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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연차휴가계를 내고 체력관리에 들어갔다. 다음 주 평일 서울에 있는 딸의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서이다. 아이가 이사하는 날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은 아프지 않고 활기찬 심신으로 마음에 사랑을 담아 든든하게 지켜봐주는 일이다.

물질적인 무엇을 해주는 것보다 가족이 함께 가서 도와주는 것 이상의 선물이 없다고 생각한다. 막내아이는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에 170대 1의 경쟁을 뚫고 큰 회사의 인턴으로 뽑혔다가, 인턴 중에서도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강남에 있는 본사의 기획마케팅팀에 운좋게 입사한 아이다. 객지에서도 새벽에는 중국어학원을 다니고, 밤 늦게 퇴근하면 일본어와 운동을 게을리 않으며 자기 관리와 내일을 위해 바지런히 살아가는 아이이다.

대견하기도 하고 무탈하게 다녀야 할텐데 하는 엄마의 염려도 동시에 들었다. 구삭동이로 3키로도 되지 않고 거꾸로 나온 아이인 데다가,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와 6년간 떨어져 살아 무척 힘든 시기를 보냈다.

힘든 역경의 시기가 마치 파도를 넘나드는 연습이었던 것처럼, 청년기에도 힘든 일들이 닥치는 일이 수도 없이 있었는데 아슬아슬하기는 하지만 용케 파도의 흐름을 파악하고 고비를 지날 수 있었다.

이혼가정이기 때문에 환경이 어지러워서 그 역경의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인생의 파도는 일반가정에게도 불어오고 이혼가정에게도 불어온다. 마치 장애여서 힘겨운 일이 많지만 장애가 아니라도 힘겨운 일은 살아있는 목숨이면 누구에게나 오는 것처럼...

아이가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기숙사를 나와 조그만 원룸에 방을 얻었을때도 나는 올라가서 아이의 이사를 거들었다. 정말 그것은 원룸이라기보다는 쪽방이었다. 그리고 입사를 하면서 조금 더 나은 원룸을 구했다.

아이가 늦게 퇴근하고 원룸으로 가려면 지하철역 주변에 즐비한 온갖 음식점과 주점을 지나야 했는데, 그 주점이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얼큰한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 취객들이 많았다. 아이는 뭔가 불안감에 종종걸음을 치며 이중장치가 된 원룸의 비밀번호를 누를 때도 긴장을 하여 자꾸 뒤를 살펴보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월세를 내면 그만인 줄 알았지만 거기에 전기세 수도세 따로 내고 겨울 날에도 난방비를 따로 내고 나니 부담이 무척 크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이는 월세가 없는 전세로 가고 싶다고 하더니 전세대출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출을 받아서 전세로 가기로 하였다. 전세대란이라는 말 그대로 전세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였지만 그래도 용하게 전세를 구하였다.

출근시간이 이전보다 몇 십 분 더 걸리지만, 그래도 원룸에 살 때 반 정도만 대출이자로 내면 되고, 무엇보다 전셋집 주변이 일반 주택가와 비슷하기 때문에 귀갓길도 좀 안전할 것이다.

이제 서른이 넘어가는 막내 아이가 이 전세에서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저 나는 무탈하고 건강하게 월세이든 전세이든 아이가 주거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면서 주변도 조금씩 돌아보며 한 생애 잘 살아가길 희망한다.

잘 살아간다는 것은 남보다 좋은 일을 하고 좋은 자리에서 조금 더 돈을 벌며 이름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 비록 남의 앞이 아닌 남의 뒤라고 해도 현재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할 일을 착실히 하면서 건강한 심신으로 지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태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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