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경찰청에서 전화?"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경찰청'이라고 소개한 뒤 영진위의 정책변화에 대한 현장 영화인들의 반응을 청와대에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걸려온 전화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영진위의 영화제 영화상영등급분류면제추천 제도 수정, 예술영화관 지원 축소 시도' 등은 영화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훼손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행위"라며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이자 범영화인 대책위원회 공동 대표. 사진은 지난 2월 13일 오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현장. ⓒ 이정민


[기사 수정 5일 오후 12시 16분]
삼박자가 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부산시의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사퇴 압박,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제에 대한 면제 추천 제도 수정과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 변경, 여기에 경찰까지 나서 몸소 영화인들의 의견을 듣는 일까지.

집행위원장 사퇴 문제로 인한 갈등은 부산국제영화제 측이 부산시의 공동집행위원장 체제 제안을 받아들이며 겉으로나마 봉합 수순을 밟고 있다. 김세훈 신임 영진위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서 추진하려는 영화제에 대한 면제 추천 제도 수정이나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 방식 변경은 지난 2월부터 74개의 범영화인 단체가 반대하며 본격 갈등을 예고했다.  

그렇다면 의견 수렴 명목으로 경찰이 직접 영화인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난 2월 13일 임창재 범영화인 대책위원회 공동 대표는 '자유 사수를 위한 범 영화인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경찰청 소속 한 형사로부터 '도와줄 것 없느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일부 내용을 밝혔다. 임창재 대표뿐만이 아니다. <오마이스타> 취재 결과 적어도 6~7군데의 영화 관련 단체에 경찰이 직접 전화를 걸었던 것이 확인됐다.

임창재 대표를 직접 만났다. 그는 지난 2월까지 한국독립영화협회 수장으로 17년째 독립예술영화계에 투신한 인물이다. 고 이은주가 출연한 <하얀 방>의 연출자기도 한 그는 그간 다수의 예술 실험 영화를 발표하며 한국 영화계의 중요한 자산을 쌓아왔다. 그가 올해 들어 전 방위로 벌어지고 있는 '영화계 탄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정책 문제 지적하는데 경찰이 나서? "경찰국가와 다름없다"

- 지난 기자회견 이후 영화계의 분위기는 어떤지. 독립예술영화전용관 네트워크 등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는 등의 움직임도 있었다.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최고 수위의 액션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 기자회견 후에 관련 질의서를 부산시에 보내고 장관 면담도 요청했는데 답변이 없다. 각 영화 단체에서 퇴행하는 정책을 성토하고 있다. 우리는 총체적으로 표현의 자유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부산영화제 문제는 어느 정도 봉합이라고 보는데 나머지는 여전히 그대로다. 

지난해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를 위한 영화인모임을 비롯해 세월호 추모 영상제를 진행했다. 900명 정도의 영화인이 참여했는데 그만큼 단합이 잘 된 건 10년 전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이후 처음이 아닌가 한다. 정부에서 아마 그때부터 영화인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건지도 모르겠다. 세월호 사고는 현 정부의 잘못이 있으면 밝히고, 책임자는 사과해야 하며 그걸 가족들이 용서해야 끝나는 일이다. 같이 살아가는 우리가 보듬고 위안해야 하는데 영화인도 예외가 아니다. 어찌 보면 영화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예술가로서 최소한의 윤리의식, 책임의식을 나누고 문제들을 꺼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걸 못하게 한다. 난센스다. 지속적으로 (정부가) 탄압한다면 더 뭉쳐서 저항해야지."

- 정부야 그렇다 쳐도 경찰까지 움직여서 영화인들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임 감독에게는 '경찰청'이라 밝히면서 '청와대에 보고하려고 했다'는 말도 했다는데 확인해 보니 경찰청이 아닌 강서경찰서에서 전화를 한 거였다.
"조직적인 움직임 같다. 내겐 분명 경찰청이라고 말했고, 청와대에 보고할 거라고 했다. 근데 왜 강서 경찰서에서 전화했을까? 마포서도 아니고. (임창재 감독이 속한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실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해 마포서 관할이다-기자 주) 경찰이 학교 교수의 소개로 전화했다고 했는데 그 학교에선 강의를 한 학기밖에 안 했다.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한 건지 궁금하다. 정말 내게 연락을 하려 했으면 한독협 사무실에 전화해서 나와 통화하는 게 정상 과정이지 않나. 근데 사적인 라인으로 공직에 있는 분이 전화했다. 민간인 입장에서 납득이 안 된다."

- 그래서 물어본 내용이 어떤 것들이었나.
"전화가 온 게 2월 10일이었다. 처음엔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끊었고. 곧이어 유선 번호로 와서 '경찰청인데 영진위 정책 변화에 대한 현장의 생각을 듣고 싶다. 취합해서 청와대로 보고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난 대답을 들으려면 공식 라인을 통해서 다시 연락하라고 대응했다."

- 사찰을 당한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이후 경찰로부터 다시 연락이 오진 않았나.
"사실상 사찰이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방법을 쓰는가. 그 뒤로 연락 온 건 없다. 전화를 받고 우울한 충격을 받았다. 예전에 학생 운동을 하다 잡힌 적이 있어서 그 트라우마가 올라오더라. 정신에 금이 가는 것 같은 쇼크가 왔다. 어쨌든 국가기관이니 경찰의 역할이 분명히 있을 텐데 잠재적 범죄인도 아닌 영화인들에게 연락한다는 게 참 모순이다. 우리가 나쁜 일을 한 게 아니라 정책의 불완전을 지적한 건데 경찰에서 관여하는 건 지금 한국이 곧 경찰국가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창작자가 의지를 갖고 꾸준히 작업하게 할 토대 필요해"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경찰청에서 전화?"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경찰청'이라고 소개한 뒤 영진위의 정책변화에 대한 현장 영화인들의 반응을 청와대에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걸려온 전화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영진위의 영화제 영화상영등급분류면제추천 제도 수정, 예술영화관 지원 축소 시도' 등은 영화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훼손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행위"라며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가 지난 2월 13일 오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 이정민


- 정책 이야기를 해보자. 정부는 문화 콘텐츠를 강조하면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꾸준히 공언하고 있다. 독립영화계에서는 실감하고 있는지. 
"큰 괴리감을 느낀다. 사실 10년 단위로 보면 독립영화의 환경이 나아진 건 맞다. 주변 여건과 인프라도 그렇고 지원도 진화했다. 그런데 주체 차원에서 그 속도를 보면 많이 부족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요즘에 맞게 정책이 바뀌어야 하는데 전혀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영진위도 현장 목소리를 좀 듣고 봐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영진위원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걸 시도할 수는 있다. 그럴수록 조심스럽게 맞춰가며 고쳐야 하는데 삐걱거리는 거다. 공기관의 장은 위에서 내려보내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연륜을 쌓은 사람이 맡는 게 좋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 독립영화인으로서 지난해 경남 지역 유일한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거제아트시네마 폐관 등 전용관이 위축되는 현상은 어떻게 보는가. 2014년 9월에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자마자 무너진 꼴이다.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런 건 한계가 있다. 내부적으로 운영의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일방적으로 정부 정책이 바뀌면서 결국 폐관한 건데 너무 안타깝다. 예술영화전용관이 사라지면 그만큼 상영되는 예술영화가 줄겠지. 이건 영화의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거다. 생태계 문제를 자본의 논리로, 이윤이 안 난다며 지원을 안 해주니 대기업만 살아가는 거지."

-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독립영화유통지원센터 등 실질적인 시스템 마련을 위해 노력한 거로 알고 있다. 또 연출한 작품의 배급을 직접 맡으면서 대안에 대해 몸으로 뛰며 고민하고 있는데.
"1년 이상 정부, 관련 기관과 논의했다. 어쨌든 예산이 확보가 안 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참 많은 공을 들였는데. 그게 잘 됐으면 독립영화 진영이 성장할 발판이 됐을 거다. 그렇기에 현실을 잘 알고 두루 조화롭게 추진할 사람이 일해야 하는 거다. 현안과 비교해가며 우선순위를 정해야지 무조건 새 사업을 안된다고 하면 무슨 소용인가.

난 그간 상업 장편 영화는 단 한 편을 했고, 독립영화 중에서도 실험영화를 주로 하니 변방 중 변방이다. 작품 수는 20여 편 되지만 모두 극장에 걸릴 건 아니라 갤러리나 영화제 중심으로 상영 공간을 찾았다. 요즘 블로그 등의 여러 플랫폼을 통해 글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영화도 과거에 비해 관객과 만나는 방법이 다양해졌다. 다양한 채널이 영화의 민주화를 가져온 거다. <워낭소리>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방송 PD 출신이 만든 작품이지 않나. 감동이 있으면 관객은 어떤 식으로든 본다. 물론 마케팅이나 상영관 규모 등의 변수는 있지.

적어도 작품을 만들고 소개되는 길이 다양해지는 건 좋은 현상이다. 이젠 그런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창작을 지속하게 할 지원이 부족하니 많이들 떠나잖나. 영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예술계의 공통 문제 같다. 극히 소수만 살아남는다. 그게 너무 슬프다."

강서 경찰서 측 "청와대 보고한다고 한 적 없다"

임창재 감독이 경찰의 전화를 받은 날짜는 2월 10일이다. 이 사안과 관련 지난 2월 13일 이송희일 감독도 SNS에 "경찰이 한독협을 비롯한 영화단체, 지방의 독립-예술전용관, 그리고 영화제에 전화를 걸고 있다"며 일회성이 아님을 시사한 바 있다. <오마이스타>의 확인 결과 대구 지역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오오극장, 서울 광화문의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한국독립영화협회 회원 2명 등이 2월 9일에서 11일 사이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경찰이 공통으로 던진 질문은 '영진위의 정책 변화에 대한 영화인들의 분위기는 어떤가'였다. 인디스페이스 관계자는 "2월 9일 종로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고, 영진위 사업이 시행되면 무슨 피해가 있는지 물었다"며 "왜 그런 거까지 파악하려는지 물으니 일상 업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같은 질문을 받았다는 오오극장 관계자는 "독립영화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넌지시 묻는 느낌이었다"면서 "당시엔 관련 단체에 다 전화하는 건가 싶어 큰 심각성을 못 느꼈다"고 답했다. 

당시 전화를 건 경찰 측과 통화를 시도했다. 임창재 감독에게 '경찰청'이라며 전화한 강서 경찰서 관계자는 "(소속을) 경찰청이라고 속인 적은 없고, 청와대에 보고한다고 하지도 않았다"면서 "영진위의 정책이 있으면 반대급부가 있을 수 있기에 그냥 여쭤본 것"이라 답했다. 동향 파악 보고용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이 형사는 "동향 파악도 아니고 그냥 경찰 업무"라고 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인디스페이스에 전화한 종로 경찰서 정보과 형사는 "(그들이 말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 예매 관련해서 물어보려 전화한 것이고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고 해서 직접 통화하지도 못했다"면서 "영진위 일은 잘 모른다. 전화 받은 분이 착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인디스페이스 관계자는 "예매 문의면 극장에 전화하면 되는데 사무실로 전화한 거였고, 홍보팀장이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한편 경찰의 이런 전화 시도에 대해 정보관 출신의 한 경찰은 "경찰청에서 국가 정책 방향에 대해 조언을 주는 차원의 정책보고서를 쓰는데 여기저기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면서 "경찰청이 각 지방청에 하달해서 여러 의견을 청취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경찰은 "경찰 역시 하나의 독립 기관이기에 의견 파악이 특별히 문제 될 건 없다"고 덧붙였다.


임창재 독립영화 경찰 영화진흥위원회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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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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