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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아이들이 없어요. 이러다 학교가 없어질까 걱정이에요."

채선수씨가 막내딸 채샤영양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한숨을 섞어 내뱉은 말이다. 평생을 산골마을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산 그였다. 늦은 결혼으로 환갑의 나이에 초등학생 딸 셋을 키우는 아빠의 안타까운 마음이 기자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2015년 강원도에서 나홀로 입학한 학생이 있는 초등학교는 홍천군 동창초등학교와 모곡초등학교를 비롯하여 28개나 된다. 또한 양양군의 남애초등학교를 포함하여 19개 학교가 입학생이 없었다.

너무나 조용한 산골마을 입학식

6학년 채나영양, 5학년 채미영양, 1학년 채샤영양과 아버지와 어머니
 6학년 채나영양, 5학년 채미영양, 1학년 채샤영양과 아버지와 어머니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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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사영양의 입학식이 열리기 30분 전, 동창초등학교에 도착했다. 홍천 읍내에서 100리 길이고, 내촌면 소재지에서 20리 길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야 동창마을(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이 나타난다.

동창마을은 <아베의 가족> 등으로 동인문학상과 현대문학상 및 이상문학상 특별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 전상국 선생의 고향마을이다. 시집 <나는 사랑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최돈선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동창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기미만세운동의 진원지답게 태극기가 가로수마다 꽂혀 펄럭이고 있었다. 학교 앞에 도착하자, 입학식이 열리는 학교 분위기가 아니었다. 너무나 조용했다. 사람의 발자국이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교문에 덩그러니 붙어 있는 입학생 환영 플래카드마저도 외롭게 보였다.

"학교에서 가장 큰 행사가 졸업식이고, 입학식인데요. 올해는 졸업식도 혼자 했는데, 입학생도 혼자여서 아쉬움이 큽니다."

지난해 동창초등학교에 부임한 채병덕 교장은 너무나 조용한 입학식을 준비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내보였다. 마을에서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입학식이 열리는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밝은 얼굴과 웃음소리가 있었다. 애국가를 부르고, 선생님에게 인사하는 힘찬 목소리가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참 밝은 아이들이었다. 선배들은 이제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샤영양에게 입학을 축하하며, '좋은 선배가 되겠다'고 한 사람씩 나와 포옹을 해주었다. 샤영양의 언니인 미영(5학년), 나영(6학년)양도 이 학교에 다닌다.

아이 셋을 키우는 다문화가정 아빠의 한숨 소리

동창초등학교 채병덕 교장선생은 혼자 입학하는 채샤영양에게 운동화를 선물하며 건강하고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고 부모님께 약속했다
 동창초등학교 채병덕 교장선생은 혼자 입학하는 채샤영양에게 운동화를 선물하며 건강하고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고 부모님께 약속했다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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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영이가 넓은 학교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언니 오빠들과 함께 책도 읽으면서 건강하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겠습니다."

채병덕 교장이 샤영양에게 운동화를 선물하며 학부모에게 한 약속이었다. 아버지 채씨는 고맙다는 마음을 인사로 표현했다. 필리핀에서 강원도 홍천의 산골마을로 시집 와 아이 셋을 낳아 키우는 어머니도 눈시울을 적셨다.

동창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1명인 작은 학교이다. 1학년이 1명, 2학년은 2명, 3학년 학생은 없다. 4학년이 2명, 5학년이 4명, 6학년이 2명이다. 올해로 71회 졸업생(2100여 명)을 배출했다.

동창초등학교는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1970대까지만 해도 200여 명의 학생이 다니던 학교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 졸업생이 급감했고, 현재는 마을에 어린아이가 없어서 더 이상 입학할 학생이 없다.

혼자 입학하는 막내 딸 샤영양의 입학식에 참석하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혼자 입학하는 막내 딸 샤영양의 입학식에 참석하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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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러다 초등학교가 통폐합이 된다고 해도 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체념한 듯했다. 초등학교는 학교 버스가 운행되니 그래도 괜찮지만, 중학교 진학을 하면 등·하교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큰일이에요. 아이 셋이나 되는데, 내년이면 큰 딸이 버스를 타고 중학교도 다녀야 하는데, 교통편이 너무나 불편하거든요. 하루에 세 번 들어오는 버스 시간이 등·하교 시간과 안 맞거든요.

아침 버스는 등교 시간보다 너무 일찍 나가고, 저녁 버스는 하교 시간보다 너무 늦게 들어옵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두세 시간 동안 있을 곳이 없어요. 그래서 다들 읍내로 나가 살게 되는 것이죠."

농촌의 학교가 사라진다면...

동창초등학교 전교생과 선생님들
 동창초등학교 전교생과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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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전국의 학교에서 입학식을 했다. 특히 강원도 여기저기에서 특별한 입학식을 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책 읽는 입학식' '흥겨운 입학식' 그리고 입학생 모두에게 화분을 선물한 초등학교(오안초등학교)도 있었다. 화초처럼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화분을 선물했을 것이다.

그러나 산골마을 동창초등학교 입학식은 참 쓸쓸했다. 어쩌면 10년 뒤 아니, 5년 후면 또 하나의 학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 같아 안타까웠다. 전국 곳곳에 있는 농촌 마을에서 미래 세대가 사라지는 암담한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동창마을은 1919년 4월 3일 이순극, 이기선, 이여선, 전영균, 전기홍, 연의진, 김자희, 양도준 선생이 1000여 명의 군중을 모아 만세운동을 하다 일본군의 총을 맞고 순국한 곳이다.

그래서 국가보훈처는 매년 3월 1일 동창초등학교 옆에 있는 기미만세공원에서 동창만세운동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 산골마을에 어린아이가 없는 지금의 현실을, 만세운동을 하다 순국하신 8인의 열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동창초등학교 옆에 있는 기미만세공원 내 기미만세상
 동창초등학교 옆에 있는 기미만세공원 내 기미만세상
ⓒ 이종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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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나홀로입학생, #작은학교, #산골마을 초등학교, #다문화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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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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