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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민속마을. 초가집 사이로 고샅이 구부러져 정겹다.
 낙안읍성 민속마을. 초가집 사이로 고샅이 구부러져 정겹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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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이 우람하다. 돌 하나하나가 큼지막하다. 바위를 옮겨놓은 것 같다. 성문을 이루는 누각은 고풍스럽다. 켜켜이 쌓인 초가지붕도 정겹다. 마른 짚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넉넉한 마당도 여유롭다. 토방과 마루에도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아 옛 모습 그대로다.

초가집 사이로 구부러지는 고샅을 따라간다. 세월의 무게는 고샅 돌담에서도 묻어난다. 얼기설기 담쟁이 넝쿨이 예쁘다. 돌담에 기대 선 고목도 모나지 않게 어우러져 있다. 돌담 아래 남새밭에선 푸성귀가 새싹을 틔워 올리고 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되새김질을 하는 누런 황소도 귀엽다.

고샅 한편에선 물레방아가 세월을 노래하고 있다. 내 마음도 덩달아 리듬을 탄다. 언제라도 마음 편안하게 해주는 풍경이다.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아련한 고향집 같다. 발길이 오래 머문다. 시간도 잠시 멈춰서 함께 쉰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배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시 '향수'를 흥얼거리며 고샅을 하늘거리는데, 옛 친구들이 그리워진다. 고만고만한 어깨를 걸고 골목길을 누비던 깨복쟁이 친구들이다. 깨금발을 하고 담장 너머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다. '○○야! 노올자.'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이웃집에 음식을 나눠주던 어머니의 모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추억여행으로 이끄는 곳은 낙안읍성 민속마을

낙안읍성의 성곽이 우람하다. 그 길을 따라 옛 사람들이 지나고 있다.
 낙안읍성의 성곽이 우람하다. 그 길을 따라 옛 사람들이 지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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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민속마을의 밤풍경. 날이 어두워지고 불이 하나씩 켜지면서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밤풍경. 날이 어두워지고 불이 하나씩 켜지면서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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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추억여행으로 이끄는 곳은 낙안읍성 민속마을이다. 전남 순천에 있다. 지난 2월 25일에 찾았다. 낙안읍성 마을은 민속촌처럼 부러 만들어놓은 마을이 아니어서 좋다. 양반마을이 아니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왔던 초가집이 다닥다닥 붙어서 더 좋다.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는 모습으로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 집도, 사람도 모두 문화재급이다.

추억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도 이런 연유다. 촬영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도 자주 찾고 있다. 드라마 <대장금>과 <장길산>,<왕건>,<어사 박문수>를 여기서 찍었다. 영화 <춘향뎐>과 <취화선>, <태백산맥>도 이 마을을 배경으로 썼다. 지금도 옛 시절을 배경으로 한 촬영이 심심찮게 이어지고 있다.

낙안읍성민속마을의 휴일 풍경. 옛 옷차림을 한 마을주민들이 성곽을 지키고 서 있다.
 낙안읍성민속마을의 휴일 풍경. 옛 옷차림을 한 마을주민들이 성곽을 지키고 서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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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민속마을 전경. 초가집이 무리 지어 있어 옛 고향마을 같다.
 낙안읍성 민속마을 전경. 초가집이 무리 지어 있어 옛 고향마을 같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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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은 조선 태조 6년(1397년) 이 고장 출신 김빈길 장군이 처음 쌓았다.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다. 인조 4년(1626년)에 낙안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석성으로 고치고 키웠다. 성곽의 길이가 1410미터에 이른다. 높이는 4미터 가량 된다.

동내, 남내, 서내 등 3개 마을을 감싸고 있다. 성 안에는 지금 120여 세대 280여 명이 살고 있다. 툇마루와 부엌, 토방을 갖춘 초가집에서 생활한다. 새끼를 꼬아 짚신과 맷방석을 짜는 주민도 있다. 삼베를 짜는 할머니도 산다.

옛날에 고을을 찾아오는 손님을 맞던 객사와 수령의 숙소였던 내아도 오롯하다. 행정과 송사를 다루던 관가도 옛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옥사와 형틀도 복원돼 있다. 자녀를 동반한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이 찾는 이유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에 복원된 옛 옥사.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에 복원된 옛 옥사.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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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 민속마을의 옛 관아.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 관아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옛 관아.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 관아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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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성곽이 조금 높지만 길이 넓어 누구라도 부담없이 걸을 수 있다. 이순신 장군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장군이 심었다는 고목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이순신 장군이 낙안읍성을 찾은 건 1597년 8월 9일(양력 9월 19일)이었다. 명량대첩을 앞두고 조선수군을 재건하면서 보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낙안 백성들이 줄지어 서서 장군의 입성을 환영했다. 백성들은 낙안현청으로 가던 장군의 뒤를 따랐다.

마을의 원로들은 술독을 갖고 와서 장군에게 올렸다. 이순신 장군은 백성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당산나무에도 술 한 잔 부어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성들은 이순신 장군에게서 술을 받은 나무를 '장군목'이라 불렀다.

이순신 장군에게 술 받은 나무 '장군목'

고목과 어우러진 초가집.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고목과 어우러진 초가집.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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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푸조나무. 몇 해 전 태풍에 한쪽 기둥이 부러지고 한쪽만 남아 있다.
 이순신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푸조나무. 몇 해 전 태풍에 한쪽 기둥이 부러지고 한쪽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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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에서 당시 그 나무의 소재를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읍성에는 오랜 세월을 산 나무가 많다. 수백 년씩 묵은 나무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게 푸조나무와 은행나무다.

객사 뒤에 비스듬히 누운 푸조나무는 이순신 장군이 직접 심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1598년 왜교성 전투를 앞두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승전을 기원하며 심었다는 설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원하며 심었다는 설도 있다.

이순신과 엮이는 푸조나무와 은행나무. 왼쪽의 푸조나무는 직접 심었고, 오른쪽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마차의 바퀴를 고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순신과 엮이는 푸조나무와 은행나무. 왼쪽의 푸조나무는 직접 심었고, 오른쪽의 은행나무 아래에서 마차의 바퀴를 고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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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으로 이뤄진 낙안읍성 민속마을. 금전산이 품고 있는 옛 마을이다.
 초가집으로 이뤄진 낙안읍성 민속마을. 금전산이 품고 있는 옛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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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전에 있는 은행나무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잠깐 머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낙안에서 의병과 군량미를 모은 장군이 좌수영으로 가던 중 이 나무 아래에서 마차의 바퀴를 수리했다는 것이다. 장군은 서둘러 마차의 바퀴를 고치고 길을 떠났는데, 순천으로 가는 길의 큰 다리가 무너져 있었다. 굉음이 일더니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였다.

이순신 장군이 낙안에서 마차를 수리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다리를 건너다가 참사를 당했을 수 있었다. 얘기를 전해들은 백성들은 낙안의 은행나무신이 장군을 위해 조화를 부렸다고 믿었다.

이래저래 마음 따뜻하게 해주는 낙안읍성 민속마을이다. 언제라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마을이다.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걷기 좋은 고샅이고 성곽이다.

낙안읍성 민속마을 풍경. 초가집 사이 고샅을 따라 싸목싸목 거닐며 옛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곳이다.
 낙안읍성 민속마을 풍경. 초가집 사이 고샅을 따라 싸목싸목 거닐며 옛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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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승주 나들목에서 낙안·벌교 방면으로 857번 지방도를 탄다. 서평 삼거리에서 벌교 이정표를 따라 죽학 삼거리, 금산 삼거리를 지나면 낙안읍성 민속마을로 연결된다.



태그:#낙안읍성, #이순신, #이순신나무, #낙안현청, #왜교성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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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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