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함께합니다. 그가 품는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그동안 너무나 아파서 가슴이 막막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오며, 작기만 했던 가능성은 어느덧 기대 이상으로 실현됐습니다. 그리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중심에는 '사람은 상처 받고 고통만 당하기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약 24년(1991~2014년) 동안 조카와 함께 울고, 웃던 나날들의 경험이, 어떻게 풍성한 열매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기자 말

<자유론>의 저자로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존 스튜어트 밀이 49-19의 답을 49로 대답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니?"

그동안 자신의 답이 틀렸다고만 지적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버지가 궁금해하고 물어봐주는 데 아들은 신바람이 났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뺀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없어진다는 의미잖아요. 49와 19가 있는데 거기서 19를 빼면 49만 남아요. 빼는 수가 무엇이든 본래의 숫자는 그대로 존재하지 않나요?"

이에 아버지는 호응을 하면서 아들에게 대답했다.

"아들아, 너는 천재적이구나. 네 말이 맞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학교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최소한의 약속을 배우는 곳이란다. 학교에서 사람들과 있을 때는 49-19=30이라는 약속을 지켜주렴. 대신 혼자 있을 때는 그 답이 49라는 것을 더 연구해도 괜찮단다."

그의 아버지는 결코 자녀를 화나게 하지 않았다. 사려 깊게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와 배려로 대했다. 결국 이런 아버지의 태도가 아들의 사고체계와 역량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덕이의 예상치 못한 질문... 순간 당황했다

가족 사이의 대화는 사실 그대로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좋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상대의 질문을 경청하자.
 가족 사이의 대화는 사실 그대로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 좋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상대의 질문을 경청하자.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한 번은 조카인 덕이가 나에게 물었다.

"고모, 나는 엄마랑 아빠가 없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덕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지능이 낮은 만큼, 사고력도 낮았다. 그동안 나는 덕이가 아무 생각이 없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는, 덕이가 한없이 안쓰러우면서도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나는 마음 속으로 계속 '제가 덕이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요?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요? 어떻게 대답해야 덕이가 덜 가슴 아파할까요?'라고 답을 찾는 기도를 올렸다. 나는 고민 끝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 해줄 때가 되었다고 결론 내렸다.

"덕아, 너의 질문에 고모가 매우 놀랐단다. 덕이가 엄마, 아빠에 대해 궁금해 할 정도로 잘 커 주어서 고마워. 아마도 덕이의 이런 모습을 엄마와 아빠가 보시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기뻐하실 거야. 덕아, 너에겐 엄마, 아빠가 안 계시다는 말을 하기가 정말 가슴이 아프고 슬프단다. 내가 이정도로 마음이 아픈데, 너는 어떻겠나 싶어서 조심스러워. 네 말처럼 덕이는 엄마와 아빠가 안 계시단다. 덕이는 평소에 엄마와 아빠가 안 계신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니?"

덕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단지 눈을 떼지 않고 계속 내 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할머니나 고모가 너에게 신경 써 주고 아무리 잘 해준다고 해도, 너가 엄마와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니구나. 고모 또한 덕이처럼 고모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우리 둘은 그런 점에서 똑같네. 그래서 고모는 고모의 아버지가, 지금 고모가 어떻게 생활하기를 바라실까 하고 생각한단다. 덕이도 고모처럼 아빠가 안 계시잖아. 혹시 덕이 아빠라면 덕이가 어떻게 지내기를 원하고 계실까?"

한동안 대답이 없던 덕이는 "몰라요"라고 짧게 말했다.

"응, 그렇구나. 덕이는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 수 있으니까, 모를 수도 있 을 거야. 고모 생각에는, 덕이 엄마와 아빠는 덕이가 훌륭한 태권도 관장님이 되기를 바라실 것 같아. 그러니까 밥도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덕이가 건강하기를 원하실 것 같아. 어떻게 생각 하니?"

"엄마, 아빠도 그럴 거예요."

"그러면 덕아, 다른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계셔서 그 아이들 돌보고 지켜주잖아. 그런데 우리 덕이는 그런 엄마와 아빠가 안 계시니까, 덕이는 누가 지켜야 할까?"

한참을 생각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덕이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지켜야 해요."

나는 덕이가 건강하기를 바랐다. 덕이가 만 6세일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하게 했다. 태권도를 시작하면서 1년 이상, 나는 수도 없이 덕이에게 "덕아, 태권도는 왜 하는 걸까?"라고 물었다. 그러면 덕이는 "덕이가 건강하려고요"라는 대답을 반복했다. 그 대답을 덕이가 하면, 나는 이어서 대답했다.

"딩동댕, 맞았어요. 덕이가 건강해서 씩씩하게 자신을 지켜야 해요."

덕이의 그날 대답은, 지금까지 해왔던 그 문답의 연장선에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단다. 엄마와 아빠가 안 계신 것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너에게 엄마와 아빠는 지금도 너가 건강하고 멋진 태권도 관장님이 되기를 바라실 거야. 이제 부터는 멋진 태권도 관장님이 되기 위해서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보자."

덕이는 나의 말에 눈만 깜빡깜빡 하더니 알았다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달라진 덕이의 태도, 사실대로 설명할 용기가 필요하다

덕이에게 "나는 왜 엄마, 아빠가 없어요?"라는 질문을 받은 순간, 덕이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느꼈다. 그 마음을 덕이도 느껴서 였을까? 아니면 고모도 자신처럼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는 말에 위로를 받았기 때문일까. 덕이의 슬픔을 미리 헤아려 이해해주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덕이가 가장 좋아하는 태권도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해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을 수도 있다.

여러 추측을 해보았다.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되었든, 덕이는 엄마와 아빠를 찾는 질문을 나나 할머니에게 더이상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덕이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특히 덕이가 자기 물건을 정리하고 관리할 때, 스스로 하려는 생활 태도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평소 덕이의 유치원 실내화를 늘 내가 토요일이면 빨아주었다. 그런데 덕이가 자기 물건이니까 스스로 빨겠다고 나서는 게 아닌가. 나는 직접 실천하도록 지켜보았다.

물론, 그 후로 몇 개월간은 덕이가 빨았다는 실내화에서 비눗물에 섞인 땟물이 그대로 말라 얼룩이 져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존중해 주었다. 비눗물이 섞인 땟물은 다시 빨면 사라진다. 우리 건강을 위협하는 큰일도 아니지 않은가.

한국 사회에서 자녀를 혼자 키우는 것, 아직은 많은 어려움이 동반될 수 있다. 주위의 선입견도 있고, 스스로 주눅이 들 때도 있다. 자신이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불편해할 수 있다.

이때 유의해 볼 점은 사실 그대로 상황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큰 두려움이었던 대상이 별것 아닌 게 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거기에서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이 들어 있다.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 그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아픔은 기꺼이 즐겨보자.

어느 날 왕 독수리에게 아기 독수리가 말했다.

"왕 독수리님이 부러워요. 저는 매일 매일 살아남기 위해서 위험을 견뎌야 하거든요."

이에 왕 독수리는 아무 말 없이 양 날개를 쫙 펴보였다. 양 날개의 겨드랑이와 몸통에는 숱한 상처들이 있었다.


태그:#이해와 공감, #사랑과 존중, #아픔과 격려, #가능성과 현실, #매일의 감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