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미힐미> 차도현 MBC 수목드라마 <킬미힐미>에서 다중인격 캐릭터 차도현을 연기한 지성.

▲ <킬미힐미> 차도현 MBC 수목드라마 <킬미힐미>에서 다중인격 캐릭터 차도현을 연기한 지성. ⓒ MBC


누군가 배우 지성에게 7명 분의 출연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에서 그가 7개의 다중인격, 물론 확실히 표현된 인물은 5명이지만, 녹록치 않은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고 있는 것에 대한 칭찬이다. 그렇다면, 그 캐릭터에게 여러 색의 옷을 입힌 스타일리스트는 얼마나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을까.

단정하게 수트를 차려 입은 차도현은 어느새 황금색 가죽재킷을 입고 "기억해, 내가 너에게 반한 시간"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멘트를 날릴 수 있는 신세기가 됐다. 때로 하와이언 셔츠를 입고 전라도 뱃사람 페리박이 됐다가, 더플코트를 입고 안경을 쓰면 자살이 취미인 중2병 안요섭이 등장했다. 무엇보다 패션왕은 '내일 모레 마흔' 지성도 언니로 만드는 핑크색 교복의 안요나다.

MBC 수목드라마 <킬미힐미>에서 지성(차도현 역)과 황정음(오리진 역)의 스타일링을 담당한 윤슬기 실장(32)은 "이런 드라마는 처음"이라고 운을 뗐다. 드라마가 종반을 향해갈 때 만난 그는 "지성 씨 캐릭터의 콘셉트를 잡는 초반에는 헷갈리고 힘들었는데, 각 인격들이 분명해진 이후에는 특별히 어렵진 않았다"며 "시놉시스 상의 설명을 기본으로 캐릭터가 등장할 때마다 지성 씨, 드라마 의상팀과 상의했다"고 말했다.

"신세기의 강렬한 빨간코트, 정말 어렵게 구했다"

<킬미힐미> 신세기 차도현의 내면에 잠재된 분노와 폭력성, 잔인성이 표출된 인격으로 주로 강렬한 색상의 옷을 입었다.

▲ <킬미힐미> 신세기 차도현의 내면에 잠재된 분노와 폭력성, 잔인성이 표출된 인격으로 주로 강렬한 색상의 옷을 입었다. ⓒ MBC


"차도현이 스타일링하기 가장 어려웠어요. 주인격이니까 기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네이비, 그레이, 아이보리 등 차분한 색상 위주로, 셔츠에 니트 같은 깔끔한 느낌을 추구했죠. 내 남자친구, 남편이 이렇게 입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스타일이에요. 모든 남자들이 정장을 입었을 때 달라 보이지만, 깔끔한 마스크에 넓은 어깨를 가진 지성 씨는 차도현처럼 기본적인 아이템만 갖췄을 때 가장 잘 어울려요. 액세서리나 레이어드로 멋을 내려고 하지 않아도 멋스럽죠."

반대로 신세기는 '내 남자에게 입혀도 소화하기 어려울' 룩이다. 그가 입었던 새빨간 코트는 "남성복에서 찾아볼 수 없는 레드 색상"이라 "찾고 찾다가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딱 한 벌 발견한 것"이란다. 처음엔 가수 지드래곤을 참고했다는 신세기 스타일에 대해 윤 실장은 "어느 정도까지 센 느낌을 줘야할지 고민했다"며 "골드재킷도 아이돌처럼 보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신세기를 부각시켜주는 아이템이 됐다고 감독님도 좋아하셨다"고 설명했다.

가장 스타일링하기 쉬웠던 인격은 캐릭터가 분명한 페리박. 신세기가 차가운 느낌의 빈티지 실버 악세사리를 착용했다면, 페리박은 동대문에서 산 골드 악세사리에 구제시장에서 건진 백바지와 백구두를 매치했다. 쉽게 말해, '싼티'를 강조했다고 할까.

<킬미힐미> 안요나는 17세의 여자 인격으로, 다른 인격들의 고통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 깜찍(끔찍)발랄한 캐릭터다.

▲ <킬미힐미> 안요나는 17세의 여자 인격으로, 다른 인격들의 고통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 깜찍(끔찍)발랄한 캐릭터다. ⓒ MBC


"지성 씨가 가장 신경을 쓴 인격은 요나예요. 교복을 입자고 먼저 아이디어를 줘서 기왕이면 핑크색으로 제작을 했어요. 요즘 여고생들의 스타일을 고민하면서 교복 안에 트레이닝복을 입기도 했고요. 요나 잠옷은 제작진에게 받은 이미지와 비슷한 것을 찾아 구매했죠.

사실 남자 배우가 틴트를 바르고 뽀얗게 화장하기 쉽지 않을 텐데 몸 사리지 않고 캐릭터에 몰입하니까 저희도 열심히 준비하게 돼요. 자정에도 아이템이 생각났다며 전화한다니까요. 기본적으로 배우가 캐릭터를 잘 소화해서 옷도 빛나는 것 같아요."

일 덕분에 정우성에게 뽀뽀도?..."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윤슬기 실장은 영화 <내 머리속의 지우개>(2004) 촬영 당시 배우 정우성의 얼굴에 입술 자국을 남겨 '정우성 뽀뽀녀'로 한 차례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영화에 필요한 장면을 위해 감독으로부터 가장 예쁜 입술을 가진 여자 스태프로 선택,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며 뭇 여성들의 부러움을 샀다.

한 번 스치기도 어려운 연예인들에게 옷을 입히는 직업이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윤 실장이 2001년 드라마 의상팀의 막내로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 했던 일은 대개 '짐 나르기'였다고 한다. 홍보대행사에서 옷을 받아 커다란 가방에 꾸역꾸역 넣고 현장으로 뛰었던 과거를 떠올린 그는 "그래도 난 사수를 잘 만나 좋은 기회를 많이 얻었다"며 스승인 김성일 스타일리스트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어 "나 역시 후배들에게 일하기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윤슬기 스타일리스트 배우 지성과 드라마 <올인>(2003) 때 인연을 맺었던 윤 실장은 재작년 드라마 <비밀>에서 지성과 황정음의 스타일링을 맡았던 것을 계기로 <킬미힐미>에서 두 사람과 다시 일을 하게 됐다.

▲ 윤슬기 스타일리스트 배우 지성과 드라마 <올인>(2003) 때 인연을 맺었던 윤 실장은 재작년 드라마 <비밀>에서 지성과 황정음의 스타일링을 맡았던 것을 계기로 <킬미힐미>에서 두 사람과 다시 일을 하게 됐다. ⓒ 윤슬기


"가끔 예능에서 재미로 '야, 코디! 분첩 갖고 와'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게 참 싫어요. 코디네이터라는 말 자체가 하대하는 건 아니지만, 연예인 따라다니며 짐 들어주고 옷 챙겨주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잖아요. 배우 본인이 입겠다고 고른 옷인데도 반응이 안 좋으면 스타일리스트 탓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코디가 안티냐'는 쉬운 농담도 우리한텐 상처가 되죠."

지난 5일 방송에서는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인격들이 퍼레이드로 등장했다. 차도현이 오리진의 이름을 뺏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를 피해도, 다른 인격들이 '내 여자'를 만나러 온다는 건 다중인격이라 가능한 매력적인 설정이다. 올블랙의 시크한 의상은 강렬한 아이라인을 확인하기 전에 뒷모습만으로도 신세기가 돌아왔음을 알려줬다. 이렇게 스타일리스트는 단순히 옷을 입힐 뿐만 아니라, 옷으로 이야기를 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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