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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임재춘의 농성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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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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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춘의 농성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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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말부터 시작한 이 교정 핑계를 대고 대전 성북동 '산들바람'에 월요일마다 들르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 그러다 1월 마지막 주에 이 치료가 일찍 끝나 대전 성북동에 들르기로 마음먹었다. 대전 성북동으로 가는 차가 없어 계룡 가는 버스를 타고 방동 저수지 정류장에 내려서 걸었다.

오랜만에 그 길을 걸으니 낯설었다. 처음 그 길을 걸을 때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와 저수지는 얼어서 사람도 없고, 한적한 시골마을 자체였다. 그러나 조금 들어가 보니 식당도 많이 생기고 식당 간판도 많이 변해 있었다.

저수지는 꽁꽁 얼어 있었지만 그 위의 철새들이 나를 반겼다. 철새들도 저수지가 얼어 먹고 살기가 힘이 들어 식당 앞 도랑에서 물을 마시며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랑에서 물고기를 기다리는 철새의 모습에서 내가 보이는 건 왜일까? 겨울이 되어 저수지를 잃어버린 철새…. 우리 정리해고자들과 똑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면서 '우리들은 언제나 이 겨울을 지나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 성북동에 도착하니 조합원 3명(최정진, 문희, 박만규)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그동안 안부고 뭐고 치과치료와 돈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고, "그동안 고생 많이 하였다"고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차 한 잔 마시고 나자 대전 성북동의 조합원들은 '산들바람'을 정리하는 날이라 오늘은 무척 바쁘다고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투쟁을 해도 사장은 꿈적도 안 한다

산들바람은 12월말까지 정리하려고 하였다가 고추장 재고가 너무 많아 2월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그런데 성북동 조합원 한 명이 직장을 잡아 2월부터 출근을 한다고 하여 1월말까지만 운영하는 것으로 다시 일정을 조정했다. (정리하는데도) 일손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한다. 나는 그동안 이 때문에 못 들어 간 게 미안할 뿐인데, 참….

포장하려고 고추장 독을 내리는데 장독대 계단이 얼었다 녹아 망가져 있었다. 독을 내릴 때 조심조심 하라고 성북동 조합원은 신신당부했다. 처음 산들바람 장독대를 잡을 때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싸움도 많이 하였는데, 정리하는 데는 의견충돌 없이 일사천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장독대가 몇 년 동안 우리 콜텍 정리해고자들의 생계를 위하여 고생했다. 그래서 정이 들었던 장독대를 그곳에 남겨두고 '산들바람'은 사라진다는 게 너무 아쉽다.

처음 장독대 자리를 만들 때 햇빛과 바람을 얻기 위해 힘이 들어도 높은 곳에 설치하였다. 내가 생각해도 장독대 장소 하나는 참 잘 잡은 것 같다. 몇 시간 동안 장독대 정리를 하면서 '산들바람' 만들 때의 기억과 지금의 여러 가지 잡생각들이 스쳐갔다.

임재춘의 농성일기
 임재춘의 농성일기
ⓒ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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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인천 농성장 3명(이인근, 김경봉, 임재춘)의 일도 정리를 해야 하는데…. 투쟁을 아무리 해도 콜텍 사장 박영호는 꿈적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과연 남은 시간(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머리만 아프다. 우리 3명의 생계도 걱정이지만 우리 지부인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도 너무 힘든 상황이라 걱정이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복수노조 때문에 갈등도 많고 해고자도 많다. 보쉬전장, 콘티넨탈, 유성기업, PLA 등 지부에 투쟁 사업장이 5개다. 지부가 대전에서 떨어져 있는 우리의 투쟁까지 신경 쓰는 게 벅차겠다는 생각이 든다.

잡생각 속에 다시 산들바람을 만든 직후 조합원들과 농사짓던 생각이 났다. 산길을 걸어서 대전 성북동, 옛날 농사를 지었던 곳에 가보았다. 농토는 그대로 있는데 사람이 사라지고 농작물을 재배하지 않는 그곳엔 잡초와 칡넝쿨이 무성하게 자랐다. 두렁들은 비와 눈에 망가져 있었다. 이렇게 사라져 가는가? 몇 년 동안 같이 하였던 '산들바람'인데…. 농부의 자식이라서 그런가? 다른 조합원들도 그럴까? 마음이 짠하다….

2015년 2월 26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이 농성은 정당한데... 사회에 대한 원망만 늘어요"

2009년 산들바람을 시작하며 야산을 고추밭으로 개간하던 모습
 2009년 산들바람을 시작하며 야산을 고추밭으로 개간하던 모습
ⓒ 산들바람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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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바람'은 콜텍 농성자들의 생계비 마련을 위해 콜텍의 해고자들이 운영해온 장류 사업의 이름이다(2009년~2014년, 대전 성북동에 위치한 작은 농가에서 생산). '산들바람'은 임재춘의 농성일기 16회에서도 밝혔듯 여러 가지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작년 가을부터 정리 수순에 들어갔고, 최근에 사업이 종결되었다(관련기사 : <해고자 살리던 '고추장', 올해는 담그지 못한 까닭>).

작년 6월 12일 대법원은 콜텍의 정리해고가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로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적 투쟁에서 모두 패소한 콜텍지회는 농성자들의 생계유지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산들바람을 정리하기로 했다. 산들바람의 정리는 콜텍의 농성자가 6명에서 3명으로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콜텍의 농성단은 인천 갈산동의 천막농성장을 유지하는 3인(김경봉, 임재춘, 이인근)으로 축소되었다.

농성자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남은 자들의 무게와 털어낸 자들의 허망함이 커지는 것이다. 최정진 산들바람 운영자는 그 아쉬움을 이렇게 전했다.

"끝을 봐야 하는데, 뭐라도 결말을 갖고 다 같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렇게 3명이 먼저 또 정리를 하고 남은 사람들을 지켜봐야 하는 게 무엇보다 마음에 걸려요. 다 같이 돌아가면 정말 좋을 텐데. 사회적으로 이 농성은 여전히 정당한데, 그걸 알면서도 농성자 개개인의 고통스러운 삶도 무시할 수 없고. 원망만 늘어요. 이 사회에 대해..."

고추장, 된장을 담그면서 지켜온 신념이나 희망이 '산들바람'이 사라졌다고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남은 사람들의 몫과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부채감은 분명 늘어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들바람을 정기적으로 구매했던 시민들 대부분이 산들바람의 장을 먹지 않고도 다달이 그 후원금을 납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콜트 콜텍의 해고자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들바람이 정리 수순을 본격적으로 밟아가기 시작할 때부터 임재춘 조합원은 농성에 관한 회의 섞인 말들을 자주하였다. 다른 이들과 사사로운 일에 날을 세우는 일도 많아졌다. 내 눈에 임재춘 조합원은 많이 변한 것처럼 보였다. 급기야 농성을 그만하겠다는 말까지 꺼내었다.

다른 농성자들은 그런 임재춘 조합원에게 참으로 할 말이 없다. 이미 작년 서울 고법 판결 패소 직후에 임재춘 조합원은 말없이 며칠 동안 농성장을 비운 바 있었고, 그때도 농성을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 그에게 다른 농성자들은 남아있는 대법원 판결을 기대하며 조금만 더 싸워보자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결국 꺾이고 말았다.

갈피 잃은 원망의 화살이 체념으로 돌아오니...

고추밭이었던 이곳은 산들바람의 운영 중단과 함께 다시 원래의 야산으로 돌아갔다.
 고추밭이었던 이곳은 산들바람의 운영 중단과 함께 다시 원래의 야산으로 돌아갔다.
ⓒ 산들바람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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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의 그 뛰어난 예지력으로 이 농성자들의 미래는 위기인지, 희망인지 알려준다면 냉철하게 판단을 해보겠다만…. 판사들은 경영자들의 위기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해고자들이 미래에 부닥칠 위기 따윈 점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원망스럽게도 위기는 나날이 늘어간다. 최정진 조합원은 임재춘 조합원의 넋두리에 해줄 말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고 했다.

"그만둔다고 하는데 그만두지 말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만두면 우리에게 뭐 버젓한 직장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미 나이는 들 대로 들었는데. 그만두어도 막막한 것이고, 또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끝내는 지금 내 심정처럼 재춘이도 그럴 텐데…."

농성자들은 농성 시작 후 8년 동안 빚을 쌓아왔다. 어떤 농성자는 생계고로 주변 지인들에게 얼마씩 빌려왔는데, 그 빚에 대한 이자는커녕 원금도 갚지 못하는 상황이다. 금전적인 부분만 있는 게 아니다. 특히 가족으로부터 떠나있으면서 쌓아온 심정적인 빚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농성장을 떠나는 사람이나 떠나보내는 사람이나 서로에게 희망을 줄 수 없어, 평생 안고 갈 빚을 마음속에 쌓는다. 그리고 그 빚들은 결국 체념이 된다.

임재춘 조합원은 올해 초 농성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내놓고도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경봉형이나 인근이나 둘이 어쩌나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날들이라고 한다. 천막에서 밥을 하고, 농성일기를 쓰고, 집회에 가고, 콜밴 공연을 하고…, 여전히 그들은 그렇게 싸우고 있지만 갈피 잃은 원망의 화살이 자꾸만 체념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태그:#농성일기,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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