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다큐 스페셜>의 '영산도 섬 소년-바다의 노래' 편

MBC <다큐 스페셜>의 '영산도 섬 소년-바다의 노래' 편 ⓒ MBC


첫 아이를 낳은 엄마는 아이를 누구보다 잘 키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육아 방식이 마땅치 않은 엄마는 책에서 육아의 길을 구하고자 했다. 그때 읽은 여러 육아 서적이 있지만, 지금도 기억이 남는 것 중 하나는 아이에게 심심해할 시간을 주라는 것이었다. 엄마들은 아이를 홀로 놔두면 왠지 미안해한다. 엄마가 뭐라도 아이에게 교육해야 할 것 같은 강박 관념까지 가진다. 하지만 그 육아 서적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아이가 심심해하면서 뒹굴 거리는 순간, 뇌세포는 가장 활성화된단다. 스스로 심심해하면서 머리를 굴리는 순간, 창조적인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저 세상 숱한 교육 이론 중 하나이겠지만, MBC <다큐 스페셜>의 '영산도 섬 소년-바다의 노래' 편을 보면 육아 서적의 지론이 떠오른다. 그리고 새삼 교육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교육이 무엇일까 반문하게 된다.

영산 분교 전교 1등 최바다는 외로움으로 크는 아이다. 남도 끝자락 흑산도에서도 배로 10여 분을 더 가야 하는 영산도의 영산 분교. 학생은 최바다 단 한 명이기 때문이다. 최바다가 전학을 가지 않고 버티는 영산 분교에는 최바다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한 명뿐이다. 국어와 수학을 가르치고 싶은 선생님과 체육이나 하고 싶은 학생은 오늘도 실랑이를 벌인다.

애초부터 영산분교에 이렇게 학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1회 졸업생인 영산 분교에 70여 명의 학생이 북적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흑산도에서 떨어진 외딴 섬 영산도의 사람들이 자꾸 떠나가고, 얼마 전 6학년 졸업생 3명이 졸업했다. 이를 마지막으로 영산 분교에는 4학년 최바다만이 남았다. 

섬에 닿는 여객선의 도선 작업을 돕고, 낚시하러 온 손님을 상대로 낚싯배를 운영하는 바다 아버지와 무릎이 아픈 할머니, 그리고 바다. 엄마는 6개월 된 젖먹이 바다를 두고 떠났다. 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어른들은 영산 분교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홀로 남은 바다가 안쓰럽다. 그런 어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바다는 "2년만 더 버티면 된다"고 의젓하게 말한다. 여기에는 오랫동안 외로움에 시달린 소년의 또 다른 속내도 숨어있다. 목포로 전학을 생각해 보라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를 자주 볼 수 없어 싫다"고 말하는 바다는 낯선 곳, 모르는 아이들 속에서 또 다시 외톨이가 되느니 여기서 홀로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한다. 하루에 라면을 5개씩 혼자 먹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에 몰두하는 바다에겐 가족과 넘을 수 없는 벽도 있지만, 하룻밤 다녀간 사진가 선생님과의 이별에서 소년의 외로움은 '눈에 물이 들어가듯이' 쉽게 허물어 진다.

이렇게 외로움이 깊은 소년의 유일한 친구는 선생님이다. 선생님이자, 그와 온종일 놀아주는 친구이자, 동네 어른들이 바다을 버릇없게 만든다고 잔소리를 할 만큼 외로운 바다의 모든 것을 헤아리며 받아주는 속깊은 어른이기도 하다. 군대 가기 전에 부임해 군대에 다녀와서도 다시 영산 분교에 자원한 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영산 분교에서 바다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선생님은 심지어 조기 입학생과 바다를 가르치다 격무에 시달려 고열로 쓰러지기도 한다. 대체 근무할 선생님이 없어 일주일 앞서 퇴원해야 하지만, 선생님은 선한 미소를 띠며 영산 분교로 돌아온다.

 지난 2일 방송된 MBC <다큐 스페셜>의 한 장면. 아들 최바다를 위한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일 방송된 MBC <다큐 스페셜>의 한 장면. 사진을 찍던 섬소년 최바다는 결국 사진전을 열게 됐다. ⓒ MBC


조기 교육을 앞세우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바다와 선생님의 놀이인지 공부인지 모를 교육 현장은 헷갈린다. 더구나 친구도 없는 단 한 명의 학생이라니! 기껏 신입생이라고 들어왔는데 다섯 학년이나 차이 나고, 이 아이를 가르치면 저 아이가 놀고 있는 콩가루 같은 교실은 하나라도 내 아이의 몫을 놓칠세라 눈을 번득이는 도시의 부모들 눈에는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다. 심지어 대체 근무할 교사가 없어서 선생님이 아픈 동안 학교는 자연 휴교다. 아마도 정상적인(?) 부모라면 전학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바다에게 목포로 가 공부하라는 바다 아버지는 자기보다도 바다가 더 낚시를 잘 한다며, 바다가 저렇게 바다를 좋아한다면 그냥 이렇게 이곳 영산도에서 살도록 둘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바다에게 목포로 나갈 것을 권하다가도 바다가 머문다니 다시 홀로 학교에 남긴다. 영산 분교의 소풍날이면 바다가 외로울까봐 온동네 어른들이 바다와 함께 소풍을 간다. 조촐한 동네 잔치가 되는 것이다. 바다를 보살피는 정상호 선생님이 방학을 맞아 뭍으로 갈라 치면 또 한 번 동네 잔치가 벌어진다. 

친구는 없지만 함께 소풍을 가는 동네 어른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바다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선생님. 하지만 그럼에도 엄마도, 친구도 없어 외로운 바다는 카메라가 지켜보는 2년 동안 성숙해 간다. 애초에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함께 공을 찰 아이들이 없어 축구를 포기하고 대신 카메라를 벗삼은 바다는 도시의 아이들은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영산도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얼굴과 영산도의 섬세한 자연을 배운다. 노인만 그득한 영산도에서 유일한 초등학생인 바다는 도회로 공부하러 간 동네 누나의 친절을 기억하고, 그 집 할머니를 도우면서 자신들을 가르치느라 제대로 아프지도 못한 선생님의 마음의 헤아리며 철이 든다. 카메라가 지켜보는 2년 동안 혼자 라면을 먹으며 게임에 몰두하던 철부지 소년은 어느새 어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젓한 소년으로, 공부를 땡땡이 치던 소년은 혼자 영산도의 자연을 시정 넘치게 담는 꼬마 사진사로 성장한다.

컴퓨터를 공부하다 보면 하드에 가급적이면 적은 용량을 담아야 컴퓨터가 원활하게 돌아가 오랫동안 고장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배운다. 우리의 교육은 컴퓨터 만도 못하다. 잔뜩 지식을 찔러 넣어 과부하가 걸린 아이를 지향한다. 바다는 아주 깨끗해서 언제라도 무한한 기능을 펼칠 수 있는 컴퓨터와도 같다. 도시의 교육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회적 동물 본연의 처지조차 저버린 채 외로움 속에서 자란다. 하지만 그 외로움조차도 그를 따스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어른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바다처럼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영산도 섬 소년-바다의 노래'는 증명해 낸다. 2년에 걸친 바다의 성숙만으로도 홀로 영산 분교를 지키는 선생님의 보람은 충분하다. 비록 더 좋은 근무 환경에서 더 많은 아이들의 선생님 노릇을 할 수는 없지만, 그에게서 단 한 마리의 양을 구하러 떠난 양치기의 사명을 찾을 수 있다.

영산도 홍보 책자에 실려 어떤 훌륭한 사진가의 작품이냐는 질문을 받을 수준에 이른 바다의 사진 작품 전시를 끝으로 마무리된 섬소년 바다의 이야기. 아들에게 사진전을 선물한 아버지는 사진에 대한 바다의 추억이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저 남도 끝자락 영산분교 외로운 소년 바다와 그를 지켜보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교육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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