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래 전 일이다. 1996년 가을 학기, 국민대 교정 안에 괴괴한 소문이 떠돌았다. 정확히 짚자면, 국민대에 재직하고 있는 1000여 명 대학 강사 사이에 께름칙한 말이 떠돌았다. 그 내용은 '2년 근무한 강사는 당장 다음 학기부터 해고되거나 한 학기를 강제 휴직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소문을 접한 강사들은 무슨 까닭인지 알지 못하여 어리둥절했지만 곧 내막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김영삼 정부가 발의한 '비정규직보호법'이 문제가 되었다. 비정규직보호법은 그 핵심 내용이, '2년 근무한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보아야 한다'였다. 이에 국민대는 그 어떤 대학보다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발의만 되었을 뿐, 아직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국민대 강사가 2년 이상 근무를 이어가는 것을 차단했다. 비정규직 강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때 발생할 비용을 두려워하여, 확실하게 사전 막음을 한 것이다.

고용 불안한 강사...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에 오히려 위기

우리나라에서 '대학 강사'는 '6개월 한 학기'를 한 단위로 근무하는 비정규직 교원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저임금은 둘째 치고, 그 고용이 극도로 불안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전에는 달랐다. 요즘 유행하다시피 하는 성폭력 사건이나 기타 형사 사건을 일으키지 않고, 상식 이하로 강의에 불성실하지 않는다면 강의를 근근이 이어갈 수 있었다. 대학 처지에서도 매 학기 새로 강사를 초빙하자면 부대비용과 시간이 적잖이 들기 때문에, 기존 강사가 자질이나 근무 태도에서 큰 하자가 없는 한 고용을 유지했다.

그런데 국민대에서 이제 사정이 변했다. 2년 연속 강의를 맡으면 아무 잘못이 없어도 해고되거나 휴직하게 된 것이다.

결국, 힘없는 비정규직들을 보호하자고 정부와 국회에서 법안을 내놓았건만, 거꾸로 비정규직들은 상황이 더 악화된 셈이다. 법에서 보호받을 조짐조차 사전에 원천봉쇄당하고, 심각한 불이익을 당하게 됐다. 당시 국민대 강사들이 떠안아야 할 허탈감과 분노는 자못 클 수밖에 없었다.

1997년 이후 '2년 근무한 강사 강제 휴직 또는 해고'는 제도 아닌 제도로 기능하고 있다. 2015년 현재까지 국민대 강사들을 괴롭히고 있다. 2012년에 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대학 강사가 비정규직보호법 대상에서 제외됐는데도, 국민대는 이 제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그간 대학이 이를 정당화하며 설명한 내용이다. 2011년부터 국민대 강사노조가 줄기차게 이 제도를 철폐할 것을 요구하고, 수 차례 공문을 통해 국민대 총장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 조영석 교무처장을 통해 돌아온 답변은 "강사들에게 무급 안식년을 주는 것으로 봐야 한다"(관련 기사 : <한국대학신문>, "국민대, 박사학위 남발 등 '5대 악행' 중단하라" 2012년 6월 23일)였다.

'안식년 제도'란 오래 근무한 전임교수들에게 재충전 기회를 주고자 유급 휴가를 주는 것이다. '무급 안식년'이라는 어구는 그 자체로 상호모순을 내포한 것으로 황당하게 비칠 수밖에 없다. 월급은 한푼도 받지 못하면서 안식을 누리기도 찾기도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지적에 대해 국민대 측은 별 다른 해명이나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10일, 노사 협상 테이블에서 지금과 같은 방침을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국민대 측 관계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와 주변 동료 강사들의 경력 증명에는, 매 2년 마다 공백 기간이 찍혀 있다. 이 문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비정규직이 겪는 고통은 우리 사회가 떠안고 있는 가장 큰 상처이고 약점이다. 정부와 국회만이 아니라 전 국민이 이를 극복하기를 갈망한다. 비정규직 병폐 극복은 우리 사회가 안정 되고 건전한 사회로 가기 위한 기본 요건이다. 국민대가 대학 강사를 대상으로 고집하는 '2년 근무 강사해고제'는, 이러한 흐름을 정면에서 훼손한다.

일반 기업체도 아닌 대학이 앞장서서 약자보호법을 어지럽히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민대, "한 의자에 두 명 앉을 수는 없어..."
10일, 국민대학교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를 통해 황효일 시민기자의 주장은 "오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무급 안식년이라는 제도가 정식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2년 근무자 휴직 혹은 해고)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형평성의 문제"라면서, "시대에 따라 학문적 요구도 바뀌고, 새로운 강사들에게 더 많은 경력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발판"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한 의자에 두 명이 앉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악의적으로 오해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또한 12일, 국민대학교는 이메일을 통해 '5학기 연속 강의 제한 제도'에 대해 황효일 시민기자가 '해고'·'휴직'이라 표현한 것이 "사실과 다르다"고 추가로 알려왔다.

국민대학교는 "국내의 모든 대학교들과 마찬가지로 시간강사를 학기 단위로 위촉"한다며, "시간강사는 교원과는 다르게 매학기 단위로 학교와 계약을 맺고, 학기가 종료되면 계약도 기간만료에 의해 해지"된다고 밝혔다. 국민대는 "시간강사가 계약이 종료된 상황을 시간강사에 대한 '해고'나 '휴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황효일 시민기자는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국민대 분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태그:#대학 강사, #국민대 , #비정규직보호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