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는 기성용(26, 스완지 시티)이 한국인 프리미어리거의 새로운 역사를 경신했다. 기성용은 5일(아래 한국시각) 2014-2015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아래 EPL) 토트넘과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0-1로 끌려가던 전반 19분 출전해 올 시즌 리그 6호 골을 터뜨렸다.

이는 역대 한국인 EPL 최다 골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은퇴한 박지성이 2006-2007시즌과 2010-2011시즌 각각 한 차례씩 기록한 5골이었다. 특히 기성용은 이 중 3골을 아시안컵 복귀 이후 최근 후반기 5경기에서 몰아넣으며 물오른 득점 감각을 뽐내고 있다. 더구나 아직 리그가 10경기나 남아 있어 기성용의 득점 기록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물오른 기성용

 전반 19분, 기성용의 골을 알리는 스완지 시티 공식 트위터 갈무리

전반 19분, 기성용의 골을 알리는 스완지 시티 공식 트위터 갈무리 ⓒ 스완지시티 공식 트위터 갈무리


하지만 스완지 시티는 기성용의 활약에도 이후 연속골을 허용하며 2-3으로 패했다. 2연승 행진이 중단된 스완지 시티는 11승 7무 10패(승점 40)으로 9위를 유지했다. 스완지 시티는 이날 경기 전까지 기성용이 득점을 기록한 경기에서 4승 1무를 기록 중이었다. 토트넘전 패배로 '기성용 득점=스완지 무패' 공식이 깨진 것은 옥의 티였다.

기성용의 6호 골은 박지성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박지성은 전성기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아래 맨유)에서 활약할 당시 측면 날개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를 넘나들며 활약했다. 수비 가담과 팀 플레이가 박지성의 트레이드 마크이긴 했지만, 포지션 상 엄연히 골을 만들어내는 공격적인 역할이 주 임무였다.

기성용처럼 소속팀 경기에 매일 나서는 붙박이 주전은 아니었지만, 맨유가 당시 독보적인 리그 최강팀이었던 시절이라 박지성도 출전하는 경기에서 골을 노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박지성은 골에 대한 욕심은 많지 않았으나 아스널, 첼시 등 리그 강호들과의 빅매치에서는 중요한 골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증명했다.

기성용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다. 후방에서의 경기 조율과 압박 수비 등이 주요한 임무다. 골에 대한 욕심보다는 안정된 수비 능력이 더 강조되고 전방에서의 공격 가담 기회는 한정돼 있다. 스완지의 전력이 EPL에서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EPL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가 한 시즌 5골 이상을 넣는 경우는 흔치 않다. 리버풀의 레전드 스티븐 제라드가 기성용과 같은 6골을 기록 중이지만 팀의 페널티킥 전담 키커로서 무려 4골이 PK득점이었다. 반면 기성용은 모든 득점을 필드골로 성공해내며 '순도'에서 훨씬 앞서고 있다.

유독 올 시즌 기성용의 득점이 갑자기 늘어난 배경에 주목할 만하다. 사실 기성용은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웠다. 유럽 진출 이후 첫 소속팀이던 스코틀랜드 셀틱 시절부터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 잡았지만, 국가대표팀 초창기나 K리그 FC 서울 시절만 해도 공격적인 역할이 더 강조됐다.

기성용은 FC서울(2006~2009)에서 64경기 7골을 기록했고, 셀틱(2009~2012)에서는 66경기에 출전해 9골을 기록했다. EPL 데뷔 첫 해인 2012-13시즌 스완지 시티에서는 33경기에 나서 1골에 그칠 만큼 공격을 자제하고 수비 역할에 좀 더 치중하는 모습이었다. 대표팀에서는 구자철이라는 걸출한 공격형 미드필더가 있었기에 기성용을 4-2-3-1 혹은 4-1-4-1의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로 더 최적화된 모습을 보였다.

기성용의 공격 본능...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기성용의 공격 본능이 EPL에서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선덜랜드 임대 시절이던 지난 13~14시즌이 전환점이었다. 기성용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발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진 이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기성용은 27경기에 3골을 기록했지만, 실제로 당시 선덜랜드의 공격에서 기성용의 비중은 그 이상이었다.

임대 복귀 이후 부쩍 늘어난 자신감과 함께 스완지 시티 팀내에서 기성용의 비중도 훨씬 커졌다. 실질적인 스완지 시티의 플레이 메이커이자 중원 에이스로서 기성용이 공수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절대적이다. 플레이의 자유도와 창의성이 높아진 기성용은 상황에 따라 종종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며 포스트 플레이와 배후 침투를 시도하는 등 사실상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는 장면이 잦아졌다.

대표팀도 지난 아시안컵에서 기성용의 공격 본능을 충분히 확인했다. 기성용은 아시안컵에서 직접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창조적인 패스를 바탕으로 한국의 공격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호주와의 조별 리그와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터진 이정협-손흥민의 골도 기성용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기성용은 아시안컵에서 윙포워드와 처진 공격수까지 넘나들며 공격적인 역할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시안컵이 끝나고 소속팀에 복귀한 기성용은 그야말로 물이 오른 모습이다. 체력적인 부담에 대한 우려에도, 오히려 경기를 읽는 시야와 예리함은 더 날카로워진 느낌이다. 윌프레드 보니의 맨시티 이적 후 공격 옵션이 크게 줄어든 스완지 시티도 기성용의 공격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성용의 올 시즌 리그 득점은 영양가도 매우 높다. 맨유전에서 2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스완지 시티 역사상 첫 맨유전 더블(2연승)의 일등 공신이 됐고, QPR과 헐시티전에서도 팀의 승리를 이끄는 득점을 올렸다. 선덜랜드전에서는 올 시즌 첫 헤딩골로 무승부를 이끌기도 했다.

토트넘전을 제외하고 기성용이 득점을 올린 경기에서 스완지 시티는 모두 승점을 챙겼다. 이미 EPL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정교한 패스 성공률에 득점력까지 장착한 기성용은 점점 포지션을 뛰어넘는 '전천후 미드필더'로 성장하고 있다. 내친김에 박지성이 맨유 시절 기록한 한 시즌 최다골(2010-11시즌 8골, 챔피언스리그와 컵대회 포함) 기록 경신도 노려볼만하다.

기성용은 어느덧 빅리그에서도 인정받는 중앙 미드필더로 올라섰다. 특히 몸싸움과 압박이 워낙 치열한 EPL에서 한국은 물론 아시아 선수들이 생존하기 어렵다고 평가받는 중앙 미드필더로서 사실상 첫 성공 사례라는 점도 기성용의 가치를 단연 돋보이게 한다. 박지성의 뒤를 잇는 '국가대표 캡틴'으로서 한국 축구의 자부심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기성용의 활약이 더 반가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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