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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노을 10주년 첫작품 <보이첵>. 마리(한설, 오른쪽)와 갓난아이를 둔 가장 보이첵(신동선)은  가난 때문에 의사의 생체실험에 지원하며 점차 자신이 당나귀라고 착각하는 정신착란증세를 보인다.
 극단 노을 10주년 첫작품 <보이첵>. 마리(한설, 오른쪽)와 갓난아이를 둔 가장 보이첵(신동선)은 가난 때문에 의사의 생체실험에 지원하며 점차 자신이 당나귀라고 착각하는 정신착란증세를 보인다.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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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10주년을 맞은 극단 노을이 10주년 첫 작품이자 35회 정기공연으로 게오르그 뷔히너의 <보이첵>을 무대에 올렸다. 이번 공연은 노을소극장에서 2월 26일부터 3월 8일까지 공연된다.

흔치 않은 소재에다 특이한 극형식을 갖춘 <보이첵>은 독일의 신경학자이자 문학가인 게오르그 뷔히너(1813-1837)가 1836년 쓴 작품이다. 촉망받는 의학도로 24세의 나이에 티푸스로 안타깝게 요절한 뷔히너는 문학사에 남을 대표적인 두 작품 <당통의 죽음>과 <보이체크>를 남기는 대단한 활약을 했다. 그의 이름을 기리는 '뷔히너문학상'은 독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국내에서도 흔한 레파토리는 아니다. 2007년 국립오페라단이 국내 초연했고, 2014년 LG아트센터와 에이콤인터내셔날이 공동제작으로 창작뮤지컬 <보이첵>을 공연했다. 연극으로는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의자와 몸짓극을 중심으로 2000년 국내 초연을 했다. 사다리음죽임연구소는 이 작품으로 2007년 에든버러프린지페스티벌에서 2관왕 수상했다. 이후 2008년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2013년엔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했고, 그 외 몇몇 극단이 공연한 바 있다.

이번 극단 노을의 연극 <보이첵>은 오세곤 연출이 극본을 간결화해 30여명의 등장인물을 5명으로 축약했다. 또 뼈대를 살려 극도로 가난한 한 인간이 광기와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간결하고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나 파우스트 등 고대 희랍극은 대학로보다는 명동예술극장이나 아르코예술극장 등의 정통극장의 대극장에 올려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노을소극장의 연극 또한 70여명 관객이 오밀조밀 앉아서 대작 레파토리를 명징하고도 시적으로 연출해 내 무척 신선했으며, 작품의 방식이 극장의 규모와 함께 균형을 보여주어 좋았다.

특히 두개의 삼각형이 가운데서 무대를 두고 교차하는 형식의 간결한 무대와 왼쪽벽의 깨진 거울 등은 암울하고도 기괴한 극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무대 임일진).

보이첵을 조롱하는 '갑'질 3인방. 왼쪽부터 의사(김인수), 군악대장(유일한), 중대장(박우열).
 보이첵을 조롱하는 '갑'질 3인방. 왼쪽부터 의사(김인수), 군악대장(유일한), 중대장(박우열).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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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보이체크는 만난 지 2년 되는 아내, 갓 나은 아기와 함께 사는 가난한 가장으로 군에서 중대장의 온갖 잡무를 처리한다. 돈을 더 벌려고 의사의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완두콩만을 먹으며 버티던 중, 자신이 당나귀라고 생각하는 정신착란 증세에 점차 빠진다.

삶이 무료한 아내는 군악대장과 부정을 저지르게 되고 중대장이 알려줘 알게 된 보이체크는 결국 그녀를 호숫가로 데려가 칼로 찔러 죽인다. 박사, 중대장, 군악대장 모두에게서 조롱을 받으며 "가난"해서 모든 것을 잃게 된 한 나약한 인간의 어두운 삶이라는 가슴 아픈 여운을 남기며 극이 마무리된다.

간결한 연출 덕분인지, <보이첵>은 어떤 장르로 표현하든 어려운 작품이라는 선입견이 이번 작품을 관람 후 깨졌다.  이번 연극은 어디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 공감가는 이야기로 채워졌는데, 다섯 명의 등장인물은 시적이고 반복적인 대사와 정확한 동작으로 주인공 보이체크의 상황과 변화와 살인의 과정에 공감하게 된다.

주요배우 다섯명 김인수(의사), 박우열(중대장), 신동선(보이체크), 한설(마리), 유일한(군악대장)의 깔끔한 연기도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또한 마리와 군악대장의 탱고, 마리를 설레게 하는 군악대의 음악소리, 마리와 보이첵을 위협하는 음향으로 변모한 군악대의 음악소리,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일 때의 섬뜩한 고음의 글리산도 효과 등등. 복잡하지 않지만 중요한 곳에서 극의 맥을 정확히 표현하는 20개 장면의 음악과 음향효과도 눈길을 끌었다(음악 박진영 음향 이상규).

한편, 극단 노을의 차기작품은 작 손톤 와일더, 번역 및 예술감독 오세곤, 연출 이신영의 <금천구 시흥동 2015번지>이다. 극단 노을의 <보이첵> 연극을 보고나니, 다른 연극들도 좀 간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첵>을 어렵다고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이틀 남았으니 꼭 한번 와서 보시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플레이뉴스에도 함께 송고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보이첵 극단 노을 게오르그 뷔히너, #이신영 오세곤 이영택 장은수 임일진 , #김인수 박우열 신동선 한설 유일한, #박진영 이상규 안병순 장혜숙 이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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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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