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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직원이 잘 내린 발리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 발리 커피 농장 직원이 잘 내린 발리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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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휴양지 발리는 커피로도 유명한 곳이다. 발리에는 커피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필수코스로 찾는 커피 농장들이 많다. 발리의 여러 커피 농장들은 재배하는 커피의 종류와 규모가 비슷한데, 여행자들은 대개 발리의 관광지를 오고가는 길에 이름 있는 커피 농장을 들린다. 아내도 커피를 좋아하고, 커피의 맛을 꼼꼼하게 느낄 줄 알기 때문에 당연히 발리의 여행 코스에 발리 커피 농장 방문을 포함했다. 

나는 발리 친구 아롬이 소개해 준 '오카 어그리컬쳐 발리(OKA Agriculture Bali)'라는 커피 농장으로 들어갔다. 커피 농장 입구에 있던 발리의 한 가족이 우리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엄지를 치켜세우며 한국 여자들이 참 예쁘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까지 퍼진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여자를 보면 다 예뻐 보이는 모양이다.

7가지의 커피와 차

이 유쾌한 발리 주민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아주 강한 호감을 보여줬다.
▲ 커피농장 입구 이 유쾌한 발리 주민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아주 강한 호감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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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볶는 농장 아주머니가 밝게 웃고 있다.
▲ 커피 볶기 커피를 볶는 농장 아주머니가 밝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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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안으로 들어가는 길 양 옆으로는 커피 나무들이 가득하다. 아라비카 커피(Arabica Coffee), 로부스타 커피(Robusta Coffee), 자바 커피(Java Coffee), 발리 커피(Bali Coffee) 등 다양한 커피 나무들이 있다. 아직 익기 전의 진한 녹색인 커피 열매가 커피 나무에 풍성하게 달려 있다. 세계적 생산량을 자랑하는 아라비카 커피는 주로 에티오피아가 원산지고, 로브스타 커피는 주로 아프리카 서쪽 지역에서 자라기 때문에 나는 이곳 발리에서 재배하는 커피 품종을 맛보겠다고 생각했다.

농장 주변은 온통 야자나무로 가득한 숲이었고, 경사진 언덕 아래로도 열대의 밀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농장에서는 발리의 과일도 팔고, 발리에서 나는 향신료도 팔고 있었지만 나는 이 농장의 다양한 커피를 경험해 보기로 했다.

농장 안으로 들어서니 농장 아주머니가 한창 커피를 볶고 있다. 한국에서 흔히 접하는 커피지만, 커피를 직접 볶는 모습을 처음 보니 오히려 생소하다. 우리나라야 커피를 다루는 공정들이 대부분 자동화돼 있지만 발리의 이 커피 농장에서는 완전히 수작업으로만 커피 제품을 만들고 있다. 분말이 물에 녹아 있는 커피만 보다가 이렇게 콩의 형태로 볶아지는 커피를 보니 체험 학습을 하는 듯 신기하게 다가온다. 평생 커피를 볶으셨는지 팔뚝 굵은 아주머니가 커피를 볶으면서 우리를 보고 웃는다. 발리 사람들은 원래 낙천적인지 항상 웃고 있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아주머니가 볶은 커피나무 열매의 씨, 커피 원두는 다양한 바구니에 담겨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진한 녹색의 커피 원두는 한참을 볶자 맛있어 보이는 갈색으로 변해갔다. 한 바구니에는 다른 커피들에 비해 뭔가 다닥다닥 엉겨 붙어 있는 커피 원두도 있다. 사향 고양이 대변이 붙어 있는 이 르왁 커피 원두는 조금 지저분하고 까맣게 보인다.

사향고양이 배설물이 그대로 묻어 있는 르왁 커피 원두가 바구니에 담겨 있다.
▲ 커피 원두 사향고양이 배설물이 그대로 묻어 있는 르왁 커피 원두가 바구니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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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직원이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할 커피와 차를 만들고 있다.
▲ 커피 타기 농장 직원이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할 커피와 차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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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는 다양한 커피를 종류별로 따로 볶아서 넓고 평평한 바구니 여러 개에 구분해 두고 있었다. 커피는 원산지가 어딘가에 따라 맛이 다르고, 커피 원두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그 향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갓 볶은 커피 원두에서 나는 향긋한 향기가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이 농장 안에는 세계 각국의 이름난 커피와 차를 무료로 시음해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무료라고는 하지만 이 커피들이 맛있으니 마셔보고 자기네 농장 제품을 사 달라는 이야기다. 자리에 앉으니 온갖 커피와 차가 예쁜 유리컵에 담겨 하나씩 하나씩 나온다. 커피 농장이라 모두 커피를 시음하는 줄 알았는데 컵 아래 종이에 적힌 이름을 보니 몸에 좋다는 많은 차들이 포함돼 있다. 커피잔과 찻잔이 모두 7잔이나 되니 아내와 나눠마신다고 해도 다 마실 수는 없는 양이다. 나와 아내는 한 모금씩, 이 커피와 차가 무슨 맛인지 음미해 보았다.

첫 번째로 올라온 커피는 인삼향이 그윽한 인삼 커피(Ginseng Coffee)이다. 커피에 인삼 분말을 넣은 커핀데 특이하기는 하지만 나와 아내는 인삼 종주국에서 왔기 때문에 그 맛이 신기하지는 않다. 두 번째 순서로 올라온 차는 생강이 차에 브랜딩된 생강차(Ginger Tea). 우리나라에서 감기에 걸렸을 때 많이 마셔 봤던 차라 낯설지는 않다. 생강은 동남 아시아가 원산지인 작물이라 발리에서도 생강 문화가 많이 퍼져 있지만, 인삼 커피에 들어간 인삼은 한국을 비롯한 동북 아시아에서 도입한 문화일 것이다.

커피 이름이 발리 커피(Bali Coffee)인 커피가 그 다음으로 나왔다. 붉거나 노란 기운이 도는 차 옆에 발리 커피가 놓여 있어 커피의 색상이 유독 진하고 검게 보인다. 발리 친구 아롬의 설명에 따르면 발리 커피 가루는 물에 녹아서 없어지지 않고 물 아래에 가라앉는다고 한다. 진한 커피 가루가 목을 넘어가지 않게 하면서 마시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마셨다. 보이는 색상과 마찬가지로 커피 맛이 아주 진하고, 오래된 커피 문화를 즐기는 느낌이 들게 한다.

이 농장의 무료 시식 커피와 차는 지그재그로 섞여 나온다. 발리 커피 다음으로 나온 것은 레몬 그라스 티(Lemon Grass Tea). 이름에 레몬이 들어가지만 레몬이 들어간 차는 아니고 레몬 같은 상쾌한 향이 나는 허브로 만든 차다. 이름대로 차에서 상큼하고 시원한 허브 맛이 난다. 눈으로 찻잔을 보면서는 알 수 없었지만 입으로 맛을 보니 태국 등 동남 아시아 여행을 하면서 많이 맛봤던 허브였다는 사실을 혀가 기억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로 나온 것은 발리에서 재배한 카카오 열매로 만든 발리 코코아(Bali Cocoa)이다. '코코아'와 '카카오'는 비슷한 이름 때문에 헷갈리기 쉬운데, 코코아는 카카오 콩을 볶아 깨뜨린 후 지방분을 짜낸 것이다. 그동안 내 기억으로 코코아는 아주 진하게 달다고 알고 있는데, 발리 코코아는 웬일인지 맛이 달지 않고 쓰다. 아마도 우리나라 커피 가게에서 코코아에 넣는 우유를 넣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라 로즈 티(La Rose Tea)는 이름대로 장미향이 솔솔 풍긴다. 그 향이 그윽하고 고혹한  향수 같은 느낌이다. 찌는 듯이 더운 발리 날씨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발리의 열대 우림 속이 아니라 영국의 어느 한적한 찻집에서 마시면 어울릴 만한 맛이다. 향이 너무 강해서 차 맛을 즐기기가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다.

마지막 무료 시음 커피로 나온 커피는 코코넛 커피(Coconut Coffee)이다. 커피에 코코넛 액을 블랜딩한 커피다. 시원한 코코넛과 뜨끈한 커피가 만나 달콤한 맛을 낸다. 달콤한 맛이 혀 전체에 감미롭게 퍼진다. 나는 이렇게 지금까지 나온 커피, 차를 모두 한 모금씩 다 마셔보았다. 7잔에 담긴 여러 맛을 한꺼번에 마셨더니 입이 조금 얼떨떨한 느낌이 든다.

이 농장에서 제공하는 커피와 차가 다양한 향과 맛으로 유혹한다.
▲ 다양한 커피와 차 이 농장에서 제공하는 커피와 차가 다양한 향과 맛으로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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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왁 커피 위해 사육하는 사향 고양이... 측은했다

커피를 팔기 위해 이 많은 커피들을 무료 시음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커피 농장의 커피 시음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농장 직원이 커피 내리는 기계를 가져오더니 불을 붙이고 천천히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이 직원은 알코올 램프같이 생긴 커피 내리는 기계를 가지고 직접 불을 조절해가면서 한 방울 한 방울씩 르왁 커피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이 커피는 무료 커피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돈을 내고 마시는 커피였다. 이 커피만이 고급스럽게 흰 커피 잔에 담겨서 나온다. 무슨 특별한 커피냐고 물었더니 바로 르왁 커피라고 한다. 영화 '버킷리스트(bucket list)'에서 주인공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리스트 중에 이 르왁 커피 마시기를 적어 두었던 기억이 났다. 농장에 들어오면서 농장 입구에서 보았던 사향 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고 만든 커피다. 커피 열매를 먹은 사향고양이가 대변을 보면 나오는 커피 원두로 만든 바로 그 커피.

알코올 램프 같이 생긴 커피 기계로 르왁 커피를 내리고 있다.
▲ 커피 내리기 알코올 램프 같이 생긴 커피 기계로 르왁 커피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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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내려진 르왁 커피가 커피 잔에 옮겨져 담기고 있다.
▲ 르왁 커피 준비 잘 내려진 르왁 커피가 커피 잔에 옮겨져 담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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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왁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로 유명하다. 르왁 커피가 비싼 이유는 야생의 사향 고양이가 만드는 커피 향과 향미 때문인데, 이 맛은 다른 커피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맛이다. 사향 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으면 사향 고양이의 소화 기관에서는 커피 열매의 과육만 소화되고 그 안의 생두가 사향 고양이의 배 안에서 그대로 숙성, 발효돼 대변으로 배출된다. 사향 고양이 뱃속의 커피 원두는 화학 변화를 거치면서 색도 진해지고 단단해진다.

르왁 커피는 사향 고양이의 배설물 중에서 이러한 화학적 변화를 거친 생두를 물에 잘 세척해서 건조해 만들어진다. 한 마디로 사향 고양이 배설물 안에서 똥을 발라내고 생두만을 골라내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코피 루왁(Kopi Luwak)'이라고 불리는 이 커피는 아주 희소성이 있어서 비싼 커피가 됐다. 숲에 사는 사향 고양이의 대변을 얻기 힘들고 그 양도 워낙 작은데 맛은 일품이라고 하니 비싼 커피가 된 것이다.

다른 커피와 격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고급스런 커피 잔에 담겨있다.
▲ 르왁 커피 다른 커피와 격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고급스런 커피 잔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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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열심히 르왁 커피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발리의 커피 농장에서 기르는 사향 고양이들이 만드는 커피는 양식 생선같이 양식 루왁 커피인 셈이다. 비싼 르왁 커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사향 고양이를 사육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농장에서 봤던 사육된 사향 고양이도 영양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는지 병들어 보였다.

숲에서 잡혀 인간의 손에서 커피 열매만 먹고 우리에서 똥만 누다가 가는 사향 고양이는 절대 건강한 사향 고양이가 아니다. 인간에 의해 병든 사향 고향이가 만든 커피는 야생의 사향 고양이가 만든 르왁 커피와는 다르며, 최고의 커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나는 이 농장 직원들이 주는 르왁 커피를 마셔보았다. 사향 고양이 똥이 묻었던 르왁 커피 원두를 잘 씻었기 때문에 비위가 상하는 맛이 나지는 않는다. 나는 천천히 르왁 커피의 맛을 느끼면서 먹어보려고 하였다. 입 안에 진하고 조금 고소한 커피 맛이 나고 쓴맛도 난다. 그리고 이 쓴맛이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이 르왁 커피가 향과 맛에서 일품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솔직히 이 맛이 대단한지는 모르겠다.

우리 안에 누워서 잠만 자고 있는 사향고양이가 측은해 보인다.
▲ 사향고양이 우리 안에 누워서 잠만 자고 있는 사향고양이가 측은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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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농장을 나가는데 울창한 커피 나무 사이로 철조망 우리에 갇혀서 사육되는 한 동물이 보인다. 르왁 커피를 만들기 위해 사향 고양이를 사육하는 곳이다. 사육장 철조망에는 사향 고양이가 먹으라고 놓아준 커피 열매가 걸려 있다. 이 사향 고양이는 여행객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고개를 돌리고 등만 보여주면서 잠을 자고 있다. 배를 드러내놓고 잠만 자고 있는 사향 고양이가 측은해 보인다.

농장을 다 둘러보고 나가는 길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우리에게 르왁 커피를 사라고 유도한다. 나는 축 늘어져 있는 사향 고양이를 떠올리며 기념품 가게를 그냥 지나쳤다. 인간의 기호식품을 위해 우리에서 똥만 누고 있는 사향 고양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향 고양이는 내가 다시 돌아보았을 때도 배를 드러내고 누워만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14년 6월 19일부터 6월 24일의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기록입니다.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400 여 편이 있습니다.



태그:#인도네시아 여행, #발리, #르왁 커피, #사향고양이, #커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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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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