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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 철학을 담은 그림 책 표지
ⓒ 청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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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빠르게, 더 높게, 더 힘차게'는 더 이상 올림픽의 구호만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경쟁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이 도발적 문구가 이제는 현대인 모두의 삶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심각해서 만성적인 피로를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피로사회가 되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잠깐 주변만 돌아봐도 올림픽 선수 못지않게 더 빠르게 더 높이 내달리려 발버둥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라서면 올라선 대로 내려서면 내려선 대로 하나같이 더 높은 곳만 꿈꾸다 보니 모두가 턱밑까지 피로에 차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한 때는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각광받은 국민적 근면함도 구조적 모순이 만들어낸 쉴 줄 모르는 태도라며 재평가되는 시국이다. 이러한 상황은 곧 위로나 치유, 각종 대안적 삶의 양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힐링이 사회문화적 키워드로 떠오르고 서점에서는 힐링을 이야기하는 서적들이 앞자리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특히 그림, 조각, 음악, 연극 등 예술장르와 힐링을 엮어 이야기를 풀어간 책도 상당했는데 예술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려는 욕구가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지친 당신의 마음 속에 걸어놓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고전비평공간 규문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채운의 신간 <철학을 담은 그림>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다. '지친 당신의 마음 속에 걸어놓다'라는 부제가 책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철학과 미술에 관심이 많은 저자답게 파울 클레부터 앤드루 와이어스, 외젠 들라크루아, 데니스 호퍼, 오귀스트 로댕, 르네 마그리트, 에드바르 뭉크, 프리다 칼로, 바실리 칸딘스키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으로부터 깊은 사유가 깃든 이야기를 풀어낸다.

때로는 날카롭고 때로는 깊이 있으며 때로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그녀의 글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읽는 이로 하여금 따스하고 친근한 감정이 들게끔 한다는 게 그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의 올케를 위해 글을 썼다고 적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따스하고 친근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일 테다.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직장에 다니면서 겪을 법한 다양한 마음들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글을 쓰려한 저자의 의도가 책 곳곳에서 읽힌다. 피로사회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을 평범한 독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림으로부터 철학적 사유로 이끄는 안내서

본래 예술이란 것이 수용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법이라지만 그림만큼 해석이 다양한 장르도 흔치 않을 것이다. 표현에의 의지로 가득 찬 작가에 의해 평면의 캔버스 위에 응축되어 태어난 이 창작물은 그 특성 때문에라도 의도를 그대로 읽기가 쉽지 않다. 미술작품에 대해 아는 만큼 보인다거나 생각하는 만큼 볼 수 있다는 말이 따라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미술관에서 우르르 몰려다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슨트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철학을 담은 그림>은 그림을 통해 독자들을 철학적 사유로 이끌어가는 도슨트처럼 보인다. 저자는 이 에세이에서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등장시키며 그로부터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관심가질 만한 이야기로 이어나간다.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로부터 현대인의 피로를 읽고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의 모습을 찾으며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핀 연못>으로부터 매 순간의 가치를 역설하는 식이다.

모두 4개의 장으로 이뤄진 책에는 20개가 넘는 작품들이 등장하는데 파울 클레처럼 저자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의 경우에는 보다 깊이있는 해석과 설명이 이뤄지기도 한다. 파울 클레는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린 것 같이 기묘한 작품으로 알려진 작가인데 저자는 추상과 구상 사이에서 저 나름의 방식으로 정면돌파하는 그의 그림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듯하다.

미술에 특별히 조예가 깊지 않은 독자라도 쉽고 편하게 그림을 읽어주는 저자의 친절함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치열한 일상에 지쳐 당장이라도 휴식을 청하고 싶은 이라면 추천할 수 있는 썩 괜찮은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철학을 담은 그림>(채운 지음 / 청림출판사 펴냄 / 2015.01. / 1만 3800원)



철학을 담은 그림 - 지친 당신의 마음속에 걸어놓다

채운 지음, 청림출판(2015)


태그:#철학을 담은 그림, #청림출판사, #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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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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