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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와 박종철 기념 사업회는 24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안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박 후보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팀 시절, 검찰 내 외압으로 은폐·축소수사가 진행된 데 대해서 책임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공직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 "부적격 박상옥 임명동의 대통령 사과하라"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와 박종철 기념 사업회는 24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동의안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박 후보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팀 시절, 검찰 내 외압으로 은폐·축소수사가 진행된 데 대해서 책임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공직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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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는 하루 속히 개최되어야 한다."(9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스스로 용퇴하거나 대통령이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9일,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개최를 둘러싸고 여야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청문회 개최는 여야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라고 야당을 압박했고, 주승용 최고위원은 "박 후보자가 박종철 사건을 부실수사한 정황이 드러났다"라며 박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인사청문회의 핵심 쟁점은 박 후보자의 부실수사(축소·은폐 관여) 여부다. 부실수사에 '명백한 책임'이 있다면 여당도 박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하겠다는 분위기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달 25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박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치사를 은폐하는 데 관여됐다면 새누리당도 반대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박 후보자의 부실수사 논란은 그가 '고문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됐는지와 직결돼 있다. 만약 지난 1987년 1월 20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1차 수사 당시 알았다면 부실수사(축소·은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이고, 1차 수사 종결 이후 2차 수사시작(1987년 5월 20일) 전에 알았다고 해도 부실수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3월 5일 이전' 추가 고문경찰 인지했을 가능성 있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그동안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검찰이 '고문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때는 지난 1987년 2월 27일이었다. 당시 안상수(현 창원시장) 검사는 영등포교도소 보안과장실에서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를 접견했다. 앞서 두 사람은 한 달여 전 박종철 열사를 물고문한 혐의(가혹행위 치사)로 구속된 상태였다. 그런데 조한경 경위에게서 "물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3명 더 있다"라는 증언이 나왔다.

검찰은 앞서 1987년 1월 20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1차 수사에서 조 경위와 강 경사를 기소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두 사람 외에 황정웅 경위와 반금곤 경장, 이정호 경장 등 '3명의 경찰관'이 더 물고문에 가담했다는 증언이 나온 것이다. 나흘 만에 서둘러 마무리한 수사가 심각하게 부실했음이 증명된 셈이었다.

안 검사는 이날 1차 수사팀을 이끈 신창언 형사2부장 자택을 찾아가 "고문경찰관이 3명 더 있다"라는 증언을 보고했다. 다음날(1987년 2월 28일) 정구영 서울지검장과 서익원 차장에게도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1987년 3월 4일 "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 안기부장, 검찰총장이 모인 대책회의에서 이 문제를 조사하는 방향으로 검토중이다"(신창언 부장)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따라 신 부장과 안 검사는 수사계획서를 작성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박상옥 검사가 다음날(1987년 3월 5일) 퇴근하기 전 신 부장의 지시에 따라 안 검사를 찾아가 "안 검사가 수사에 계속 참여하는 것으로 결론났다"라는 의견을 전달했다는 점이다(안상수, <안검사의 일기>, 1998년). 신 부장의 지시가 '추가수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점에서 신 부장은 사전에 "고문경찰관이 3명 더 있다"라고 박 검사에게 설명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박 검사가 최소한 '3월 5일' 이전에 "고문경찰관이 3명 더 있다"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차 수사 때 이미 '추가 고문경찰관 존재' 알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박상옥 검사가 이미 1차 수사(1987년 1월 20일~23일) 때 '추가 고문경찰관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흔적이 나왔다. '2차 수사기록'과 '항소심 공판조서'에서다. 먼저 2차 수사(1987년 5월 20일~28일) 때 박 검사가 1차 수사 때부터 '추가 물고문 경찰관'을 집요하게 추궁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문(박상옥 검사) : 이상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황정웅, 반금곤, 이정호 세 사람이 박종철을 욕조물에 집어넣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답(강진규 경사) : 예, 모두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세 사람이 실제로 박군을 욕조에 밀어넣은 사람들입니다.

문 : 피고인은 처벌을 가볍게 받을 욕심에서 허위로 위 세 사람이 가담한 것으로 허위진술한 것이 아닌가요.
답 : 절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전에 검찰에서까지 검사님이 다른 직원들이 가담되었는지 여부에 대하여 집요하게 물어보았을 때에도 저희 두 사람이 하였다고 답변을 하였다가 그 후 이 사건의 충격과 제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사실 그대로를 말씀드린 것이 저의 죄를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중 처음 저희들을 수사하였던 검사님들이 다시 그 의문점에 관하여 반박자료를 제시하시게 되어 결국 이와 같이 진상 그대로를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강진규 경사는 "지금까지 진실을 은폐하면서 거짓진술을 해온 점에 대하여 작게는 수사하신 검사님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검사님들"은 열심히 수사했는데 자신이 허위진술하는 바람에 진실이 은폐됐다는 어투다. 그런데 검사 쪽에서 제시했다는 '반박자료'는 수사기록에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박종철 열사의 친형 박종부(58)씨가 지난 5일 검찰로부터 받은 '항소심 공판조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여기에는 강진규 경사와 그의 변호인이 주고받은 내용이 나오는데, 박 검사가 반금곤 경장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주범으로 의심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변호인: "(1987년) 1월20일 서울지방검찰청에 송치돼 박상옥 검사에게 동일(20일) 및 1월 23일 두 차례에 걸쳐 조사받았다. 박 검사로부터 (두 명만 고문에 가담했다는) 증인 등의 진술의 신빙성을 추궁받은 사실이 있었냐?"
강진규 경사: "(박 검사가) '반금곤이 주범인데 왜 강진규가 주범자로 되어 있느냐?'고 추궁했지만 제가 답변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동안 전혀 몰랐던 것처럼 피의자 신문조서를 아름답게 꾸몄다"

2차 수사기록과 항소심 공판조서에 나온 '강진규 진술'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박상옥 검사는 '고문경찰관이 더 있다'는 사실을 1차 수사 때부터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박 검사는 사건의 축소·은폐에 직접 관여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오마이뉴스>가 1차 수사기록(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에 공개됐던 자료)을 검토한 결과, 박 검사가 황정웅 경위나 반금곤 경장에게 '추가 고문경찰관'을 추궁한 적은 없었다.

박 검사는 1차 수사 때인 1987년 1월 23일 반 경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치안본부 대공2부 사무실에서 조사했다. 박종철 열사를 연행한 과정만 길게 물었고, 물고문 가담 여부와 관련해서는 "진술인(반금곤)은 피의자들(조한경-강진규)이 박종철에게 욕조물에 집어넣은 등 폭행할 때 합세한 사실이 있는가요?"라고만 캐물었을 뿐, 반 경장이 "전혀 없다"라고 잡아떼자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또다른 참고인이었던 황정웅 경위를 조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황 경위를 조사한 박 검사는 박종철 열사의 연행 과정을 추궁하는 데 집중했다. "박종철을 조사한 일이 있나요?"라거나 반 경장에서 물었던 것처럼 "피의자들과 합세해 박종철에게 폭행한 사실이 있는가요?"라고 묻는 데 그쳤다. 황 경장도 "가세한 사실이 없다"라고 답변하자 박 검사는 조사를 마무리했다.

1·2차 수사기록을 전부 검토한 서기호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2차 수사기록에 나온 것처럼 박 검사가 '집요하게 추궁했다'면 그와 관련한 내용이 1차 수사기록에 나와 있어야 하는데 없다"라며 "또한 항소심 공판조서에 나온 것처럼 박 검사가 반금곤 경장을 주범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1차 수사 당시 관련 내용을 물어야 했는데 그것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물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더 있다'는 사실은 조한경 경위가 하도 억울해서 안상수 검사에게 (2월 27일) 털어놓은 것이지 검찰이 (2차) 수사를 통해 얻어낸 것이 아니다"라며 "그런데도 1·2차 수사기록 어디에도 '2월 27일 진술'(조한경 경위가 안상수 검사에게 '물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3명 더 있다'라고 한 증언)을 추궁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차 수사는 언론 등 외부에서 제기하는 의혹을 피의자들과 입맞춤한 수준이고, 2차 수사는 추가 피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다가 그동안 전혀 몰랐던 것처럼 피의자 신문조서를 '아름답게 꾸몄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꼬집었다. 

이 지적처럼 1987년 2월 27일 '고문경찰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한 것과 관련해 2차 수사기록에조차 '집요한 추궁'은 없었다. 수사기록은 검찰이 '수사'를 통해 3명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내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게다가 "박 검사가 다른 직원들의 가담 여부를 집요하게 추궁했다"라는 검찰에 유리한 피의자 진술만 남아 있다. 피의자 신문조서가 검찰에 유리하게 꾸며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검찰, '2월 27일' 인지하고도 '5월 초'라고 거짓말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구속된 수사관의 모습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구속된 수사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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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1987년 2월 27일 '고문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추가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는 영등포교도소에서 의정부교도소로 옮겨졌고(1987년 3월 7일), 박상옥 검사는 여주지청으로 발령났다(1987년 3월 12일). 검찰이 추가수사에 나서지 않는 동안 치안본부는 '양심고백'한 조 경위와 강 경사를 대상으로 회유공작을 벌였다(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관계기관대책회의 은폐·조작 의혹' 결정문).

그런데 박 검사가 여주지청으로 발령난 지 2개월여 뒤인 1987년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김승훈 신부가 "구속된 경위 조한경, 경사 강진규는 진범이 아니고, 경위 황정웅, 경장 반금곤과 이정호가 진범이다"라고 폭로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2차 수사팀'을 구성하고(1987년 5월 20일), 여주지청에 근무하던 박 검사를 수사팀에 합류시켰다.

정구영 서울지검장은 1987년 5월 21일 기자회견에서 "범인이 3명 더 있다"라며 "범인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안 시점은 5월 초다"라고 발표했다. 안상수 검사가 이미 1987년 2월 27일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다음날 정 지검장에게도 보고했는데도 "5월 초"라고 거짓말한 것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처음 발생했을 때 직접수사에 나서지 않고, 치안본부에 수사를 맡긴 점, 이후 사건을 송치받고 수사한 지 사흘 만에 서둘러 수사결과를 발표한 점, "물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이 3명이 더 있다"라는 증언을 얻어내고도 추가수사에 나서지 않는 점, 두 차례 수사를 벌였는데도 '윗선 개입'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점 등 검찰수사는 부실투성이었다.

설사 박상옥 후보자가 직접 사건 축소·은폐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심각하게 부실한 1·2차 수사에 참여했고, 이후 공판유지까지 맡았다는 점에서 '막내검사라 잘 몰랐다'는 식으로 넘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태그:#박상옥, #박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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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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