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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이 있다. 다양성 영화를 선호하는데 스크린에는 다수의 관객들이 좋아하는 상업영화만으로 가득 차 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려면 조조나 심야 시간을 이용하거나 몇 곳 없는 예술 영화 전용 극장으로 가야 한다.

이런 상황은 현행 우리나라 선거제도인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양당체제)와 비슷하다. 한 지역구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1명만 국회의원이 되는 방식인데 이렇게 되면 2등, 3등이 득표한 표, 즉 당선에 기여하지 못한 모든 표는 사표(死票)가 된다. 지역구에서 물적, 인적 자원을 더 많이 동원해 최다 득표자를 많이 배출할 수 있는 거대 정당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정당보다 원내 진입이 쉬워지는 것이다.

영화관에서 예매율이나 좌석점유율을 근거로 다양한 영화 취향을 배려하지 않는 것처럼 단순다득표를 근거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거대 정당에 의해 전개되는 정치 과정은 계층별 유권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배제시키고 양당제는 고착화 된다.

사회에 억울한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고착화 된 거대 양당 체제는 영/호남이라는 지역주의, 진영논리, 서로간의 이해관계에 빠져서 소모적인 입씨름만 하고 있다. 지금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대표되는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는 통치를 위임해 준 유권자들을 위해 정치계급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폐해이다.

그래서 민의 반영에 뛰어난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개편이 필요하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1. 지역구 크기를 넓힌 후 한 지역구에서 여러 명을 뽑는 중대 선거구제(1등뿐만 아니라 2등, 3등까지 당선) 2. 정당만 뽑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 대표를 뽑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네덜란드, 북유럽 국가들이 채택), 3. 지역구 의원과 지지하는 정당에 각각 1표씩 1인 2표를 행사할 수 있는 혼합형 비례대표제(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이다.

이와 같은 선거제도는 사표를 사라지게 하고 지역주의 균열을 가져오며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들의 출현을 가능케 한다는 장점을 가진다. 즉 노동자, 실업자, 성소수자 등등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정당을 찾아 투표하면 그동안 정치과정에서 의석수, 발언권이 부족했던 제3당 혹은 신생 정당들이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받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이익을 더 많이 관철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합의제 민주주의는 다당제가 기본이기 때문에 기존 거대정당들이 국회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할 수 없는 구조가 되면 각 정당들 간 대화와 타협이 제도화되기 때문이다.

이 제도들 역시 단점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당제 형태가 진보 진영에서만 나타나고 있고 지역 대표성이 보장되지 않아 해당 지역구의 사안들에 대한 비례대표의 전문성이 떨어 질 수 있다. 현재의 정의당, 녹색당 같은 소수 정당들 역시 시민의 지지를 확고하게 받는 계기를 만들지 못하면 오히려 거대 정당들이 늘어난 비례의석을 차지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들을 뒤로 하고서라도 선거제도는 개편되어야 한다. 그간 거대 양당이 수많은 민의들을 배제하고 땅바닥으로 내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일례로 세월호 특별법을 들 수 있다. 이 법안의 협상과정은 새누리, 새정치 양당이 독점했다. 주요 쟁점 법안들은 국회 교섭단체가 협상을 하는데 20명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 또는 소수 정당끼리 20명 이상의 단체를 만들면 교섭단체의 지위를 얻어 협상에 나설 수 있다. 교섭단체는 발언권, 보조금 등등에서 우선권을 갖는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거대 양당은 항상 교섭단체가 되고 소수정당은 비교섭단체에 머물러 제3의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소수정당들이 반영코자하는 민의는 철저하게 배제되는 것이다.

합의제 민주주의 과정이라면 새정치와 정의당이 연대하여 교섭단체에서 세월호 특별법에 수사/기소권을 끝까지 주장할 수 있고 그렇다면 협상 결과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수정당의 대표성이 확대되거나 교섭단체 기준을 20명보다 낮추거나 각 정당 지도부로 구성되는 국회운영위원회가 주요 쟁점 법안을 협상하는 방식으로의 개편도 필요하다.

그동안은 고성장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거대 양당의 지나친 폐해를 모른 척 지나쳤고 기존의 선거제도가 존속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성장 시대는 끝났다.

사람들은 부의 재분배와 복지를 원한다. 합의제 민주주의를 시도하고 있는 국가들(독일, 네덜란드, 북유럽 등등)은 성공적인 복지국가로 꼽힌다. 다양한 이념과 가치를 지닌 정당들의 타협과 협의 과정에선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집어 삼킬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소수정당 역시 다당제가 올바르게 작동되게 하려면 확고한 이념과 가치체계를 형성하고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지지율을 상승시켜 유력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항상 군중이 잡을 수 있는 보이는 손이 되어야 한다. 소수정당들이 자신들에게 통치권을 위임해주는 시민들을 유의미하게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을 심도있게 고려하고 실행해야 합의제 민주주의는 꽃을 피울 수 있다.

다당제가 완전무결한 선거제도는 아니지만 암울한 한국 정치의 변화를 위해, 정치혐오자로 돌아선 다수의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선거제도의 개편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또한 국민들에게 합의제 민주주의의 장점을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혹자는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한다. 아니다. 민주주의는 살아있다. 정치가 죽은 것이다. 탐욕에 찌든 소수 엘리트 정치계급이 죽였고 이들의 행태가 국민들의 정치혐오를 불러와 죽였다.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다시 정치를 살리자 그래서 살아있는 민주주의에 꽃을 피우자.


태그:#정치, #선거제도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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