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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규슈조선중고학교 졸업식장 입구
 지난 1일 규슈조선중고학교 졸업식장 입구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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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 선배-! 주실 선배 !......"
"경화 선배  ! 리향 선배!......"

재학생들이 무대를 향해 외쳤다. 이날 졸업하는 선배들을 애달프게 부르는 소리다. 무대에서는 졸업생들이 마지막 순서로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57기의 노래)를 합창 하고 있다. 하지만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듯 목소리가 갈라져 있다. 

"이제는 우리 알아요. 날마다 노하신 선생님/ 말없이 안겨오는 믿음으로 키워진 우리 마음/ 이제는 난 알아요 고생하신 부모님 뜻을 / 보내주신 우리 학교에서 애국의 넋 키웠네/ 따뜻하게 지켜보는 눈길을/ 내밀어준 포근한 손길을/ 가슴속에 고이 새겨/ 행복의 길을 가리...."

겨우 1절이 끝났을 뿐인데 30여 명의 졸업생 얼굴마다 온통 눈물범벅이다. 70여 명의 재학생들의 목소리도 모두 젖어 있다. 이들을 지켜보는 졸업생 부모와 친지, 축하해주기 위해 달려온 지인들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갈채가 터졌다. 졸업생들이 눈물을 훔치며 객석 앞자리를 향해 걸어 나왔다. 각각 화사한 봄꽃을 들고 있다. 이어 자신의 부모를 찾아 꽃송이를 건넸다. 그리고는 서로 와락 부둥켜안았다.

끊이지 않는 눈물... 길고 긴 박수

졸업생들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르다 울먹이고 있다
 졸업생들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부르다 울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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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들이 노래를 부르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졸업생들이 노래를 부르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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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뚝∼ 서로의 어깨 위로, 등 뒤로 눈물방울이 떨어져 스몄다. 그때까지도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길고 긴 박수를 보내며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서도 방울방울 눈물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1일 일본 규슈조선중고급학교(후쿠오카현 북규슈시) 고급부 57회 졸업식장. 이날 졸업생과 학부모, 재학생, 친지 등 300여 명이 자리를 메웠다.

이날 오전 9시 30분. 학교 강당에서 졸업식이 시작됐다. 개회선언과 축전 소개에 이어 졸업증서를 수여하는 순서다. 담임교사가 졸업하는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호명했다.

강사야...김미야...김유리...김은영...순간 그가 울음을 삼킨다. 하지만 울먹이고 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제자들의 이름을 부르는 스승...대답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함께 젖어 있다.

이들의 졸업식이 유독 애잔한 연유가 있다. 짧게는 6년(중급, 고급), 길게는 12년(초급, 중급, 고급)동안 일본 사회 속에서 차별을 몸으로 느끼며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규슈재일조선고급학교는 해방직후 재일 조선인들이 세운 조선학교(이하 우리학교)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0년부터 모든 외국인 고급학부(고등학교)에 대해 무상화했지만 우리학교에 한해 예외로 하고 있다.

"우리학교 차별 이유? 정체성 지키는 민족 교육 없애려는 것"

지난 1일 일본 규슈조선중고급학교(후쿠오카현 북규슈시) 고급부 57회 졸업식장
 지난 1일 일본 규슈조선중고급학교(후쿠오카현 북규슈시) 고급부 57회 졸업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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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학교 고급학교 과정을 수료해도 공식 학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민간 기부금에 세제혜택조차 없다. 이런 이유로 학교 수마저 부족해 중급부에 진학하려면 일찌감치 가족과 떨어져 먼 곳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야 한다. 이날 졸업생 중 6명은 소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해왔다.

그렇다고 우리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모두 '조선적'(맥아더 군정시기 붙어진 명칭으로 무국적자)이라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졸업생을 포함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 중 60% 이상이 한국 또는 일본 국적이다.

이 학교의 전진성 교장은 "우리학교에 대한 차별은 군 위안부 등 역사를 일본 문부과학성이 요구하는 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재일교포들의 정체성을 없애고 천황에게 충성하는 일본사람으로 동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우리학교를 차별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 정부는 우리학교 측에 무상교육을 위한 조건 중 하나로 '과거 식민지는 강제성이 일체 없었고 종군위안부도 자발적인 것으로 가르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후배들 "선배에 대한 자부심, 공경심 가득"

졸업생과 가족들이 식이 끝난 이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졸업생과 가족들이 식이 끝난 이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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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동락해온 급우들은 형제자매처럼 다정해 보였다. 이들은 앞의 '52기의 노래'를 통해 '철없어 다투던 날도/ 기쁨이 넘친 순간도/ 언제어디서나 벗들이 내 곁에 늘 있었지/ 서로 믿고 사랑하는 방법 30명 동지와 찾았네/ 귀중한 만남 우리 다진 약속/ 영원히 잊지 말자'/고 노래했다.

이들의 눈물 속에는 당당함과 감격의 감정도 스며 있다. 공식학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도 조선대학교에 12명, 여러 일본에 있는 대학교 9명, 전문대 6명, 후쿠오카 상공대 1명이 진학했다. 나머지 학생들은 각각 기업에 취업했다.    

재학생들은 이날 졸업생들에게 "우리학교 교과서 한장 한장마다 민족교육을 하겠다는 추억과 노력이 새겨있다"며 "오빠, 언니들에 대한 자부심과 소명의식, 공경심이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졸업생들도 답사를 통해 "웃음 꽃 피던 교실, 뛰어 놀던 운동장과 구슬 땀 흘리던 체육관, 합동운동회, 새교사 기념축제, 고교무상화 투쟁 등 기억들이 수처럼 아름답게 빛난다"며 "우리학교에 대한 기억을 꼭 간직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졸업한 주선미 학생은 부모님께 쓴 글을 통해 "6년간의 민족교육을 통해 배운 애국심과 조선 사람의 넋과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다"며 "조선어와 조선역사 등 민족을 배울 수 있었던 6년이 제 인생 속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주선미 학생이 부모님께 쓴 편지글 내용이다.

   "우리학교 다닌 6년 가장 행복... 조선사람으로 클 것"
-주선미 졸업생이 부모님께 쓴 편지글-
주선미 졸업생이 가족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꽃송이를 건넸다. 가족들이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주선미 졸업생이 가족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꽃송이를 건넸다. 가족들이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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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어머니께.

제가 이 학교를 입학한 지도 6년이 됩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말조차 모르는 속에서 아버지 어머니 곁을 떠나 기숙사 생활로 불안이 많았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중학급 1학년 때에도 제 머리카락을 스스로 묶을 줄 몰랐습니다. 어머니께서 소학생시절 아침마다 머리를 단정히 묶어 주신 흔히 있는 일이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학교 동무들이 부러울 때도 많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멀리 떨어진 곳에 저를 보내고 많은 걱정을 하셨겠죠? (중략)

입학 당시는 우리말을 배워야 할 이유를 몰랐고 조선 사람인 것을 자랑 못할 뿐만 아니라 일본(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본 사람 같은 인격이었습니다. 그러나 6년간의 민족교육을 통해 조선 사람의 넋과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학교에서 누린 시간을 하나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조선어와 조선역사 등 민족을 배울 수 있었던 6년간이 저의 인생 속에서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학교에 보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조선 사람으로서 떳떳이 살아나갈 결의를 다지겠습니다. 또 조국과 재일동포 사회의 부흥발전을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꼭 우리 시기에 조국 통일과 조일국교정상화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일생을 바쳐나가겠습니다. 저를 우리학교에 보내주셔서 조선 사람으로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주선미 드림




태그:#우리학교, #큐슈조선중고급학교, #졸업식, #눈물, #재일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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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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