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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콩찰밥을 좋아하는 저를 생각해 이렇게 어머니는 정월대보름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시네요~
▲ 이것이 어머니의 사랑인가요~ 어릴적부터 콩찰밥을 좋아하는 저를 생각해 이렇게 어머니는 정월대보름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시네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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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올 듯 말 듯 이젠 봄인가 싶어서 밖을 내다보면 쌀쌀한 찬 기온이 온몸을 감싸도는 것은 봄이 오기에는 좀 이른 시기여서 그런가 봅니다. 어느 나무엔 벌써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났지만 아직 이른 봄을 맞이하기엔 안타까움이 가득하기만 합니다.

지난 설연휴가 끝나고 언 땅이 좀 녹으면 몸에 좋다던 돼지감자도 캐야하는데 그때 연락하겠다던 큰형부도 여태껏 소식이 없네요. 때 아닌 황사에 비에 며칠은 우중충한 날씨만 계속이고, 날씨와 함께 마음도 자꾸 흐린 하늘만큼 우울해 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영향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5일)이 바로 정월대보름입니다. 아침마다 뉴스를 보지 않는 한 오늘이 무슨 날이고, 어떤 날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는 것이 바빠서 그렇기도 하고, 내가 사는 영역 이외에 관심이 적어서 또한 그렇기도 하겠지요. 아무튼 오늘이 정월대보름인가 보다 그런 생각만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같은 하늘아래 그리고 같은 시지만 제가 사는 동과 근무지의 기온은 어찌나 차이가 있는지 늘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근무지까지는 빠른 발걸음으로 걸어도 15분 거리는 됩니다. 쌀쌀한 기온에 한껏 움츠린 채로 한참을 걸어가고 있는데 이른 시간 아침부터 작은언니의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긴장하면서 받았더니 언니는 그 이른 시간 고향집에서 전화를 건다고 했습니다. 무슨 일로 이 이른 아침에 전화를 했냐고,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놀랐다고 하니 언니는 정월대보름이라 어머니와 아침밥 먹으러 갔다는 것입니다.

정월대보름 콩찰밥한 그릇으로 올 한해도 건강하게 보내야겠죠~
▲ 콩밥 한 그릇 하셨나요~ 정월대보름 콩찰밥한 그릇으로 올 한해도 건강하게 보내야겠죠~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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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부터 전화해서 놀랬다 아이가~"
"아~그랬나~어젯밤에 늦게 갑자기 엄마가 전화해서 두부 한 모 사서 아침에 밥 묵으러 오면 안 되겠느냐고 전화와서리 이래 왔다 아이가~"
"엄마는 갑자기 와 그랬는고~"
"이래 이름 있는 날 혼자 밥 묵기가 싫었든가 안 그랬겠나 싶다~!"
"언니가 착한 일 했네~마이 묵고 온나~"
"엄마가 바꿔 달랜다~"
"막내가~"
"네에~아침부터 전화해가 놀랬다 아이가~"
"아~밥은 묵고 다니는강, 우쨌는가 싶어가 언니보고 해달라켔다 아이가~"
"밥은 못 묵고 오제~"
"아이고~이 추븐데 아무것도 못 묵고 댕기나~"
"그래 됐심더~우짜겠는교~"
"그래도 콩밥은 묵어야 하는데~나물 쪼매 하고 언니가 가지고 온 두부쪼림 하고 묵고 있는데 니 생각났다 아이가~"
"못 묵었는데 괜찮심더~맛나게 언니하고 잘~드시소~정 막내가 맘에 걸리면 언니 내려오는 길에 콩밥 쪼매 보내주던가~"
"아~그라는 것도 있나~우째 보내믄 되노~"
"아~마아 됐다~번거롭구로 고마 됐다~그람 아침 잘 드시고~전화 끊심더~"
"추븐데 단대 하고 댕기라~"

아침 출근길에 긴 통화를 했습니다. 손이 시려도 이런 전화는 백번이고 받는다 해도 기분 좋은 전화이겠지요. 그렇게 한통의 전화를 받고 나니 정월대보름이고 오곡밥을 먹지 못해도 먹은 것처럼 기분도 좋고, 괜히 혼자 밥 먹기 싫어 언니를 부른 어머니의 마음이 짠하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날이 지날수록 적적함을 더 느끼고, 부쩍 약한 마음을 이렇듯 내비치기도 합니다. 고향집을 떠나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마음도 잘 알겠지만 매번 약해지는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이것 역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서 정월대보름인데 오곡밥을 먹었는지, 부럼도 먹었는지를 물어옵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점심도 간단하게 찬밥을 데워 허기진 배만 채웠습니다. 이래저래 오후가 접어들 때쯤 작은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너거 몇호고~"
"그건 와~아~0000호 아이가~"
"아~그런나~니가 아침밥도 못 묵고 출근한다고 할까네 엄마가 맘이 그랬는가~콩밥하고 나물 쪼매 챙기 주더라~
"내가 그냥 해본 소린데~우짜노~언니만 쪼매 귀찮게 됐네~"
"뭐~가는길인데~관리실에 매끼 놓을까네 퇴근할 때 찾아가래이~"
"알았데이~암튼 고맙데이~"

그냥 해본 얘기를 어머니는 마음에 담으셨나 봅니다. 순간 죄송하기도 하고, 한없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별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에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살아계신 어머니의 존재에 깊은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유난히 콩밥을 좋아했던 저라 아침식사를 하시면서 얼마나 생각이 간절했는지 새삼 짠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머니께 앞으로 어떻게 해드려야 할지 다시 고민을 해봅니다~
▲ 나물과 조림까지 이렇게 보내셨네요~ 어머니께 앞으로 어떻게 해드려야 할지 다시 고민을 해봅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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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이런 날이면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오곡밥에 대여섯 가지의 나물에다 부럼이며, 이거 먹어야 한 해 동안 좋은 일 생긴단다, 하시면 챙겨주시던 어머니였습니다. 한 상 가득 차려 큰 방 아랫목에서 '비나이다~비나이다~우짜든동 우리 아~아버지, 그라고 아~들~ 아프지 안케 해주이소~비나이다~비나이다~'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한참을 빌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해가 어스름 질녘엔 어머니 혼자 어디를 가시는지 작은 초 하나 들고, 앞산 아래 늘 정월대보름이면 가시던 그 곳, 어두컴컴한 곳에 조용히 무엇을 빌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아직도 제 마음에 그때의 행복함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겠지요.

잔뜩 찌푸린 하늘이어서 밝은 보름달은 볼 수 없어도 그때의 어머니의 바람처럼 올해도 가족 모두 건강하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비나이다~비나이다~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게 해주이소~'


태그:#어머니, #사랑, #정월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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