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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에게 '시장(市場)'은 어떤 공간일까?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몇 백 원을 놓고 엄마와 장터 아주머니가 흥미진진한 한판을 벌이는 곳은 아니겠다. 잘 정돈된 매대 사이로 필요한 물건을 카트에 담고 신용카드 한 장으로 계산을 끝내는 현대유통의 상징인 대형마트가 오히려 익숙하지 않을까.

오래전 시장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얼굴을 맞대는 공간이었다. 직접 생산한 물건을 사고팔았고 서로의 집안 속사정까지 훤하던 시절이다. 금융 중심의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유통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시장은 소비자로만 채워졌고 생산자의 자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굳이 영화 <카트>를 보지 않아도 백화점과 마트에서 들려오는 '갑질뉴스'는 비인간적으로 변한 시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대식 시장은 편리함과 다양함의 이점을 주는 대신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했다. 

브라질 월드컵 공식 경기구인 브라주카(Brazuca)의 판매가격은 159.99달러. 이 수제 축구공을 제작하는 파키스탄 여성들의 한달 임금은 10,000루피, 약 101.73달러다. 한 달을 일해도 본인들이 만든 축구공 하나를 사지 못한다. 전 세계 수제축구공의 70%를 생산하는 파키스탄에선 5~14세 아동 7000여명이 시간당 6센트를 받으며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 공식 경기구인 브라주카(Brazuca)의 판매가격은 159.99달러. 이 수제 축구공을 제작하는 파키스탄 여성들의 한달 임금은 10,000루피, 약 101.73달러다. 한 달을 일해도 본인들이 만든 축구공 하나를 사지 못한다. 전 세계 수제축구공의 70%를 생산하는 파키스탄에선 5~14세 아동 7000여명이 시간당 6센트를 받으며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 muslims are not terro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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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이뤄지는 무역시장은 좀 더 불공평하게 성장했다.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잘 사는 나라들은 힘없는 나라를 착취해 더욱 부유해졌고, 자유무역 시대엔 헤비급으로 성장한 나라와 굶주림에 지친 라이트급 나라 간 싸움이 공정하다고 강조됐다. 1700년부터 2000년까지 300년간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 사이 빈부격차가 무려 1400배나 늘었다는 조사 결과를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85명의 세계최대부자들이 최하위 빈곤인구 35억 명과 같은 부를 가졌다는 최근 통계는 그 차이가 줄어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불공평한 무역시장에 반기를 든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46년 미국 기독교 단체인 텐사우전드빌리지(Ten Thousand Villages)는 푸에르토리코 수공예품을 들여왔다. 당시 생산자들의 자립(Self-help)을 돕는 데서 시작한 대안무역 활동은 1980년대 막스 하벨라르(Max Havelaar)라는 첫 인증 브랜드가 네덜란드에 생기며 본격적인 공정무역(fair trade) 개념으로 정착됐다.

유명한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한 막스 하벨라르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동인도 제도(현 인도네시아) 원주민을 위해 투쟁한 가상인물이다. 제국주의 시절 제3세계 원주민들을 착취했던 할아버지가 후대에 물려 준 부채가 공정무역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출발이 종교적 박애든 제국주의 시절 부채이든 공정무역은 생산자와 노동자, 즉 '사람'에 초점을 둔다. "대화와 투명성, 상호의존성에 기반해 생산자와 노동자들이 만든 제품을 정당한 가격으로 구매하고 이들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무역방식"으로 정의된다.

1989년부터 2012년까지 뉴욕 선물시장 가격과 공정무역 최저가격을 비교한 그래프. 최근 들어 커피가격이 상승 추세지만 2001년의 커피위기처럼 최악의 급락상태를 맞을 경우 최저가격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작동된다.
 1989년부터 2012년까지 뉴욕 선물시장 가격과 공정무역 최저가격을 비교한 그래프. 최근 들어 커피가격이 상승 추세지만 2001년의 커피위기처럼 최악의 급락상태를 맞을 경우 최저가격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작동된다.
ⓒ Fairtrade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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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원칙이 필요했다. 시장가격이 급락해도 최소한의 금액을 보장받는 최저가격(minimum price)은 최악의 상황을 막는다. 사회적 프리미엄(social premium)은 별도의 공동체발전기금으로 현지 조합에게 전달되고 자주적·민주적 절차를 거쳐 학교를 짓거나 우물을 파는 등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사용된다. 농장이나 공장에 속한 노동자들은 최저임금과 노동조합 설립 등이 전제로 적용됐다. 최저임금을 생활임금으로 전환하려는 논의는 최근 업계의 화두다.

친환경 생산 역시 지원한다. 유기농 상품에는 추가적인 공정무역가격이 반영되고 기술지원도 지속한다. 그러나 친환경농법 전환이 제3세계 소농들에게 일정부분의 비용을 부담시키는 만큼 강제적인 원칙은 아니다. 빈곤 악순환의 원인이기도 한 아동노예노동과 남성 중심적인 사회가 만든 여성차별은 두말할 것 없이 금지다. 지속적인 생산계획이 가능하도록 장기거래를 우선하고 계약 시기부터 최대 60%까지 대금을 선지급하는 원칙도 견지한다.

나열된 공정무역의 역사와 정의, 원칙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 바로 사람이다. 자유무역의 수직 구조적 공급망의 최하위에 위치한 저개발국 생산자와 노동자들의 삶이 지속가능하고 자주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체제와 합의를 만드는 데 있다.

얼굴 없는 상품과 마주한 소비국 시민들에게 공정무역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생산자이자 노동자이기 때문. 일터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하면서 시장에선 생산자의 희생이 강요된 상품을 찾는다면 모순적이지 않은가. 사람을 위한 거래는 결국 얼굴 없는 생산자를 위한 시혜적 행위가 아닌 또 다른 나를 위한 당연한 일이다. 자본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사람이 다시 주인공이 되려면 결국 우리 스스로가 흐름을 바꿔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공정무역, #최저가격, #사회적 프리미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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