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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은 사회적경제 분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화두다.

얼핏 생각해보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을 다루는 사회적경제와 도시재생이 무슨 관련이 있는가 싶기도 하지만, 사회적경제를 '이윤보다는 사람을 우선시 하고, 개인적 이익보다는 공익을 우선하는 지역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자는 대안적 경제활동'으로 정의한다면 도시재생은 사회적경제와 밀접할 수밖에 없다. 철저히 자본의 논리로 진행돼온 기존의 방식으로 더 이상의 도시재생이 불가능하다면, 그 대안은 결국 사회적경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도시재생을 하는 데 있어 유일한 줄 알았던 재건축과 재개발을 떠올려보자. 그것은 건설업자와 주택 소유자들의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이었다. 정작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었으며, 그 공간이 지니고 있는 역사성 역시 간단하게 무시됐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희생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와 같은 개발이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비록 자본의 탐욕은 여전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득세와 함께 사회가 양극화 되면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구수가 줄어들면서 부동산 시장에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의 불황이 덮친 것이다.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실패는 바로 이와 같은 시대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사회적경제는 재개발·재건축이 더 이상 힘들어진 이 시대에 어떻게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김경민·박재민이 쓴 <리씽킹 서울>은 바로 그와 같은 문제에 대해 답을 찾아 나선 책이다. 저자는 재개발이 필요한 서울의 여러 곳을 돌아보고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특수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특성들을 살려 도시재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도시재생이란 단순히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축을 하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커뮤니티를 보존하며 개발하는 것을 뜻한다. 특정 공간을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지 않은 채 그곳이 지니고 있는 역사성에 따라 재구성하는 것이다.

"'도시재생'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커뮤니티를 제대로 보존하면서 개발을 한다는 뉘앙스를 가진다. 개발보다는 보존에 방점이 찍히기에 아마도 자본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도시계획 학자들에 의해 보편화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본문 16쪽)

서울의 오래된 기억

우리의 절박한 문제, 도시재생
▲ <리씽킹 서울> 우리의 절박한 문제, 도시재생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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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도시재생을 위해 저자가 가장 먼저 착안하는 지점은 바로 공간의 역사성이다. 서울은 아주 오래전부터 한반도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서부터는 줄곧 한 국가의 수도였지만, 그전 고려시대에도 서울은 중요한 도심 중의 하나였다.

따라서 서울에는 그 역사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있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 역사적 특성을 도시재생에 이용하자고 이야기한다. 기존에는 역사고 뭐고 간에 그냥 쓸어버리고 새로운 건물들을 만드는 데 전념했지만, 이제는 그 역사들을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유입시킬 수 있는 하나의 요소로 만들자는 이야기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저자는 종로구의 익선동 한옥집단지구를 주목한다. 그곳은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뒤로 인사동과 종묘 사이에 위치한 곳이다. 비록 1930년 이전 건설된 한옥이 가장 많이 집적돼 허름한 분위기를 주지만 그래서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다. 고려시대의 골목길과 조선시대의 피맛길이 여전히 존재하며, 국악과 관련된 예술인들이 밀집되어 있고, 북촌-삼청동-인사동-종묘-창덕궁이라는 역사 지구의 정중앙이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지역 커뮤니티가 살아 있다는 것인데, 이는 도시 재생에 있어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집도 사람이 사느냐 마느냐에 따라 상태가 다르듯, 지역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개발의 차익을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그 지역에 살면서 자신의 터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만약 익선동이 그 지역의 역사성을 기반으로 재생된다면 현재 존재하는 커뮤니티는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결국 그곳은 그들이 살아갈 곳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익선동은 1990년대 후반부터 재개발 시도가 있었지만 계속해서 어그러지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은 자본의 문제 때문인데, 이제는 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새로운 개발을 해서 얻는 이익보다는 그 지역을 보존하고 가꾸는 게 더 큰 이익임을 우리 사회 전체가 인지해야 한다. 결국 어느 지역을 보고 싶다는 욕망은 그 공간이 지닌 역사성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국의 도시를 방문하는 이유는 도시의 대형 건물을 보러 간다기보다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소비하기 위해, 즉 도시의 역사를 이해하고 문화를 즐기기 위해 가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건물 자체보다는 건물의 역사성이나 건물이 가진 문화적 기능이 중요하다."(본문 30쪽)

너무 가볍게 사라지는 산업화의 기억

한편 저자는 서울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근대의 기억, 특히 산업화도 이야기한다. 서울은 결코 조선시대만의 수도가 아니다. 일제점령기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근대사가 살아있는 곳으로 산업화의 중심지역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와 같은 근대 산업화의 흔적이 그 이전의 역사만큼 소중히 다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인데, 이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가 그 시대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새로운 것만 찾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저자는 한강의 기적을 탄생시킨 근대 역사자원으로서 구로공단을 주목한다. 구로는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 전체 수출 비중의 10%를 담당했던 지역이었다. 비록 열악하고 조악한 산업시설과 주거환경, 노동자 탄압이 존재했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은 이를 바탕으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공간이 현재 역사성을 거세당한 채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대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가리봉동의 쪽방촌 등은 여전히 열악한 상황 때문에 우리의 시야에서 가려진 상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 기능만 강조되다 보니 역사적 의미는 퇴색되고 있다.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거하는 곳으로만, 그래서 언젠가는 재개발 될 수밖에 없는 곳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 공간을 다른 식으로 개발하자고 제안한다. 기존의 건물들은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역사성은 살리되, 건물의 용도를 변경함으로써 공간의 다양성들을 살리며 지역 커뮤니티를 이어가자고 제안한다.

일본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가 대표적인 예다. 그곳은 일용직 노동자들을 위한 8000개의 쪽방촌이 있었던 곳으로 2000년대 중반 지역이 쇠퇴하면서 게토화됐다. 하지만 이후 쪽방들을 게스트하우스로 변경했다. 우리의 구로공단은 그렇게 바뀔 수 없을까?

"가능성의 공간들을 철거하는 대신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재활용하는 것이 또 다른 대안이다. 건물의 물리적 원형과 더불어 지역 커뮤니티를 보전하면서 건물 내부에 새로운 기능들을 집어넣어 도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본문 5쪽)

동대문 지역을 기업 상생의 공간으로

마지막으로 저자가 주목한 공간은 서울의 동대문 지역이다. 그곳은 자타공인 대한민국의 패션1번지로서 현재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과 같은 산업형태가 지속가능하냐는 점이다.

지금의 동대문이 가능한 것은 그 주변의 창신동 봉제공장들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시간이 갈수록 창신동의 존립근거가 취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낮은 임금과 극단적인 경쟁 그리고 열악한 주거 환경까지 현재 창신동은 주거 공간으로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수준에까지 도달해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동대문 지역에 공적으로 투입되는 자본은 어디에 쓰이고 있는가. 그 허망한 예가 바로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지어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정체를 알 수 없게 지어진 DDP.

당시 서울시는 이 기괴한 건물을 설계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에게 굉장히 많은 돈을 썼지만, 우리의 역사에 무지한 그는 이렇게 뜬금없는 건축물을 남기고 말았다. 조선시대 동대문의 자취도, 1970~1980년대 우리를 흥분시켰던 동대문운동장의 함성 소리도 그곳에선 느낄 수 없다. 동대문이라는 시공간에서 괴리된 건축물만 서 있을 뿐이다.

만약 그 자금이 창신동 봉제공장 지역에 쓰였다면 어찌 됐을까. 지역 주민들의 삶은 좀 더 나아졌을 것이며, 동대문 패션단지의 중요한 근거지로서 창신동은 또 다른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다행히 최근 창신동 봉제공장들 사이에서는 동대문 패션단지와 관련해 기존의 전근대 방식의 갑을 관계를 탈피, 협동조합 등의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동대문 패션의 가격에는 악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동대문 패션단지의 경쟁력을 상승시킬 것으로 보인다. 패션의 경쟁력은 창의성이다. 뉴욕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창의성은 업계 종사자들의 삶의 만족도가 채워질 때 발현될 수 있다.

퇴락해가는 창신동 봉제공장들.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 자체가 동대문 지역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도시재생이다.

덧붙이는 글 | <리씽킹 서울 - 도시,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김경민, 박재민 / 서해문집 / 2013.12.10 / 1만5000원)



리씽킹 서울 - 도시,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

김경민.박재민 지음, 서해문집(2013)


태그:#도시재생, #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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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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