국제전범재판이 열린다. 정식재판은 아니지만, 세계 각국의 인권운동가 천여 명과 법률전문가들이 모여 전범들을 '인도적 처사에 반한 여성 학대'로 기소한 시민법정을 연 것이다. 여기서 극동군사재판 당시에는 기소하지 않았던 히로히토 전 일왕도 전범에 포함시킨 것이 주목할 점이다. <끝나지 않은 재판>은 당시 영상에 배우들의 연기로 재현된 재판정의 모습을 더하여 상황을 재구성한다.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도 참여한 이 재판은 중국과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와 한국의 위안부 피해 증언과 2년 넘도록 수집한 증거 자료들을 근거로 진행됐다. 법정은 일본 정부는 참석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당시 일본 언론은 재판결과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전쟁시 위안소를 이용했다는 생존 일본군 병사의 증언까지 있었지만, 이를 인용한 언론사는 없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의 반인도적 행위가 인정된다며 기소된 일왕을 포함해 10명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국제법을 근거로 법적 책임과 더불어 피해자에 대한 배상 명령도 내렸다. 이 날 재판이 열린 도쿄 군인회관은 전범들이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로부터 불과 500미터 떨어진 장소였다.

여성 인권과 존엄성 회복, 위안부 문제가 화두인 이유

EBS 특집기획 <역사의 그림자, 일본군 위안부> 중 한 장면. 일본 우익세력의 왜곡된 주장에 사료와 증언을 근거로 반박한다.
 EBS 특집기획 <역사의 그림자, 일본군 위안부> 중 한 장면. 일본 우익세력의 왜곡된 주장에 사료와 증언을 근거로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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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전범재판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두고 '일본의 책임과 배상 의무'를 언급했다. 일본군 위안부가 국제법상 인도에 반하는 범죄라고 못 박은 것이다. 특히 강제동원과 감금, 성노예화가 여성의 신체적 자유와 인권을 유린했음을 분명히 언급한다.

판결이 나온 뒤, 일본 NHK 방송은 재판의 내용과 의미를 왜곡한 방송을 내보냈다. 일본 시민단체와 한국이 연대하여 소송을 걸기도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방송 제작 과정에서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다는 책임 프로듀서의 폭로까지 있었다는 점이다.

소송을 제기한 시민단체가 2심에서 승소했지만, 안타깝게도 대법원에서는 "해당 발언을 언론에 대한 외압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이 뒤집혔다. 이 사건에서 NHK 보도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논란이 불거진 인물은, 당시에 관방부장관이었고 훗날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가 된 사람이다. 그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현 일본 총리로 알고 있는 정치인 아베 신조다.

EBS 특집 다큐 <역사의 그림자, 일본군 위안부>는 위안부 문제를 밝히는 것이 '여성인권을 위한 평화의 길'이라고 말한다. 여성인권과 존엄성 회복을 위해서 위안부 문제가 화두라는 것이다. 1951년 9월 8일,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받아들이고 국제사회로 복귀했다. 일본이 국내 및 해외에서 열린 전쟁범죄 재판의 판결문을 수락한다는 것이 내용이었다. 현재의 일본 정부는 아마도 이를 잊으려는 듯 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고통 받는 위안부 피해자는 2014년에 두 분을 떠나보내고 현재 소수만 남아 있지만, 일본이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다면 이는 부끄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피해를 증언할 생존자는 줄어 들어가지만, 진실을 모두 가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행렬과 일본 대사관 앞 수요집회가 계속되는 것은, 올바른 역사를 밝히려는 뜻이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역사를 바꿀 수는 없으나 그 평가는 바꿀 수 있다. 화해와 용서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잘못의 인정과 사죄라는 것을 일본이 지금이라도 깨닫기를 바란다.


태그:#EBS 기획특강, #역사의 그림자, 일본군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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