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인트 빈센트> 성인(聖人) 빈센트라는 뜻의 영화 제목.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인의 모습이 술주정뱅이에다가 경마를 즐기며 스트립 댄서와 사귀고, 10살 꼬마에게 싸우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다.

▲ 영화 <세인트 빈센트> 성인(聖人) 빈센트라는 뜻의 영화 제목.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인의 모습이 술주정뱅이에다가 경마를 즐기며 스트립 댄서와 사귀고, 10살 꼬마에게 싸우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다. ⓒ 영화사 빅


<세인트 빈센트>의 영화 마지막 장면에 빌 머레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장면이 있다. 밥 딜런의 'Shelter from the storm'. 흥얼거린다기보다는 그냥 '윙윙'거리는 소리다. 박자도 안 맞고 가사도 엉망이다. 그는 대충 흥얼거리며 나무가 죽은 화분에 물을 주고 잔디가 없는 마당에도 물을 뿌린다.

아마도 그는 기분이 좋을 때 이런 행동을 하는 것 같다. ​표정없는 그의 얼굴과 초점없는 눈동자와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은 그의 행동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영화를 보아온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즐기며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마지막 장면을 꼭 사수하길바라며...

우정은 세대를 초월한다

어릴 적 외화를 보며 의아했던 것이 있다. 10대 소년과 70대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 서로를 소개할 때 '친구'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찬물도 아래위가 있다'라는 속담처럼 '장유유서'에 뿌리박힌 사회에서 60살 나이 차이가 친구라니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그리고 언어 사용에서 오는 다름일 것이다.

영화 <세인트 빈센트> 60대 노인과 10대 소년의 우정을 그린 버디 무비

▲ 영화 <세인트 빈센트> 60대 노인과 10대 소년의 우정을 그린 버디 무비 ⓒ 영화사 빅

한국어는 어른에 대한 존대어와 접미사가 발달되어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나이 차이에서 오는 언어적 존칭보다보다는 통상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일상이다.

학교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에게도 직함이나 사회적 지위를 말하는 부차적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름을 부른다.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다. 언어 사용에 대한 문화적 생활양식은 다른 문화권에 비해 조금은 다양성을 인정하며 나이나 신분의 차이보다는 격의 없이 지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빈센트의 옆집으로 이사 온 올리버(제이든 리버허)는 이혼한 부모덕에 엄마를 따라 가난한 동네로 이사를 온다. 변호사인 아빠가 양육비 지급을 거부하는 바람에 엄마가 밤낮 일을 하게 되고 어찌어찌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옆집 할아버지 빈센트와 지내게 된다. 생활비에 쪼들리던 빈센트는 올리버의 베이비시터를 자처하고 나서며 50년의 시간을 초월한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가 여성 버디 영화이자 로드 무비의 틀을 취하고 있다면, <세인트 빈센트>는 강산이 5번은 변했어도 굳건한 초등학생 올리버와 60대 할아버지인 빈센트의 버디 무비라 할 수 있다.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우정

영화 <세인트 빈센트>에 나오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어딘가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올리버는 변호사인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입양된 아이다. 그는 전학을 간 학교에서 하얀 얼굴에 깡마른 몸매답게 친구들의 놀림에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옆집의 빈센트 역시 까칠한 성격 덕분에 친한 친구 하나 없다. 알코올중독자인 그는 집안일은 물론 주차하다 부숴버린 담장을 고칠 생각도 안 한다. 그저 경마장과 술집을 전전하며 애인인 스트립 댄서 다카(나오미 왓츠)와 토닥토닥 거리는 게 일상이다.

학교에서 올리버를 괴롭히던 친구(오친스키) 역시 이혼가정의 아이이다. 나중엔 절친이 되어 속 깊은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어른을 위한 동화 '이가 빠진 동그라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한 원이 아니다. 어딘가 이가 빠진 것처럼 완벽한 듯 좀 부족하고 모자란 면이 있다. 이런 점들이 그의 매력 포인트가 되기도 하고 이성에게 사랑을 얻는데 좋은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영화 <세인트 빈센트> 가운데가 올리버. 왼쪽은 남편과 이혼하며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는 올리버의 엄마. 오른쪽은 빈센트의 애인이자 임신한 스트립 댄서인 다카

▲ 영화 <세인트 빈센트> 가운데가 올리버. 왼쪽은 남편과 이혼하며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는 올리버의 엄마. 오른쪽은 빈센트의 애인이자 임신한 스트립 댄서인 다카 ⓒ 영화사 빅


올리버 엄마와 상담하는 장면, 나에게도 필요하다

세인트 패트릭 초등학교라는 이름을 보고 추측하건대 가톨릭 미션 스쿨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학교에는 유대교, 불교신자, 개신교, 불가지론자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을 가진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마치 감독은 가톨릭이라는 전통적 종교를 내세워 기존 가치의 굳건함을 드러내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정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고 있음을 말하려는 듯하다.

영화 <세인트 빈센트> 올리버를 연기한 제이든 리버허

▲ 영화 <세인트 빈센트> 올리버를 연기한 제이든 리버허 ⓒ 영화사 빅

그런데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로서 눈이 가는 장면이 있었다. 올리버의 담임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의 교육방침이다.

가톨릭 미션 스쿨에 담임선생님은 신부님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스타일은 무척 열정적이며 자유분방하다. 개인의 특색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흔치 않는 선생님이다. 아이들의 농담에 같이 농담으로 받아치고, 학생들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정성껏 대답해 주며 아이들에게나 그 자신에게도 절대로 편향된 시각을 가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올리버가 같은 반 동료인 오친스키를 때려 엄마가 학교에 불려 왔을 때도 담임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은 엄마와 올리버의 입장에서 진지한 태도로 이야기를 듣는다. 올리버를 문제 학생으로 보지 않고 그렇게 자라게 된 배경을 이해하려 하며 어떤 방향으로 지도할지를 고민하는 모습은 바로 이 영화 <세인트 빈센트>의 주제와도 잘 어울린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 부족함에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 외로움이 상처를 입어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기도 하며 타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괴팍한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이 바로 빈센트이고 올리버이며 다카이기도 하고, 오친스키이다. 올리버의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개인 비서와 바람이나 이혼한 올리버의 아빠 역시 빈틈이 많은 사람이다. 사회는 그렇게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일구고 도시를 건설하며 지금까지 왔다.

뻔 한 이야기! 그래도 감동은 있다!

​올리버는 담임 선생님이 내준 '우리 주변의 성인' 발표를 앞두고 '빈센트'를 대상으로 준비한다. 누가 봐도 성인(聖人)의 성(聖)자 와는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인 빈센트를……. 

올리버는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요양원에 입원한 부인을 찾아가던 ​빈센트에게서 끝없는 사랑을 배운다. 베트남전에서 목숨을 무릅쓰고 동료를 구한 그에게서 진정한 용기를 배운다. 표정 없이 세상을 투덜거리며 바라보던 그에게서 진한 우정을 배운다. 내면의 아픔을 감추고 어린 소년과 세계를 공유하는 그에게서 '친구가 되는 법'을 배운다.

올리버는 '마더 테레사'도 위대한 성인이지만 자신에게는 '빈센트'야말로 진정한 성인임을 모두에게 이야기해준다. 이 자리에는 올리버의 엄마와 아빠, 빈센트의 애인인 다카와 빈센트의 부인을 헌신적으로 돌보아주었던 간호사, 그리고 주점에서 빈센트의 주접을 들어주었던 부부가 참석한다. 올리버와 주먹다짐을 했던 친구 오친스키 역시 올리버의 뒤에서 환호하며 박수를 쳐준다.

'빌 머레이'와 신인 아역 배우 '제이든 리버허'는 원래 그 역할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못해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로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였다. 내용 또한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졌기 때문에 관객의 외면을 받을 수 있었으나 이 두 배우의 연기력에 힘입어 입소문을 타고 할리우드에서 대한민국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으로, 같은 내용으로 우리나라에서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내 생각엔 작위적이니 신파를 못 벗어났느니 하는 혹평이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영화의 주제와 연출이 진부하단 뜻이다.

영화의 색감은 전형적인 빈티지 스타일로 차량이나 건물 등이 70년대의 모든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빈센트와 올리버의 연기도 과거 흑백 영화를 보는 듯 고전적이었다. 영화관을 나오며 '빌 머레이' 대신에 '이순재' 할아버지와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 아역으로 나왔던 '유승호'가 호흡을 맞췄으면 딱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보았다.

세인트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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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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