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유채꽃
▲ 제주도 유채꽃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서울엔 꽃샘추위가 한창인데 유채꽃이 피었다기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역시 장관이다. 양지바른 곳부터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도 가장 빨리 유채꽃이 피는 곳이 산방산 기슭이다. 남녘 바다에서 불어오는 춘풍이 꽃망울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설이 엊그제인데 벌써 피었다. 바람이 거세다. 꽃구경도 좋지만 잠시 숨고르기를 해야겠다.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았다. 창밖에 보이는 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제법 세련됐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몸이 확 풀리는 기분이다.

귀엽다
▲ 카페 케익 귀엽다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주변을 둘러봤다. 30여 명의 손님 중에 남자는 두세 명. 나머지는 모두가 여자다. 혼자 또는 둘. 셋, 넷이서... 바람 많고, 돌 많고, 여자 많은 제주라 하지만 그래도 그렇다. 산수가 안 된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왜 이렇게 여자가 꼬이는지?

하멜이 타고 온 배가 시야에 들어왔다. 17세기 범선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타이완을 출발한 스페르베르호가 하고많은 바닷가 중에 왜 하필 이곳으로 흘러들어 왔을까? 해류에 밀려왔을까? 원인을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빨려들어 왔을까? 궁금해진다.

어찌됐든 한양으로 강진으로 끌려다니긴 했지만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가 <하멜 표류기>를 남기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곳으로 들어온 게 그에겐 행운이었지 않은가? 행운의 땅? 아리송하다.

기념관 바로 옆에 불쑥 튀어나온 바위. 용머리 해안이란다. 봄을 빨리 느낀다는 것은 예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인체에도 예민하게 느끼는 곳이 있다. 튀어나온 곳이다. 용머리가 머리를 아프게 한다.

안내판
▲ 촛대바위 안내판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전국의 지명에는 촛대바위가 많다. 동해 앞바다 추암에도 있고 울진에도 있다. 충북 괴산에도 있고 경남 고성에도 있다. 뿐만 아니라 북악산에도 있다. 모두가 남자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바위들이다. 점잖은 우리 선조들이 그걸 ㅈ대바위 라고 부르기 뭐해 순화해 부른 것이 촛대바위다.

제주에는 용두암, 용머리 해안 등 용(龍)이 들어간 지명이 많다. 그래서 용을 좋아하는 중국 관광객들이 많다고 하지만 남자들의 자위행위를 용두질이라고 하듯이 용두는 남자의 생식기를 암시한다.

위성을 바다에 띄워놓고 내랴다 본 산방산
▲ 구글 위성을 바다에 띄워놓고 내랴다 본 산방산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노트북을 꺼내 바다위에 구글 위성을 띄웠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경탄 그 자체였다. 수평선 위에 불쑥 튀어 오른 곳. 잘생긴 남자의 귀두를 닮았다. 쌍방울 두 개까지 그렇게 같을 수가 없다. 한라산과 교접하다가 튕겨져 나왔다는 전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유채꽃
▲ 산방산 유채꽃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한라산이 여성스러운 산이라면 산방산은 남성스러운 산

서귀포 산방산(山房山). 해발 395m 밖에 되지 않은 별로 높지 않은 산이다. 아무리 낮아도 산은 산이다. 헌데, 산 이름이 독특하다. 백두산, 금강산, 태백산처럼 관습의 명칭을 갖고 있지 않고 산(山)에 둘러싸여 있다. 더구나 가운데에 있는 방(房)자. 이것이 묘한 여운을 풍긴다.

방(房)자의 사전적 의미는 곁방, 규방(閨房), 침실(寢室)이다. 은밀하다. 유방(乳房)도 같은 방(房)자를 쓴다. 따라서 산방은 여성스러움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산방(山房)은 산에 방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산에 여성스러운 방이라? 호기심 땡긴다.

한라산은 분화구가 있다. 기생화산 '오름'도 분화구를 갖고 있다. 헌데, 산방산은 분화구가 없다.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정상이 날아가 그 자리가 백록담이 됐고, 튕겨져 나간 정수리 부분이 서귀포에 떨어져 산방산이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크기도 엇비슷하고 조면암질도 같다.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전설이 나왔으니까 이야기 한 토막 더 꺼내보자. 아주 아주 먼 옛날. 산방산 깊숙한 곳에 있는 산방굴. 산방산 수호신의 침소다. 그것도 남신이 아니라 여신(女神). 어떻게 꾸며놨을까? 호기심 작렬. 그러나 아무도 들어가 본 사람이 없다.

여신은 신(神) 생활이 따분하고 무료했다. 모든 인간이 경배하고 존경하는데 오히려 인간을 동경했다. 이유는 딱 하나. 인간들의 사랑이 부러워서. 뜨거운 사랑을 갈망하던 여신이 거미줄을 쳤다.

어느 날. 산머루를 따던 총각이 비바람을 피해 동굴에 들어왔다. 아이돌같이 잘 생긴 총각이었다. 그 총각을 본 쥔장. 한눈에 가버렸다. 이때부터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 생겼다나 어쨌다나.

여신의 레이저가 불을 뿜었다. 레이저 총을 맞은 총각은 눈이 멀었다. 왕관을 집어던진 여신이 옷고름을 풀었다. 불타는 밤을 보낸 여신은 평범한 아낙 산방덕이가 되었다. 산방산의 설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 풀었느냐, 풀게 놔두었느냐'가 중요하다. 강제는 당장 철창 깜. 헌데, 설화에는 '풀었다'고만 적혀있다. 본 사람도 없고 인증샷도 없으니 뭘로 증명해? 그래서 설화다.

제주에서는 물론 육지에서도 여자이되 남자의 욕망을 품은 여인과 남자이면서도 여성스러운 남자가 몰리는 곳이 산방산 주변이란다. 묘하게도 그런 사람들을 흡인하는 블랙홀이다. 휴먼과 샤먼이 혼재된 난해한 기슭이다. 한마디로 기(氣)가 쎈 지역이다. 때문에 기에 빨려 들어왔거나 기를 충전하기 들어온 것이리라.

여인의 눈물은 사랑일까? 미움일까?
▲ 연인 여인의 눈물은 사랑일까? 미움일까?
ⓒ 삭홍

관련사진보기


여자는 자기를 사랑한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하고, 자기가 사랑한 사람에게 일생을 걸고 싶은 꿈을 꾼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같지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욕망한다. 이율배반적이지만 타율상반적이다. 이것이 여자의 본질 아닐까. 찾는 자신은 모르지만 이런 여자가 즐겨 찾는 곳이란다. 옆구리가 시리거나 가슴이 허(虛)한 사람은 당연하고.

우리의 옛 여인네들은 영험한 곳에 기도를 드렸다. 팔공산 갓바위와 부암동 부침바위, 인왕산 선바위가 대표적이다. 헌데, 산방산엔 머물다 가기만 해도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인간으로 환생하고픈 산방산 여신이 소원을 이룬것처럼. 제주에 전지훈련 온 히딩크가 벤치마킹하여 꿈을 이루었는지 모른다.

제주와 사랑. 제주와 여자. 영원한 태마다. 그래서 산방산 아래 해안도로를 랑망 가도라고 불러주고 싶다. 낭만이 아니다. 알프스에 로맨틱가도가 있듯이 제주의 사랑과 로망의 가도라는 뜻이다. 찻집에 앉아 창밖으로 바라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태그:#제주도, #서귀포, #산방산, #여자, #사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