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의 최용수 감독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올림픽 대표팀의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던 '한국 축구의 미래'였다. 하지만 최용수 감독은 2006년 현역에서 은퇴해 2011년부터 5년째 감독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최용수 감독은 이제 지도자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비쇼베츠호'에서 천재 미드필더로 불리던 윤정환 감독 역시 2007년 현역 은퇴 후 올해부터 울산 현대를 이끌고 있다. 두 감독은 1973년생 동갑내기로 40대 엘리트 축구인이라면 현역보다는 지도자가 더 어울리는 나이다.

하지만 최용수, 윤정환 감독보다 세 살이나 많은 K리그의 '조상님' 김병지(전남 드래곤즈)는 46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올 시즌을 무사히 치를 경우 김병지는 대망의 7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외국인 골키퍼 홍수 속 토종 자존심 지킨 '꽁지 머리'

경남 밀양 출신의 김병지는 프로에 입단하기 전 상무에서 일찌감치 군 복무를 마친 후 1992년 울산 현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염색한 뒷머리를 묶은 독특한 헤어 스타일 때문에 '꽁지 머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K리그는 천마 일화를 3년 연속 우승으로 이끈 골키퍼 신의 손(부산 아이파크 코치)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외국인 골키퍼 붐이 일었다. 하지만 김병지는 그 사이에서 토종 골키퍼의 자존심을 지켰다.

울산의 1996년 우승과 1998년 준우승에 크게 기여한 김병지는 '골 넣는 골키퍼'로도 유명했다. 특히 1998년 포항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극적인 헤딩골을 성공하기도 했는데 이는 K리그 역사상 최초의 골키퍼 필드골이었다.

대표팀에서도 김병지는 승승장구했다. 1995년 6월 코리아컵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김병지는 이후 '차범근 호'의 간판 골키퍼로 활약했다. 당연히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주전 골키퍼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한국 축구는 프랑스 월드컵에서 강호 네덜란드를 맞아 0-5로 참패를 당했다. 하지만 김병지는 그 경기에서 여러 차례 눈부신 선방쇼를 펼쳤다. 당시 네덜란드를 이끌던 거스 히딩크 감독마저 "한국의 뛰어난 골키퍼 때문에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했다"며 김병지의 활약을 칭찬했다.

김병지는 프랑스 월드컵 조별 리그 3경기에서 19번의 선방 횟수를 기록하며 조별 리그에 참가한 전체 골키퍼 중 2위를 기록했다. 2골 9실점으로 조기 탈락한 한국 대표팀에서 김병지는 분명 가장 빛나던 선수였다.

특유의 예측 불허 돌발 행동으로 2002 월드컵 주전 경쟁 탈락

하지만 한국 축구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던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김병지는 후배 이운재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다. 바로 김병지가 가진 '양날의 검'이기도 한 예측 불허의 질주 본능 때문이다.

김병지는 2001년 1월 파라과이전에서 무리하게 공을 몰고 가다가 상대 선수에게 공을 빼앗기며 아찔한 상황을 연출했다. 김병지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대표팀을 이끌던 히딩크 감독의 눈 밖에 나고 말았다.

페널티 지역을 벗어나는 수비도 마다하지 않는 김병지의 강한 개성은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의 성실한 플레이를 강조하던 히딩크 감독의 철학과 맞지 않았다. 김병지는 우여곡절 끝에 최종 엔트리에 선발됐지만, 정작 월드컵에서는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월드컵 이후 이운재에게 대표팀 넘버원 골키퍼 자리를 내준 김병지는 김용대(FC서울), 김영광(서울이랜드FC) 등 신예들에게도 밀리며 대표팀에서도 잊힌 존재가 됐다. 움베르투 코엘류, 조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등 외국인 지도자들은 월드컵 7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한 골키퍼(이운재)가 있는 한국 대표팀에서 노장 김병지를 크게 눈 여겨 보지 않았다.

2007년 아시안컵에서 음주 파동에 휘말린 이운재가 징계를 받으면서 김병지는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했다. 하지만 2008년 1월 칠레와의 경기에서 허리 부상을 당하며 자연스럽게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통산 700경기 출전에 도전하는 K리그의 살아 있는 전설

2007년까지 울산 현대와 포항 스틸러스, FC서울을 거친 김병지는 12년 연속 올스타전 출전, 153경기 무교체 출전 기록을 세우며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로 군림했다. 하지만 2008년 칠레와의 A매치 경기에서 입은 허리 부상 때문에 김병지의 화려한 기록들은 모두 중단되고 말았다.

김병지는 2009년 고향 팀 경남FC에 플레잉 코치 신분으로 입단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해설자로 외도하기도 했다. 당연히 은퇴를 앞둔 선수의 행보처럼 보였다. 하지만 김병지의 현역 생활은 이대로 끝나지 않았다.

2009년 500경기 출전 기록을 세운 김병지는 2012년 K리그 최초의 600경기 출전 기록을 달성했다. K리그에서 500경기 출전 기록을 세운 선수가 단 2명(최은성-532경기, 김기동-501경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김병지의 600경기 출전은 실로 위대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2010 시즌 종료 후 '플레잉 코치' 딱지를 떼고 다시 선수 신분으로 돌아간 김병지는 2012 시즌 종료 후 FA자격을 얻고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경남 밀양 출신의 K리그 스타 김병지가 전남 광양을 연고로 하는 드래곤즈로의 이적. 김병지가 축구를 통해 '영호남의 화합'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지난해까지 679경기를 소화한 김병지는 올 시즌 21경기에 출전하면 전인미답의 7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김병지의 기록이 더욱 위대한 이유는 그가 여전히 한 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할 만큼의 뛰어난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병지는 작년 시즌 전남이 치른 전 경기(38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기록 달성을 위해 억지로 출전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김병지는 술과 담배를 전혀 입에 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몸무게 역시 20년 넘게 78kg을 유지하고 있다. 김병지가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변함 없는 기량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리고 K리그의 살아 있는 전설은 올해도 또 하나의 역사를 쓰기 위해 쉼 없이 공을 향해 몸을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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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전남 드래곤즈 김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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