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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뜰에서 달집태우기 하는 나포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들
 십자뜰에서 달집태우기 하는 나포초등학교 학생과 학부모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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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을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면사무소에서 안내 말씀드립니다. 오늘은 1년 중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입니다. 조금 후 오후 7시부터 '십자뜰'에서 나포초등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대보름 쥐불놀이 행사가 열립니다. 불을 보시더라도 놀라지 마시고, 추억의 쥐불놀이가 생각나는 분들은 가족과 함께 나오셔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5일은 정월 대보름이었다. 우리 민족의 밝음 사상을 반영하면서 다채로운 민속이 전해지는 이날은 상원(上元), 대보름 등으로 불리었다. 기자가 사는 군산시 나포면은 아침부터 을미년(2015) 한해 주민들의 건강과 복덕을 비는 '나포 십자뜰 풍물패'의 풍장소리가 대보름 분위기를 돋우더니 오후에는 쥐불놀이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안내 방송은 시곗바늘을 50~6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 그 옛날 대보름은 그야말로 하루가 풍성하고 즐거웠다. 어른들은 아침부터 거지 옷차림으로 밥을 얻으러 다녔고, 아이들은 풍물패를 따라다녔다. 전날 잠자리에서 부럼을 깼고, 새벽에 일어나 동생과 누나에게 더위를 팔았다. 어머니가 시루에 정성 들여 쪄낸 찰밥(오곡밥)을 손가락을 꼽아가며 먹었고, 귀밝이술을 마셨으며, 쥐불놀이에 쓸 잡목을 주우러 선창가와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나포초등학교 학생들의 쥐불놀이 장면
 나포초등학교 학생들의 쥐불놀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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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숭숭 뚫린 깡통에 불쏘시개와 잘게 자른 장작, 솔방울 등을 가득 넣고 돌리면 불꽃이 원을 그리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놨다. 깡통을 힘껏 돌리다가 불꽃이 최고로 올라왔다 싶을 때 공중으로 던지면 장관을 이뤘다. 여럿이서 동시에 던지면 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쏟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춤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예로부터 농촌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논두렁 밭두렁의 마른 풀에 불을 놨다.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쥐를 잡고, 잡초에 붙은 해충의 알을 태워 없애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불을 '쥐불'이라고 했다. 불이 잘 타오르도록 짚을 깔았는데, 타다 남은 재는 다음 농사에 거름이 됐다. 특히 아이들 불장난(달집태우기, 쥐불놀이 등)은 겨우내 이어졌고, 논바닥에 쌓아놓은 볏단을 홀랑 태워 먹어 소동을 빚기도 했다.

쥐불놀이, 아이들 창의력과 건강 위해 계속 이어져야

어느 학생이 어렵게 살린 불씨를 친구에게 나눠주고 있다.
 어느 학생이 어렵게 살린 불씨를 친구에게 나눠주고 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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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40분쯤 집을 나섰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목을 움츠러들게 한다. 금강 담수호와 십자뜰을 마주 보고 있어서 그런지 바람 끝이 고추장보다 매섭다. 나포 '작은 도서관' 앞마당에는 추위를 잊은 어린이와 학부모들의 쥐불놀이 준비가 한창이다. 아빠들은 불쏘시개와 깡통을 나눠주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불씨를 살리느라 안간힘이다.

추위 속에서도 아이들은 마냥 즐거운 표정들. 6학년 최강호(13) 학생은 쥐불놀이는 처음이라며 날도 춥고 힘은 들지만 재미있다며 활짝 웃는다. 4학년 전수영(11) 학생은 3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쥐불놀이 방법과 내력을 조금 배웠다며 불씨 살리기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아이들 입술이 불꽃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자녀가 둘이라는 서현미(43)씨는 "학부모 모임에서 어느 아빠가 대보름 세시풍속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자고 제의해서 쥐불놀이 행사를 하게 됐다"면서 "분유나 통조림통을 구해 불깡통을 만들고, 음식을 준비하는 등 뒷수발해야 하니까 고생은 있겠지만, 아이들 창의력과 협동심, 정서 발달, 건강 등을 위해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타는 '유에프오'가 나타난 것 같다"

 어느 아빠가 농수로에서 쥐불놀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어느 아빠가 농수로에서 쥐불놀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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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가 완료되자 모두 십자뜰로 이동했다. 황금빛 가을이 지나가 버린 들녘은 황량하다. 체격이 우람한 한 학부모가 "자~, 여기를 보세요. 깡통은 이렇게 힘차게 돌려야 불꽃이 크게 살아납니다"라면서 시범을 보인다. 세상에 태어나 쥐불놀이를 처음 구경하는 아이들, 불꽃이 둥근 원을 그리자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진다.

아빠들은 한해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아이들 깡통에 불씨를 담아주기 위해 농수로에 자그만 달집을 만들고 불을 지핀다. 그 순간 캄캄한 암흑세계였던 십자뜰이 대낮처럼 밝아진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이 깡통에 불씨를 담아 돌리기 시작한다. 쥐불놀이보다 달집태우기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 주위로 몰려든다.

부모와 자녀들이 펼치는 쥐불놀이는 텅 빈 운동장처럼 쓸쓸했던 십자뜰을 이내 화려한 불꽃쇼 무대로 바꿔놓는다. 보름달 몇 배 크기의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불꽃들이 구경꾼까지 신명나게 한다. 불씨가 담긴 깡통을 공중으로 던지면 한 송이의 불꽃이 활짝 피어나면서 환호성이 터졌다. 어둠속에서 "야, 불타는 '유에프오'가 나타난 것 같다" 소리가 들려오기도.

어느 학부모 제의로 열린 나포초등학교 학부모와 학생들의 정월대보름 쥐불놀이 행사는 오후 8시 조금 넘어서야 막을 내렸다. 아래는 그날의 쥐불놀이 장면들이다.

십자뜰에서 펼쳐진 쥐불놀이1
 십자뜰에서 펼쳐진 쥐불놀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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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뜰에서 펼쳐진 쥐불놀이2
 십자뜰에서 펼쳐진 쥐불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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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뜰에서 펼쳐진 쥐불놀이3
 십자뜰에서 펼쳐진 쥐불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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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뜰에서 펼쳐진 쥐불놀이4
 십자뜰에서 펼쳐진 쥐불놀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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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월대보름, #쥐불놀이, #군산 나포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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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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