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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침.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부스스한 몸을 정리하며 눈을 떴다. 대학 생활 둘째 날.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봤다. 8시 10분. 잠깐, 8시 10분?!

"으아악! 지각이다!"

강의에 지각하지 않기 위한 강행군의 시작이었다.

'2시간 42분', 강행군의 시작

내가 다니는 대학은 강원도 춘천의 한림대학교다. 원래 나는 입학 후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인해 서울에서 통학하게 됐다. 내가 사는 곳은 강동구 길동으로, 나름 다니는 학생들이 많은 탓에 집 앞 지하철역까지 통학 버스가 온다. 통학 버스가 오는 시각은 아침 7시. 8시면 다른 지역의 통학 버스도 이미 출발한 시간이다.

"○○아, 일어나!"

옆에서 잠을 자고 있던 동생을 깨운 나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방이 어두컴컴하지. 내리는 눈으로 인해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뛰어서 도로로 간 나는 택시를 잡아탔다.

"길동역으로 가주세요!"

역으로 이동하면서 네이버 길 찾기를 통해 대학에 가는 방법을 검색했다. 통학 버스 외에도 대학에 가는 방법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경춘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네이버 길 찾기를 통해 길동역에서 한림대학교까지 걸리는 예상 시간을 검색해 봤다.

길동역에서 한림대학교까지 걸리는 예상 시간.
 길동역에서 한림대학교까지 걸리는 예상 시간.
ⓒ 네이버 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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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시간 42분'

아득히 '타임 리미트'를 초과하는 시간이다. 머리가 멍해졌다. 영락없는 지각. 입학 다음날부터 지각이라니.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강의는 절대 지각하면 안 돼! 지각하는 순간 교수에게 찍히는 거야!"

대학 2일차인 내가 그 말이 사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강의에 지각하면 좋은 꼴 보기는 힘들다는 것은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리를 굴리다가 길 찾기 시스템의 시내 교통 옆의 시외 교통을 발견했다. 클릭해보니 운 좋게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었다. 경춘선에 엮어져 있는 ITX 청춘 열차. 정말 한 줄기 구원의 빛과 같이 느껴졌다.

'1분 1초가 아깝다' 바로 뛰었다

ITX 청춘 평일 시간표.
 ITX 청춘 평일 시간표.
ⓒ 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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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X 청춘 열차의 시간표를 봤다. 현재 시간은 8시 20분. 강의에 늦지 않고 가기 위해선 9시(용산 기준) 열차를 타야 한다. 길동역에서 용산과 청량리까지 예상 시간을 계산해봤다. 적어도 10분 이상 시간이 초과됐다. 왜 시간이 되는 상봉에서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지. 마지막으로 평내호평까지의 시간을 재어 봤다. 역에는 35~40분 사이에 도착할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간 100% 지각해버릴 상황. 모험해 보기로 했다.

달렸다. 환승역에 도착하면 바로 뛰었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한다면 지각하지 않을 여지가 늘어난다. 상봉에 도착하고 보니 춘천행 열차(경춘선)가 도착했다는 안내가 보였다. 서둘러 뛰어가 문이 닫히기 전 아슬아슬하게 탑승했다. 이동하면서 역을 계산했다. 35분 정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응? 뭐지?'

갑자기 열차가 한 역에서 멈추더니 몇 분 정도 정차하고 있는 거다. 심지어 누군가 끼어들었는지 문이 닫히려고 하자 다시 열리기도 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황금같이 귀한 몇 분이 날라가다니…. 뭔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시간을 계산해 봤다. 40분. ITX 청춘 열차는 9시 38분에 역에 도착한다. 빼도 박도 못하고 지각 확정이었다.

'어?'

멘붕에 빠져있을 무렵, 안내판에 이런 문구가 나왔다.

'이번 역 : 평내호평'

지금 시간은 9시 26분. 예상 시각보다 10분 이상 일찍 도착하게 된 것이다. 지각하지 않을 수 있겠다! 알고 보니 길 찾기에 나온 예상 시각은 열차 대기시간과 환승 시간이 포함된 것이었다. 내가 서두른 덕에 시간이 절약됐던 것이다. 서두르지 않았다면 고스란히 열차를 놓칠 뻔했다.

표를 톨게이트에 대고 지나가니 <삐->

ITX 청춘 열차를 타기 위해 평내호평역에서 기다리고 있다.
 ITX 청춘 열차를 타기 위해 평내호평역에서 기다리고 있다.
ⓒ 오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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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을 보니 ITX 청춘 열차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게이트로 내려가 ITX 청춘용 표를 구매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내려가보니 톨게이트 밖에 표를 구매하는 기계가 있었다. 게이트를 나간 후 표를 발급받아 다시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표를 어디에 넣고 들어가야 하지?'

입구를 아무리 살펴봐도 교통카드를 대는 곳뿐이었다. 1회용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서울 지하철과 달리 ITX 청춘은 기차와 같이 취급해 교통카드가 아닌 표를 발급한다. 주변의 아주머니께 여쭸다.

"아주머니, 표는 어디에 넣고 들어가야 하나요?"

그러더니 그 아주머니, 그냥 들어가면 된단다. 표를 톨게이트 인식기에 대면 된다나. 미심쩍어하면서도 괜찮다 하기에 시킨 대로 했다.

<삐->

소리가 나면서 게이트가 나를 막았다. 뒤의 다른 아주머니가 ITX 청춘 전용 입구는 옆에 있는 게이트라고 말한다. 그냥 표를 사면 바로 들어가면 된다는 거다. 부끄러워서 플랫폼으로 재빠르게 올라가버렸다.

조금 기다리자 ITX 청춘 열차가 들어왔다. 자리는 2호차 10B석. ITX 청춘 열차는 처음 타본 탓에 내부를 둘러보니 KTX와 비슷하게 생겼다. 밖을 내다보니 주변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확실히 경춘선보다는 빠르구나. 눈 깜짝할 사이, 춘천역에 도착했다. 10시 14분. 강의까지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나는 역 앞에 있는 대학 셔틀버스를 타고 대학으로 갔다. 참 흥미로운 경험이긴 했다. 그렇지만, 이런 강행군을 두 번 겪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강의실에 앉으며 생각했다. 다시는 늦잠 자지 않겠노라고.


태그:#ITX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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