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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홍대 앞 거리캠페인 중인 알바노조
▲ 홍대 거리캠페인에서 마주한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6월, 홍대 앞 거리캠페인 중인 알바노조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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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최저임금 결정시기를 앞두고 알바노조가 홍대 길거리 캠페인을 나섰을 때였다. 세월호에 풍선이 매달려있고, 두둥실 올라가던 벽보를 보고 잠시 마음이 먹먹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라고 써진 글귀를 보며 나도 '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아'라고 되뇌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 신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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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은 세월호 농성 당시 많은 유가족들과 시민에게 울림을 전했다. 1인시위을 하며 들고 있었던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그림은 SNS를 타고 퍼졌으며, 티셔츠로 재탄생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에까지 전달되었다.

지난 2월 27일에 열린 제3회 레드어워드(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주최) 시상식에서 미술 부문에 신주욱 작가가 선정됐다. 신 작가는 나에게 먹먹함을 가져다 준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의 작가이자, 지난해 10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가족과 걸개그림 그리기 '진실을 그려요 안전을 그려요' 행사를 진행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신 작가가 2월 동안 세월호를 주제로 한 '바른 내일' 전시회를 마치고,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신주욱' 전을 연다. 3일, 전시회가 열리는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카페 브하쎄(brassee)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던데,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디자이너는 아니었지만,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를 해 집에 종이가 많았어요. 꼬마일 때부터 종이에 물감과 크레파스로 그림을 자주 그렸고, 만화책을 많이 보면서 커 왔죠. 그런데 부모님이 순수미술로 미대를 가는 것을 반대하셔서 의류학과에 가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졸업하고 요즘 '열정페이'로 문제가 되었던 이상봉 디자이너실에서 1년간 무급으로 인턴 생활을 했어요. 그리고 군대를 갔죠."

- 요즘 이슈가 되었던 '열정페이'의 당사자였군요. 
"제대 후 세계를 보는 눈이 변했고, 패션디자이너로 살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생각했어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직을 해야겠다며 관뒀어요. 말이 좋아 이직이지 백수가 된 거에요. 그때가 딱 사회적으로 청년실업이 증가하는 시기였고, 개그콘서트에서도 백수가 개그의 소개가 될 때였어요.

그때부터 늘 집안에, 그것도 방에만 있으니 부모님이 걱정을 하셨고요, 기댈데가 필요해서 성당에 나갔고, 천주교 예수살이공동체 활동을 시작하면서 제 삶의 방향을 잡기 시작했어요. 이때 신부님의 추천으로 성당에 벽화를 그려볼 기회가 있었죠. 벽화를 완성하고 나서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하며 자존감이 확 올라갔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거죠. 집 수리를 위해 버려진 가구와 나무 등을 보며 나무에 그림을 그렸는데, 2006년부터 홍대 프리마켓에 그림을 팔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쭉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게 된 거죠."

- 어떤 삶을 살고 싶으셨던 건가요?
"제가 작가명으로 'Lazy Pink Whale(LPW)'을 쓰고 있는데 '게으르고 낭만적인 고래'라는 의미거든요, 천천히 그리고 낭만적으로 살아가는 큰 인간이라는 뜻이에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패션산업에 있었는데, 패션 산업의 기본은 1년을 빠르게 사는 거예요. 1년 빠르게 조사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는 것이 잘 맞지 않았던 거죠. 무엇보다 남의 이름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싶었는데 그것도 안되었고요."

그의 작품에는 꽃이 화사하게 펴있다. 사람들에게 밝고 꽃이 피어나고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줄 수 있는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어서이다.
▲ 신주욱 작가 그의 작품에는 꽃이 화사하게 펴있다. 사람들에게 밝고 꽃이 피어나고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줄 수 있는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어서이다.
ⓒ 알바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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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으르게 산다고 하니, 하루 일과가 궁금해지네요.
"오전 10~11시에 일어나요. 눈을 떠서는 누워서 오늘 어떻게 보낼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몰리기 전인 11시 반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와요.

작업실(겸 집)이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요즘처럼 전시가 있을 때는 전시장에 나와서 메일이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변도 달고, 주문 들어온 일도 하고요. 오후 5시쯤 되면 '뭘 먹지? 누굴 만나지?'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약속을 잡는 편이 아니고, 술마시는 자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생활이 늘 단조롭기는 해요.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고, 12시쯤 작업실에 들어가 밀린 페이스북을 하고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놀고요. 요즘 미생에 한참 빠져서 보고 있는데 감명을 받아서 영감을 찾기도 하고, 그러다가 4시쯤 자요."

-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부러운 일상이에요.
"지금 7~8년 차가 되가니까 이런 삶에 익숙하지만, 1~2년 차에는 엄청 불안했어요. 그림을 그리는데 수입은 생기지 않아 조바심도 났고, 누가 부르면 뒤처질까봐 싫지만, 나가는 자리도 있었었죠. 지금이 저는 편해요. 개인적으로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행복할까 싶기도 하고,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기도 하고요, 지금 상황을 즐기면서 열심히 살고 있어요."

- 세월호 관련 그림을 통해서 많이 알려지셨잖아요.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날인데 그날 전 전시회를 오픈했죠. 가톨릭 신자라면 명동성당 아래에 있는 전시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싶어해요. 그날, 아침에 '배가 가라앉고 있다. 그런데 승객들을 구했다'는 뉴스를 보고 "안심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전시가 2주였는데 많이 우울했어요. 우야무야 전시도 끝났고요. 5월 5일, 성당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발뉴스에서 나온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로 그림을 그려 명동, 서울시청 등에서 1인 시위를 하자고 한 거죠.

그때 찍힌 사진들이 SNS을 타고 돌아다니게 되었고, 저도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서 배포하기 시작했어요. 인쇄해서 뿌리기도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마포구 일대에 벽보를 붙이기 시작했죠. 풀을 개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붙였어요. 그러면서 함께 활동하게 된 어머니들과 티셔츠도 만들고, 교황님 오실 때 영어로 만들기도 했고…. 이게 나에게 뭘까, 슬픔이고 아픔이고 힘든 일인데,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인데…. 나는 뒤에 있고, 그림으로만 지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 이전에도 세상으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의 다양한 현장에서 작업을 하셨던데요.
"첫 시작은 용산역 앞 남일당에서였죠. 용산참사가 난 후, 레아호프가 레아갤러리로 바뀌면서 작가들이 전시를 했어요.

제가 서울민족미술인협회 회원인데, 헤이리에서 만난 선생님께서 연락을 하셔서 만장도 쓰기도 했고, 전시회 및 추모도 진행했어요. 그때 생각하면 현장에서 뭔가 하는 게 참 무서웠죠. 하지만 사람들이 작품을 보러오게 레아갤러리에 오게 되고, 사람이 더 많이 오면 좋았던 것죠.

작업이 빠른 편이고, 직관적으로 그림을 그려서인지 현장에서 찾으시는 경우도 많아요. 2013년 11월에는 밀양 겨울 밭에서 희망버스를 맞이하면서 다양한 얼굴 그림을 그려 조형물을 만드는 작업도 했죠. 강정 평화컨퍼런스와 평화대회가 열리는 지난 9월에는 강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평화십자가를 만들고,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기도 했어요.

지난해 10월에는 세월호 대책위에서 청운동 농성장 천막이 아이들의 시신을 확인하는 천막과 같은 것이어서 유가족들이 힘들어한다고 해서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걸개그림 그리기도 진행하기도 했고요."

- 화가로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 같아요.
"처음에는 내가 살아야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 싫어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런데 처음부터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번다는 힘들죠. 잘 안 벌리니까 들어오는 일을 다하고. 작업했는데 작업비를 안 주기도 하고요. '사회가 무섭구나', '눈 뜨고 코 베이는 것이 이런거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생존을 위한 작업을 하다보면 남는 것이 없는 거 같아요. 돈은 벌긴 하지만 만족을 느끼지는 못했죠. 반면, 그림을 그리고 "고맙습니다. 작가님"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느꼈을 때 작가가 되어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해요. 작업의 동기이자 영감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은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지난 2월 27일 레드어워드 미술부분에 선정된 신주욱 작가. 신 작가는 다양한 현장에서 작업해왔다.
▲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의 신주욱 작가 지난 2월 27일 레드어워드 미술부분에 선정된 신주욱 작가. 신 작가는 다양한 현장에서 작업해왔다.
ⓒ 강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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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전시하고 있는 '신주욱 展'은 어떤 전시인가요.
"바른내일 전시가 끝난지 얼마 안 되었고, 봄이 오고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어가고 있으니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나 아이들을 그린 그림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어요. 제주와 오고갈 때 세월호를 타 본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을 떠올리면 무서운 느낌이 많이 나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밝고 꽃이 피어나고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줄 수 있는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2% 정도의 위트도 담겨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신을 그린 작품들도 있는데, 제 작품의 신들은 슈퍼맨 같은 이미지(외모)를 갖고 있으면서도 인간사회를 강압적이지 않게 보듬으며 지켜보는 사람이기를 바라요. 무섭지 않으면서도 강한 신의 존재랄까요. 

인공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지 않아 나무에 그림을 그리고 있고, 버려진 가구나 나무(폐목)에 생명을 불어넣었어요. 밑색을 깔지 않아도 나무의 포근한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전해주세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아무것도 진척이 없는데, 될 때까지 함께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제 그림이 앞으로도 많이 필요할 것 같고요. 그리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발로 뛰면서 작업하는 작가가 되려고 하는데요, 사안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고 싶고요. 활동가라는 표현은 어색하지만 활동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려고요."

* 신주욱 전.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카페 브하쎄(서울 마포구 연남동). 3월 7일 오후 2시 오프닝 파티가 열립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강서희는 알바노조 홍보팀장입니다. 제3회 레드어워드에서 <알바들의 유쾌한 반란>(박종철출판사, 권문석 기획, 박정훈 씀, 2014)이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알바노조 http://www.alba.or.kr 02-3144-0935)



태그:#알바노조, #신주욱,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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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알바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2013년 7월 25일 설립신고를 내고 8월 6일 공식 출범했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인 시급 10,000원으로 인상, 근로기준법의 수준을 높이고 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알바인권선언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http://www.alb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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