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맨 국내 메인 포스터

▲ 버드맨 국내 메인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드디어 <버드맨>이 개봉했다.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각본, 촬영상을 받은 데다 골든 글로브와 크리틱스 초이스, 런던 비평가 협회상 등 유수의 시상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버드맨>이 한국 극장가에 상륙한 것이다. 오스카 수상 직후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 김치를 비하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영화진흥위원회 통한전산망 기준) 4위에 진입하며 무난한 출발을 알렸다.

매튜 본 감독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독보적인 흥행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3월 5일 함께 개봉한 <순수의 시대>, <헬머니>, <버드맨>은 나란히 2, 3, 4위를 기록했다. 오직 노골적인 섹스신으로 승부하는 CJ 엔터테인먼트의 <순수의 시대>는 평단과 관객 모두의 악평을 딛고 압도적인 스크린과 상영횟수를 통해 초반 몰아치기에 나섰다.

익숙한 구성 가운데 욕배틀이라는 파격적 소재를 배치한 <헬머니>와 오스카 작품상에 빛나는 <버드맨>이 그 뒤를 쫓는 모양새다. 세간에서는 영화의 완성도와 반비례하는 초반 순위라고도 하지만 성패는 시간이 흘러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자존감 낮은 현대인의 이야기

버드맨 대화하는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분)의 두 자아

▲ 버드맨 대화하는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분)의 두 자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버드맨>은 잘 나가는 할리우드 영화스타였지만 현재는 몰락한 연극인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분)의 이야기를 다룬다. 과거의 영광을 잊고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성공하고자 했던 리건은 수 년째 거듭된 실패로 몰릴대로 몰린 인물이다. 아내와는 이혼하고 딸은 마약중독으로 재활원에서 치료를 받는 등 파탄난 가정사도 그를 괴롭힌다. 영화는 리건이 인생을 걸고 준비하는 마지막 연극을 배경으로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 평단과 대중까지를 거침없이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라 할 수 있다.

리건은 정신분열적 인물이다. 영화엔 그의 세 가지 자아가 번갈아 등장하는데 연극에의 숭고한 꿈을 품고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고뇌하는 첫 번째 자아와 버드맨의 차림으로 등장하는 두 번째 자아, 그 사이에서 소외되어 있는 진정한 리건 톰슨이 그것이다. 편의상 첫째와 둘째, 셋째로 구분하도록 하겠다. 한 인물의 정신이 셋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점에서 얼핏 정신분석학적 성격구조이론에서 말하는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의 구분이 떠오르지만 특별한 관련은 없다.

우선 첫 번째 자아는 영화의 오프닝부터 사실상의 주역으로써 이야기를 끌어가는 리건이다. 그는 연극계에서 작품으로 인정받길 원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고뇌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스스로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고 믿는다. 영화는 현실에서의 좌절과 실패 이후 그가 혼자 있는 장면을 자주 비추는데 그는 그 때마다 초능력을 쓰며 스스로를 특별한 인물이라 여기고 위안받는다.

두 번째 자아는 버드맨의 자아다. 그는 리건이 과거에 연기했던 버드맨의 복장으로 등장해 첫 번째 자아에게 끊임없이 영화계로 돌아갈 것을 권한다. 그는 연극계란 허위와 허세로 가득하며 관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영화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첫 번째 자아가 홀로 있을 때 주로 등장하는데 오직 그만 인식하는 환영으로 그려져 관객들은 리건이 정신분열을 겪고 있으며 두 번째 자아가 부차적 자아임을 인식하게 된다.

영화엔 앞의 두 자아에게 소외된 세 번째 자아도 등장한다. 그리고 이 자아야말로 실존하는 리건 본연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학창시절 연극을 하다 우연히 방문한 극작가 레이먼드 카버에게서 연기를 잘 봤다는 메모를 받은 후 연극을 동경해 왔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메모가 쓰여진 냅킨을 소중히 보관해 왔지만 이를 본 배우와 평론가는 그저 냅킨일 뿐이라며 폄하하거나 무시할 뿐이다. 그에겐 오직 이 냅킨 하나만이 자존감의 근원으로 보여지는데 이는 레이먼드 카버가 그를 인정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리건 뿐 아니라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갈구하는 인물이 수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 영화는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자존감 낮은 현대인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초능력도 없고 더는 수퍼스타도 아닌 리건은 작품에 자신감도 없을 뿐더러 쏟아지는 비판에 한 마디 반박도 하지 못할 만큼 자존감 낮은 인물로 그려진다. 배우인 마이크와 첫 리허설을 할 때나 딸인 샘이 마리화나를 피는 걸 발견했을 때 그들로부터 작품에 대해 강한 비판을 듣지만 한마디 반박도 하지 못하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존감의 마지막 보루였던 냅킨마저 부정당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환상적 리얼리즘 기법을 영화에 적용하다

버드맨 브로드웨이 위로 날아오른 리건(마이클 키튼 분)

▲ 버드맨 브로드웨이 위로 날아오른 리건(마이클 키튼 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첫 번째 자아의 초능력과 두 번째 자아의 환영은 남미의 유명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환상적 리얼리즘 기법을 영화적으로 적용한 사례라 할 만하다. 물론 이 같은 시도를 감행한 영화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토록 집요하고 사실적으로 쓴 영화가 흔치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환상적 리얼리즘 기법을 반영한 영화로 이해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일례로 리건의 첫 번째 자아가 비행하는 장면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씨 인사이드>, 영화의 엔딩은 자꼬 반 도마엘의 <제8요일>과 유사하게 연출되었지만 전면적으로 환상을 현실처럼 묘사한다는 점에서 한 발 나아간 작품이라 하겠다. <씨 인사이드>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전작 <비우티풀>의 주연 하비에르 바르뎀이 먼저 출연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첫 번째 자아가 지닌 초능력이 진짜인가는 상당한 시간동안 이야기에 서스펜스를 부여하며 일종의 반전까지 선사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서사보다는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인데다 형식적으로도 여러 제약을 가진 만큼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었는데 초능력과 정신분열 같은 장치가 끝까지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헐리웃과 브로드웨이, 평단과 대중까지를 거침없이 풍자하는

버드맨 리건(마이클 키튼 분)에게 손가락질 하는 마이크(에드워드 노튼 분)

▲ 버드맨 리건(마이클 키튼 분)에게 손가락질 하는 마이크(에드워드 노튼 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한다면 풍자성이 매우 강한 블랙코미디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 평단과 대중까지를 풍자하는데 그 수위가 깊지 않다고는 하지만 대상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어서 어떤 의미로는 할리우드가 도달할 수 있는 풍자의 극단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영화는 첫 번째 자아가 대표하는 연극계, 두 번째 자아가 대표하는 영화계, 평론가를 통해 보여지는 평단, SNS와 대중매체, 딸의 모습을 통해 보여지는 대중에 이르기까지를 런닝타임 내내 거침없이 풍자한다.

영화가 풍자하는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로 허위와 허세로 가득한 예술인의 모습을 들 수 있다. 영화는 초반부 리건 톰슨이 여러 매체의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꽤나 재미있다. 이 자리에서 연극전문잡지의 기자는 거듭해서 롤랑 바르트를 인용해 질문을 해댄다. 그런데 영화는 롤랑 바르트라는 이름만 잡아낼 뿐 그의 질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리허설과 프리공연을 통해 반복되는 연극 장면, 주로 식탁신도 이와 비슷한 사례다. 여기서도 수차례 장황한 대사가 거듭되는데 관객들은 이 대사가 도무지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연극의 주연배우가 마이크(에드워드 노튼 분)로 바뀌고서 열린 첫 리허설에서 그는 리건에게 장황한 대사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대사를 보다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다. 첫 번째 자아에게 두 번째 자아가 나타나 '사람들은 (블록버스터처럼) 펑펑 터지는 걸 원하지 (연극처럼)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것엔 관심이 없어'라고 말하는데 이 역시 의미심장하다.

리건의 첫 번째 자아는 연극을 통해 인간 본성을 파헤치고 관객으로 하여금 깊은 감동을 받게하며 나아가 의식의 지평까지 넓힐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를 꿈꾼다. 그는 스스로를 숭고한 예술인으로 생각하고 말하지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그에게선 모순된 모습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마이크가 리건의 이야기를 훔쳐 연예매체와 인터뷰해 1면에 실린 것을 배아프게 여긴다거나 평론가를 찾아가 몰래 술을 산다거나 하는 장면이 그렇다.

평단과 관객에게 사랑받는 배우로 등장하는 마이크 역시 허위로 가득찬 인물이다. 그는 실생활에선 6개월 째 발기부전이면서도 무대에선 실제 성행위를 하겠다고 들이대는데 이런 장면이 그의 왜곡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극중에서 그가 샘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는 현실에선 거짓으로 가득찼을지 몰라도 무대 위에서 만큼은 진실한 배우인 것이다.

그의 이런 모습은 여러 캐릭터를 번갈아 연기하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여배우들과 맞물려 주객이 전도된 배우의 삶을 풍자하고 있다. 삶을 망가뜨리면서까지 무대 위에서 혼신의 열정을 다하는 배우들이 리건의 보잘 것 없는 연극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큰 아이러니라 하겠다.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한 풍자도 잊지 않는다. 첫 번째 자아와 두 번째 자아의 대화 장면에서 영화는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상상으로 가볍게 소환한다. 거대한 새와 헬리콥터 등이 등장해 건물을 박살내는데 마치 감독이 '이것 봐, 아무것도 아니야. CG는 그냥 외주 맡기면 돼'라고 말하는 듯하다. 단순히 두 자아가 충돌하는 상상장면에서 상당한 퀄리티의 블록버스터 액션을 아무렇지 않은 듯 펼쳐내는 걸 보고 있자면 액션장면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몇몇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괘씸하게 여겨진다.

세 번째 자아의 실존적 결정을 연극적 기법으로 해석하고 온갖 어려운 용어를 동원해 글을 쓰는 평론가의 모습으로부터 영화는 평단까지도 풍자한다. 단지 할리우드 스타 출신이라는 이유로 리건 톰슨에게 적개심을 드러내는 평론가의 모습을 보며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많은 평론가들이 발을 저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밖에도 영화는 자극적인 이슈만 쏟아내는 황색 저널리즘과 주객이 전도된 SNS 등을 통해 대중이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도 신랄하게 풍자한다. 그야말로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 대중과 평단 사이를 거침없이 오가며 이들 사이의 심각한 괴리와 허위의식, 왜곡 따위를 적나라하게 들추는 것이다.

<버드맨>은 OOO의 영화다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와 엠마누엘 루베즈키

▲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와 엠마누엘 루베즈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버드맨>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다.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알폰소 쿠아론, 기예르모 델 토로와 함께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가장 잘 나가는 멕시코 감독 가운데 한 명인 그는 할리우드로 무대를 옮겨와서도 멕시코 출신 스태프를 적극 활용해 영화를 찍어왔다. 그는 이냐리투 패밀리라 불러도 좋을 협력자들과 함께 영화를 기획했고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무대에까지 그들과 함께 올라 소감을 전했다.

또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촬영, 편집, 음향, 조명 등 여러 면에서 전격적인 시도를 감했는데 특히 촬영의 수준이 대단했다. 그는 알프레드 히치콕, 브라이언 드 팔마도 하지 못한 도발적인 롱테이크 촬영을 기획했고 이를 위해 알폰소 쿠아론과 <그래비티>를 작업한 멕시코 출신의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를 맞아들였다.

<버드맨>은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영화다. <그래비티>를 통해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을 받은 그는 역시 멕시코 출신의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팀에 전격적으로 합류했다. <그래비티>에서 오직 촬영의 힘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과 함께 지구궤도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했던 그의 기량은 <버드맨>에서 더욱 빛났다.

그는 관객이 복잡하게 꼬인 주인공 리건의 입장에서 영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카메라를 들고 미로와 같은 동선을 끊임없이 오간다. 후반부를 제외하고는 마치 한 테이크로 보이는 듯한 절묘한 편집과 그의 노력이 맞물려 영화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작품이 되었다. 무려 15장 분량의 대본을 한 테이크에 찍어내야 했기에 마치 라이브 공연을 하는 듯 했다는데 가장 많은 NG를 냈다고 알려진 엠마 스톤은 "마치 연극처럼 모든 테이크가 관련 있었다. '맙소사. 망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의 압박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버드맨>은 마이클 키튼의 영화다. 1992년 버드맨 3편을 촬영한 이후 제대로 성공한 작품이 없는 리건 톰슨의 모습에선 자연히 1992년 <배트맨 2> 이후 잊혀진 마이클 키튼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는 실제 자신의 모습과 극중 리건이 전혀 다르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관객들은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더 레슬러>에서 극중 인물과 주연배우인 미키 루크의 모습을 오버랩했듯이 <버드맨>의 리건을 보았다. 영화 속에서 리건의 마지막을 끝끝내 알 수 없었던 것처럼 <버드맨>의 선전에도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에 실패한 마이클 키튼의 모습이 그의 미래에 여전한 기대를 품게끔 한다.

<버드맨>은 에드워드 노튼의 영화다. 마이크를 연기한 에드워드 노튼은 <문라이즈 킹덤> 이후 간만에 비중있는 역할로 관객을 찾아왔다. 무대에 올라가면 관객과 평단이 사랑하는 배우지만 현실에선 허위로 가득찬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실제 에드워드 노튼이 그대로 반영된 게 아니냐는 무성한 뒷말에 그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가 맞다고 언급할 만큼 마이크는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인물 가운데 가장 그와 가까운 캐릭터였다. 연극무대에서 실력을 쌓았고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사랑받았지만 제작자들에겐 까다로운 배우로 소문이 났던 에드워드 노튼이 마이크와 과연 얼마만큼 비슷한 것인지 호기심이 인다.

<버드맨>은 안토니오 산체스의 영화다. '팻 매쓰니 그룹'의 드러머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린 재즈뮤지션 안토니오 산체스는 <버드맨>을 통해 처음으로 영화에 참여했다. 영화 속에서 음악은 헨드헬드 촬영과 어우러져 인물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표현하는 중요한 장치인데 감독은 소리의 생산자로 영화작업 경험이 전무했던 안토니오 산체스를 점찍었다. 그는 드럼 솔로를 통해 브로드웨이의 분위기를 대변하면서도 리드미컬하게 이야기와 어우러지는 소리를 끊임없이 생산해냈다. 그는 환각을 겪는 주인공이 건물 안으로 들어설 때 건물 안에서 뻔뻔하게 드럼을 연주하는 등 환상적 리얼리즘을 확장하는 역할도 소화해냈다.

왜 한국에는 <버드맨>과 같은 영화가 없을까?

버드맨 주요 배역 가운데 가장 적은 NG를 기록한 자흐 갈리피아나키스

▲ 버드맨 주요 배역 가운데 가장 적은 NG를 기록한 자흐 갈리피아나키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촬영과 음악, 편집과 조명 등에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참신한 스타일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내용 면에서도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 평단과 관객까지를 거침없이 풍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러모로 만족스런 작품이었지만 한 편으로 한국에선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할리우드에서는 그저 규모로 압도하는 블록버스터 만이 아니라 이런 영화도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버드맨>의 훌륭함은 단지 제작규모와 배우들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파격적인 기획과 참신한 형식, 완성도 있는 내용이 모여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인 것이다. 파격적이고 참신한 시도, 호소력있는 이야기라면 상대적으로 시장이 작은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어야 마땅한데 현실을 돌아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하나의 영화가 성공하면 이듬해 그와 비슷한 코드를 가미한 수십 개의 영화가 쏟아지니 가장 관대한 관객조차 지치고 실망하는 게 한국 영화의 현실이다.

이같은 현상이 그저 창작자의 안이함 때문이 아닌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암담하다. 극장을 틀어쥔 몇 개의 기업이 과징금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사 계열사가 배급하는 영화에 상영관을 유리하게 배정하는 행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기업들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획, 투자, 제작, 배급, 상영, 나아가 평론까지를 수직계열화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한국의 현실에서 거침없이 시장을 풍자하고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하는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그러니 이와 같은 영화가 개봉할 때 얼른 달려가 보고는 마음을 달랠 수밖에. 이마저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아니었다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영화였으니. 매일같이 쏟아지는 식상한 영화들에 지친 관객이라면, 할리우드가 도달할 수 있는 풍자의 극단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주저않고 이 영화를 추천하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버드맨 에드워드 노튼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마이클 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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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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