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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0일 일본 아베 정부가 고교무상화 제도를 시행하는 성령(省令)을 발표할 때 외국인학교 중 유독 재일조선학교만 배제되자, 일본 교육계와 인권·평화단체들이 이를 '인권차별'로 비판하며 대책기구를 구성하고 항의행동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조선학교에 대한 '무상교육 배제' 처분 취소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에 나섰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되는 날을 맞아 2015년 2월 20~21일, 일본 문부과학성에 직접 의견을 전달하고, 소송에 나선 조선학교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전국통일행동'이 개최됐습니다.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은 이를 계기로 재일조선학교 차별 문제에 대해 돌아보는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 속에서 차별받는 동포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기자 말

2014년 6월, 종교계, 법조계, 여성계, 교육계, 시민사회가 참여한 가운데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이 첫발을 내딛었다.
 2014년 6월, 종교계, 법조계, 여성계, 교육계, 시민사회가 참여한 가운데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이 첫발을 내딛었다.
ⓒ 손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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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종교계, 법조계, 여성계, 교육계, 시민사회가 참여한 가운데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이 첫발을 내딛었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 안타깝고 슬픈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 어느덧 해방 70년을 맞이했고, 분단 70년을 내다보고 있다. 그동안 이 분단된 땅에서 대결과 전쟁, 이산가족의 고통과 슬픔들이 이어져 왔지만, 분단의 고통은 남과 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일본에 있는 우리 동포들이 분단으로 인해 더 힘들게 고통받고 있다.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우리 동포들이 해방 직후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아이들에게 우리 민족의 말과 글,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국어강습소'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조선학교'이다. 조선학교는 일본사회에서 우리의 민족성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며, 60만 재일동포사회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조선학교와 동포들은 차별과 탄압, 일본 우익단체들의 끊임없는 협박과 물리적 폭력 속에서도 꿋꿋하게 잘 견디고 버텨왔는데, 최근 차별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2013년 2월 20일.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조선학교만 '고교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성령을 공포, 시행했다. 일본 내에 있는 모든 외국인학교에도 다 적용이 되는데 유일하게 조선학교만 배제한 것이다.

일본 문부과학성
 일본 문부과학성
ⓒ 손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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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별적 결정에 편승하여 지방자치단체들도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을 정지 시키는 곳들이 생겨났다. 오사카, 가나가와, 도쿄 등의 지자체에서는 일본학교들에서도 의무사항이 아닌 '학습지도요령'에 준한 교육활동을 보조금 지급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했다.

학습지도요령에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물론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들도 담겨 있다. 일본의 학습지도요령에 따라 교육을 실시할 것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민족학교를 세우고 운영했겠는가? 일본인의 교육과 다르기 때문에 민족학교인 조선학교를 지키고자 한 것이다. 도쿄도에서도 법적 근거 없이 2년 이상 보조금을 정지시키고 조선학교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교육내용에 대한 간섭을 '보고서'로 공표했다.

이같은 차별이 계속되자 조선학교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물론이고 일본 전역의 양심적인 단체와 개인들이 항의하며 '고교무상화제도로부터 조선학교 배제에 반대하는 연락회', '조선고등학생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등을 결성하여 재일조선인 차별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유엔인권위원회도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고교무상화 배제 조치를 '차별'로 규정하고 시정을 권고하고 있다.

조선학교만 고교무상화 배제... 학생들, 곳곳에서 직접 소송

기자회견 참석자들. 오른쪽부터 졸업생 대표,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교장선생님, 학부모, 필자, 조선대학교 학생.
 기자회견 참석자들. 오른쪽부터 졸업생 대표,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교장선생님, 학부모, 필자, 조선대학교 학생.
ⓒ 손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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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0일 일본의 문부과학성 앞에는 차별적인 성령이 발표된 2년 전 그날을 잊지 말자며 오사카, 효고, 히로시마, 아이치, 사이타마, 가나가와, 지바, 이바라키, 홋카이도, 나라, 시가, 시코쿠 등 조선학교가 있는 모든 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시민단체 대표들이 모였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집회와 항의행동을 하고 이날을 기해 도쿄의 문부과학성 앞에 집결한 것이다. 필자도 한국의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을 대표해 참가했다.

전국에서 모인 시민단체 대표들은 문부과학성의 담당자를 면담하여 강력한 항의의 뜻과 함께 '고교무상화 배제 철회' 요구를 담은 서명용지를 전달했다. 문부과학성의 담당자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잘 들었습니다. 적절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우리의 입장은 똑같습니다. (학생들이 제기한 소송)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합니다. 그러나 고교무상화의 대상이 될 만한 기준에 적합하지 않으니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저기에서 항의와 고성이 이어졌다. 면담을 마친 대표들은 이어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도쿄조선중고급학교(도쿄조고)의 교장선생님이 차별에 관한 조선학교의 입장을 담은 담화를 발표한 후, 졸업을 앞둔 재학생 한 명이 "보통의 고등학생인 우리들만 제외되는 것은 명백한 민족차별이고 배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우리도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동생들에게 물려주고 가는 것이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일본 땅에 살면서 똑같이 세금 내고 할 의무 다하고 있는데 어찌 부당한 대우를 하느냐? 이것은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조선학교 재학생 어머니의 절절한 호소가 이어졌다.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제안으로 시작된 금요행동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제안으로 시작된 금요행동
ⓒ 손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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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금요행동은 '문부과학성 포위행동'이다
 2월 20일 금요행동은 '문부과학성 포위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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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이 고교무상화에서 배제된 것이 안타까웠던 선배들, 조선대학교 학생들은 2013년 5월 31일부터 "조선학교 차별반대와 고교무상화 적용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매주 금요일 문부과학성 앞에서 항의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금요행동'에는 조선대학교 학생, 조선학교 졸업생과 학부모들,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는데, 이번 금요행동은 문부과학성을 에워싸는 '문부과학성 포위행동'으로 진행됐다.

이번 3월에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집회였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가서 미안하다는 그들의 말에 안타까움이 흘러넘쳤다.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일본 문부과학성

중급부 아이들의 합창극
 중급부 아이들의 합창극
ⓒ 손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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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2월 21일 '도쿄 조선고교생의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총회와 '조선고교생 재판 지원 전국통일행동 전국집회'가 열렸다. 조선학교가 있는 모든 지역에서, 많은 단체 대표와 회원들, 노동조합, 학부모 등 정말 많은 분들이 참여했다. 재판지원모임 총회를 앞두고 도쿄조고 중급부 학예회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통일아리랑> <우린 사랑한다> <희망의 길> <봄바람> 등의 합창과 관현악, 무용극 등.

참 잘한다. 아이들이 예쁘기도, 잘하기도 하지만 괜히 콧날이 시큰거리고 목이 멘다. 여기서 보는 '하나'라는 말은 왜 이리 가슴 아픈지. 아이들은 이야기했다. 하나된 조국에서 살고 싶다고. 하나된 조국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말과 글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힘차게 박수를 치면서도 미안하고 먹먹한 가슴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총회에서는 각종 보고가 이어졌다. 참 고맙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했다. 각종 보고를 꼼꼼하게 두 시간 가까이 진행하는데도 너무나 열심이었다. 진지했다. 평화의 심장으로, 양심의 목소리로 활동하시는 분들 중 교사들이 많았다. 그리고 많은 시민 분들. 정말 고맙고 고마운 분들이었다.

21일 오후 5시 전국통일행동 집회가 열렸다. 가나가와, 사이다마, 지바, 도쿄, 니시도쿄 등 여러 지역에서 참여했다. 이번 집회는 조선학교 학생, 졸업생, 학부모, 선생님들과 '일조학술교육교류협회', '조선학원을 지원하는 전국네트워크', '고교무상화에서 조선학교 배제에 반대하는 연락회(무상화전국연락회)' 등 많은 단체들이 실행위원회를 구성해서 만든 집회다. 참가자들은 사전에 지역에서 집회, 농성, 항의행동들을 하고 이번 집회로 모였다.

가나가와, 사이다마, 지바, 도쿄, 니시도쿄 등 여러 지역에서 참여하였다.
 가나가와, 사이다마, 지바, 도쿄, 니시도쿄 등 여러 지역에서 참여하였다.
ⓒ 손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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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행사로 유학생 모임에서 해방 직후 어떻게 학교를 만들었는지 조선학교의 역사를 다룬 연극을 공연해 장내를 눈물과 감동으로 뜨겁게 달궜다. 이어 본행사인 전국집회가 시작됐다. 각 지역에서 온 대표들 소개에 이어 주최자를 대표해서 무상화전국연락회의 하세가와 공동대표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다섯 곳에서 반드시 승리하자! 승리할 때까지 함께 끝까지 투쟁하겠다"라는 결의의 발언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어 필자가 한국의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을 대표하여 연대의 인사를 했다. 학생들과 졸업생, 어머니들이 너무나 열심히, 눈물을 흘리며 필자를 보고 있어서 몇 번이나 목이 메어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동포로서 우리 아이들의 문제에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함께하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싸우면 반드시 이깁니다. 기어이 싸워서 이기자! 질긴 놈이 이긴다! 반드시 이기자!"라고 말했다.

가슴에는 비가 흐르듯 눈물이 나는데 참고 또 참았다. 우리 민족이 서러워서, 이 서러운 땅에서 자존심을 지키고 살아가는 동포들이 고마워서, 그래도 양심의 목소리로 함께 나서 주시는 일본의 양심들이 고마워서.

한국에서 한 활동을 보고하는 동안 무대 양쪽에서 한국에서 보낸 지지현수막을 계속 들고 있었다.
 한국에서 한 활동을 보고하는 동안 무대 양쪽에서 한국에서 보낸 지지현수막을 계속 들고 있었다.
ⓒ 손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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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학생들의 편에 서준 양심적인 일본인들

3월에 졸업하는 조선학교 학생들은 학생 시절에 마무리를 못하고 이 과제를 후배들에게 남기고 가는 것을 미안해했고, 어머니들은 "힘들었지만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변호인단을 대표해 이춘희 변호사가 재판에 대해 보고했다. 재판은 현재 오사카, 아이치, 히로시마, 후쿠오카, 도쿄 등 다섯 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이중 오사카는 올해 결심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아이치에서는 헌법과 조선학교의 역사 등 서류를 다 제출하고 심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춘희 변호사는 호소했다.

"이 재판은 한신교육투쟁(4.24민족교육투쟁)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이 재판에서 지면 그동안의 우리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강력한 연대와 힘입니다. 변호사를 응원해주십시오!"

한신 대투쟁이란?
1945년 해방 직후 재일조선인들이 세우기 시작한 '국어강습소'는 전국 500여 개에 달하고 있었다. 1948년에 일본 정부가 불법 학교라는 이유로 강제 폐교 조치를 취하면서 이에 저항하는 학교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재일조선인 민족교육사 최대 사건인 '4.24민족교육투쟁(한신교육투쟁)'이 일어났고, 일본 경관의 총탄에 16살의 소년 김태일이 숨졌다. 한신교육투쟁에는 약 100만3000여 명이 참가했고, 그중 피검자 3000여 명, 부상자 150명, 사망자 2명이 생겼다. 이러한 저항 속에서 조선학교는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학교'로 인가받았지만, 최근 다시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다.
장내가 떠나가라 박수소리가 높아갔다. 마지막으로 학부모를 대표해서 신가미씨가 집회결의문을 힘차게 낭독했다. 오늘을 잊지 않고 반드시 함께 끝까지 싸우자는 결심에 장내는 더욱 더 뜨거워졌다.

내가 태어난 때부터
사랑하는 조국은 둘이었네
슬픈 역사가 이 땅을 갈라도
마음은 서로 찾았네 불렀네
볼을 비빌까 껴안을까
꿈결에 설레만 가는 우리
처음 보아도 낯익은 얼굴아
가슴에 맺힌 이 아픔 다 녹이자

어린 꿈 속에 그려본
사랑하는 조국은 하나였네
오랜 세월에 목이 다 말라도
마음은 서로 눈물로 적셨네
볼을 비빌까 껴안을까
반가와 이야기 나눈 우리
처음 보아도 낯익은 얼굴아
이 땅에 스민 이 눈물 다 알리자

함께 춤추자 함께 춤추자
이 기쁨을 누구에게 보일까
이 노래를 이 춤을 희망을
내일의 우리들에게
하나로 되자 하나로 되자
이 기쁨을 누구에게 전할까
이 노래를 이 춤을 희망을
내일의 우리에게
- 재일동포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하나> 노랫말(리명옥․윤영란 작사, 윤영란 작곡)

행사장에는 아이들의 생활모습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행사장에는 아이들의 생활모습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 손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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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길거리로, 재판으로 나선 학생들.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그 아이들과 함께 나선 선배, 어머니, 선생님들. 차별과 부당함에 분노하며 나선 일본사회의 양심들. 이국 땅에서 또다시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는 것을 알고, 늦게나마 손잡은 한국의 어른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 싸움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역시 우리는 알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함께한 눈빛과 마주잡은 그 손의 온기를 느끼며 돌아왔다. 오늘 함께하는 이 마음은 차별과 탄압 속에서도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한 가닥 양심이라고, 응원하고 연대하는 이 행동은 하나 된 조국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겸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공동대표입니다.



태그:#조선학교, #우리학교, #재일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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