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5년 전,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 두 번 더 갱신을 해서 현재는 세 번째 여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여권을 신청할 때만 해도 저에게 여권은 '외국에 입국하기 위한 신분증'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여권은 공항에서 출입국을 위한 용도로만 사용했으니, 좀 과장해서 말하면 교통카드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에 와서도 한동안은 그랬습니다. 여권 꺼낼 일이 없습니다. 한국도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신분증을 보여줄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최근 병원에 다니면서 그동안 내가 영문 이름에 대해 신중하지 않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나랑 상관없을 것 같던 미국인의 이름 구조가 내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미국서 내 이름이 '다'가 된 이유

여권 영문이름, 띄어쓰기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세요.
 여권 영문이름, 띄어쓰기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세요.
ⓒ sxc

관련사진보기


여권에 등록된 영문명은 'DA YOUNG KIM'입니다. 한국인이라면 이 나열을 보고 'DA YOUNG'이 이름이라는 것을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문이름은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듭니다. 한국 기준으로 만들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도 병원에 가면 가장 먼저 인적 사항을 등록합니다. 직원은 환자의 생년월일, 성명, 주소 등의 기본 정보를 시스템에 입력합니다. 그런데 항상 이름에 들어가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름과 관련해서 단 한 번도 매끄럽게 넘어간 적이 없습니다. 중간이름(Middle Name)이 있는 미국의 이름 구조 때문입니다.

미국인의 이름 구조는 '첫 번째 이름-중간 이름-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국인들 대부분이 중간이름이 있습니다. 중간이름은 일상생활에서는 사용할 일이 없지만 서류에는 분명 존재하는 이름입니다. '존 에프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처럼 중간 이름이 길 경우에는 알파벳 하나로만 표기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도 '후세인(Hussein)'이라는 중간이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제 여권에 표기된 제 영문이름은 '다영(DAYOUNG)'이 아닙니다. '다 띄고 영(DA YOUNG)'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공공기관이나 병원에서처럼 정확한 이름을 말해야 할 때는 "다영"이 아니라 "다 스페이스 영"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직원들의 혼란은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구조의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두 글자로 이루어진 이름의 경우, 글자와 글자 사이에 붙임줄(-)을 사용합니다. 여권을 만들 때 'DA-YOUNG'이라고 표기했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제 이름은 붙임줄 없이 띄어져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의 기준에는 당연히 '다'가 이름이고 '영'이 중간 이름인 것입니다.

'DA YOUNG'처럼 중간에 스페이스가 있는 이름을 미국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광고우편물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제 앞으로 오는 광고우편물 대부분이 'Da Y. Kim' 혹은 'Dayoung Kim' 입니다. 정확한 이름으로 오는 광고물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필자 앞으로 온 광고우편물. 이름이 제각각이다.
 필자 앞으로 온 광고우편물. 이름이 제각각이다.
ⓒ 김다영

관련사진보기


영문이름을 정식으로 등록한 것이 아닌 이상, 제가 제공한 이름만 보고서 자연스럽게 'YOUNG(영)'을 중간이름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YOUNG'을 중간이름으로 보았다는 것은 'Y.'를 보면 됩니다. 중간이름이 길 경우에는 다 쓰지 않고 첫 번째 알파벳 하나만 표기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존 에프 케네디'처럼 말입니다.

무심코 적은 영문이름 때문에 이름 바꿀 판

대부분의 시스템도 중간에 스페이스가 있는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적사항을 등록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꽤 긴 시간이 걸립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현재 병원에 등록되어 있는 이름은 'Dayoung Kim'입니다.

문제는 저를 응대하는 직원이 한 명이 아니라는 겁니다. 직원이 저마다 다르다보니, 이름 입력도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틀리게 입력된 경우가 많아서 시스템에서 파일을 찾는 데만도 오래 걸립니다. 병원뿐만 아니라 의료보험, 약국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공공기관이나 병원 등을 이용할 때마다 이름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아서 현재 우리 가족은 이름 중간의 스페이스를 없애는 영문이름 변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여권법에 의해 영문명을 변경할 수 있는 몇 가지 경우를 제시해 두었습니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보니 "여권상 영문성명은 해외에서 신원확인의 기준이 되며 변경이 엄격히 제한되므로 특별히 신중을 기하여 정확하게 기재하여야 한다"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뒤늦게 이 말이 크게 다가옵니다. 미국에 올 일은 평생 없을 줄 알고 영문명을 쓸 때 큰 고민을 하지 않았던 지난 시간이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요즘입니다.

여권법에 의해 영문명 변경이 허용되는 경우
 여권법에 의해 영문명 변경이 허용되는 경우
ⓒ 외교부

관련사진보기




태그:#미국생활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