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윤석민이 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을 통해 귀국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들은 후 생각에 잠겨 있다.

투수 윤석민이 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을 통해 귀국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들은 후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윤석민(29)이 끝내 한국 무대로 복귀했다. 행선지는 역시 원 소속팀인 KIA였다. 지난 6일 KIA 구단은 "윤석민과 4년 90억 원에 계약했다"라고 발표했다. 복귀와 동시에 윤석민은 역대 한국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계약 중 최고액자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윤석민은 2013시즌을 마친 뒤 FA 자격을 얻어 미국무대에 도전했고 볼티모어와 3년간 575만 달러에 계약하며 메이저리그 입성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그러나 첫 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머물며 23경기(선발 18경기)에서 4승 8패 평균자책점 5.74라는 초라한 성적에 그쳤다. 게다가 올 시즌에는 구단으로부터 일찌감치 스프링캠프 초청 명단에서조차 제외되는 굴욕을 겪었다. 사실상의 '전력외 통보'였다.

거취에 대해 소문이 무성하던 윤석민은 불과 1~2주 전까지도 미국에 머물며 도전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으나, 마이너리그 캠프 개막을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국내 복귀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 무대에서의 불확실한 전망과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 KIA 구단의 적극적인 설득이 맞물려 윤석민의 마음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윤석민의 미국 무대 진출과 국내 U턴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해프닝은 야구팬들에게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류현진·강정호에 이어 메이저리그를 누비는 한국프로야구 출신 스타의 모습을 보고싶었던 바람은 아쉽게도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윤석민의 투구를 국내 무대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된 KIA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다.

윤석민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실패'

한편으로 윤석민의 시행착오는 해외진출을 노리는 스타들과 한국 야구계에서 화두를 남겼다. 일단 결과적으로 윤석민의 메이저리그 도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실패'였다.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는 정작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진출 시기에서부터 계약 과정, 시즌 준비 등에서 처음부터 치밀하지 못했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윤석민은 2011시즌을 마치고 구단 동의 하에 해외진출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그해는 윤석민의 프로 데뷔 최고 시즌으로, 다승(17승), 평균자책점(2.45), 탈삼진(178개), 승률(7할7푼3리) 등 4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투수 4관왕에 올랐고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했다. 신체적으로나 기량적으로 전성기였던 윤석민이 당시 해외진출을 시도했더라면 시장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았고, 어쩌면 류현진보다 더 빨리 한국프로야구 출신 메이저리거 1호의 탄생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윤석민은 당시 지휘봉을 잡고있던 선동열 감독과 KIA 구단의 강력한 만류로 인해 해외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다. 2년 뒤 완전 FA 자격을 얻기는 했지만 이후 윤석민은 MVP 시절 만큼의 위용을 재현하지 못하고 부상까지 겹쳐 성적이 뚝 떨어졌다. 해외진출 전인 2013시즌에는 팀 상황에 따라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30경기에 등판해 3승 6패 2홀드 7세이브 평균자책점 4.00이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끝까지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시선에 애매한 성적과 보직은 윤석민에게는 결국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다. 해외진출에서 가장 중요한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셈이다.

윤석민은 우여곡절 끝에 FA 선언을 하며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섰지만 이후 계약과정도 순탄하지 못했다. 윤석민이 볼티모어와 계약이 최종 성사된 것은 지난해 2월 13일. 예상보다 메이저리그 구단들과의 협상이 훨씬 늦어지며 이미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이후라 개인훈련만 하고 있던 윤석민으로서는 이미 몸을 만들 시기를 놓친 뒤였다. 설상가상으로 취업 비자 발급도 미뤄지면서 이래저래 상황이 꼬였다.

'마이너리그 거부권',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결국 윤석민은 시범경기 두 경기에만 출전하며 마이너리그행을 통보받았다. 트리플A 노포크에서도 초반 난타를 당하는 등 준비 부족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시즌 후반기에서야 겨우 몸 상태가 올라오는가 싶었지만 메이저리그 콜업의 기회는 멀어진 뒤였고 부상까지 겹치며 첫 시즌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벅 쇼월터 감독과 볼티모어 구단은 윤석민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미국 진출 2년 차를 맞이한 올 시즌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발목을 잡았다. 윤석민은 볼티모어와 계약 당시, 2년 차 때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낼 경우 선수 의사에 따라 자동으로 FA가 될 수 있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류현진도 LA 다저스 입단 당시 삽입했던 조항이었지만, 구단 내 입지가 불안정했던 윤석민에게는 오히려 '부메랑'이 됐다.

부담을 느낀 볼티모어는 윤석민에게 아예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기회를 주지 않았다. 윤석민은 지난 시즌 막판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됐고 스프링캠프에 초청받지 못한 데 이어, 지난달 말 마이너리그 미니캠프 명단에서도 제외되는 등 철저하게 볼티모어의 2015시즌 전력 구상에서 배제됐다. 사실상 '나가라'는 이야기와 다름 없었다. 지나치게 냉혹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구단 측에 처음부터 신뢰를 주지못한 데에는 윤석민의 책임도 있었다.

아쉬운 부분은 이런 상황을 이미 예전부터 많은 이들이 우려했다는 점이다. 윤석민의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전망한 이들은, 체력과 멘탈(정신력)적인 부분에서의 약점을 지적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윤석민은 그런 한계를 불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초라하게 돌아왔다.

그래도 윤석민의 이른 국내 복귀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국내 U턴은 윤석민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훗날 윤석민의 메이저리그 도전은 실패로 기억됐지만, 적어도 꿈을 위해 후회없이 부딪혀보고 단지 결과가 좋지 않다고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잘못돼가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는, 자꾸 미련을 두기보다 과감히 길을 수정할 수 있는 결단도 엄연한 용기다.

선수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에서 활약할 때 그 의미가 있다. 윤석민도 한국 나이도 어느덧 서른이다. 꿈도 좋지만 아무런 비전도 보이지않는 외국 구단과 마이너리그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감수하며 시간을 허비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축구에서 한때 촉망받는 스타였던 박주영(30)이 2011년 아스날 진출 이후 몰락하며 잊힌 선수로 전락한 것은 좋은 반면교사다.

'4년 90억 원'이 한국 야구계에 남긴 것

다만 윤석민의 복귀와 함께 몸값으로 따라붙은 '4년 90억 원'이라는 상징적인 수치는 다소 씁쓸한 뒷맛도 남긴다. FA 인플레이션이 벌어진 지난 겨울 장원준(두산, 4년 88억 원), 최정(SK, 4년 86억 원) 등이 받은 대우를 감안할 때, 똑같은 FA 자격으로 이들보다 국내 경력에서 뒤질게 없는 윤석민이 최고대우를 받은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외진출에서 실패에 가까운 결과물을 받아들고 돌아온 선수들이 정작 국내에서는 최고 대우를 보장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야구의 체면을 깎아먹는 것은 물론, 앞으로 해외진출에 대한 잘못된 관행을 남겨줄 소지도 크다.

한화 김태균은 2012년 일본 구단과의 계약을 중도파기하고 국내로 돌아오면서 FA 자격이 없는 대신 연봉으로 계약금을 보상받는 조건으로 연 15억 원을 받는 최고연봉 선수 반열에 올랐다. 윤석민은 메이저리그는 근처도 못가보고 트리플A에서도 초라한 성적에 머물다가 돌아온 선수다.

해외에서의 성과가 어떻든 잠깐 나갔다 돌아오기만해도 국내에서는 최고 대우를 받는 전례가 되풀이될 경우, 장기적으로 선수들이 해외진출을 안이하게 생각하고 국내 야구계를 '보험용' 정도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을 수도 있다. 윤석민의 국내 복귀는 환영할 일이지만, 해외진출을 꿈꾸는 선수들과 국내 야구계가 시장질서에 대해 좀 더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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