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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생활' 황규숙(67) 선생이 캄보디아에 떴다.

2012년 8월 정년퇴임 뒤에도 기간제 교사로 2014년 2월까지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가 그해 4월 8일 캄보디아로 건너가 또 다른 제자들을 키워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캄보디아 깜뽕스쁘주 뚜얼끌렁 제2외국어학교(현지에서는 무상학교라고 부른다) 교장 황규숙. 국내에서는 퇴임할 때까지 평교사였던 그의 교장 승진(?)은 명예나 지위 향상이 아니라 더 많은 사명감과 책무, 더 나아가 고생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교장은 절대 못한다고 했죠. 그런데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변변치 못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니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더군요."

황규숙 교장이 현지 학교 아이를 안고 있다.
 황규숙 교장이 현지 학교 아이를 안고 있다.
ⓒ 황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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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학교의 건축비 마련을 위해 지난 2월 5일부터 3월 4일까지 국내에 머물며 홍보활동을 하고 있는 황 교장은 2월 23일 기자와 가진 인터뷰 내내 캄보디아 학교와 나눔재단 '월드채널'에 대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풀어냈다. 강행군으로 입술이 부르트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눈빛과 목소리에서 강한 열정이 느껴졌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40㎞ 떨어진 시골, 차로 2시간 30분을 가야 할 만큼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데다 빗물을 받아먹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서 교회창고를 빌려 북쪽과 동쪽 벽만 나무로 겨우 가린 교실에서 아이들은 영어와 한국어, 음악, 미술, 체육을 배운다.

현지인 교사 2명의 보수와 교실 임대비는 월드채널에서 지원받지만, 황 교장의 체류비는 모두 자비로 감당하고 있다. 이곳 학교와 프놈펜 소재 제1외국어학교에서 음악과 미술,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황 교장은 생활비를 아껴 아이들에게 필요한 학용품이나 운동기구들을 마련해 줄 때가 많다.

"남은 것은 나눔뿐"

"우리나라에서는 버려지는 것들이 거기선 너무 소중합니다. 모든 물자가 부족하죠. 저도 처음 갔을 때는 아이들이 왜 씻지도 못하고 옷도 빨아입지 않나 했는데, 생각해 보세요. 먹을 물도 없는데 빨래할 물이 있을까요."

글을 읽고 쓸 줄만 알아도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 생계를 위해 도시로, 위험한 노동으로 내몰리는 아이들.  현지 사정과 그곳 제자들의 이야기를 하며, 황 교장의 눈자위가 자꾸 붉어진다.

교실의 외부모습. 서쪽과 동쪽은 그대로 뚫려있다.
 교실의 외부모습. 서쪽과 동쪽은 그대로 뚫려있다.
ⓒ 황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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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창고를 빌려 판자로 막은 교실이지만 아이들의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교회 창고를 빌려 판자로 막은 교실이지만 아이들의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 황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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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한 노년이 보장된 퇴직 교원이 굳이 1년내 더운 열대의 나라에서 고생을 하게 된 데는 모태신앙인 기독교와 나눔을 실천하는 가풍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2006년 친정 어머니 상례를 치른 뒤, 친정 아버지 황보성(94)옹과 6남매는 부의금으로 미얀마 양곤에 어린이집을 세웠다. 지금까지 교사월급과 마을 도로포장, 아이들의 상급학교 진학 후원 등을 계속해 오고 있는 이 집안에서는 황 교장의 조카들까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누구나 매월 후원금을 내고, 승진 등 경사스런 일이 있는 사람은 특별 후원금을 내는 게 당연한 분위기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 역시 2009년 남편(고 모종준 교장) 장례 뒤 부의금으로 3자녀와 뜻을 모아 캄보디아 깜뽕츠랑에 교회와 어린이집을 세웠다. 지금의 교육기부활동은 그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님 은혜, 하나님 뜻으로 평생 행복하게 살았으니 저는 빚진 자입니다. 이제 갚아야죠. 또 나의 성장을 위해 60 평생 살았으니, 남은 것은 나눔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황 교장은 종교를 떠나 모든 이들과의 연대와 소통을 강조하기도 한다.

"가서 일을 하다 보니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더 느껴요. 더불어, 함께, 꿈과 희망이 있는 세상에 동행해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도구가 될 뿐이지요."

지난해 그가 캄보디아로 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인들이 너도나도 뜻을 모아 피아노와 드럼, 기타, 키보드 등을 후원했다. 이 악기들은 현지 아이들의 음악수업과 특기교육에 소중하게 쓰이고 있다.

그가 재직했던 금오초등학교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은 지난해 12월 바자회를 열고 월드채널을 통해 성금 300만원을 황 교장의 학교에 지정기탁했다. 이 돈은 'I have a dream(나는 꿈이 있습니다)' 라는 제목의 쉼터를 만드는 데 쓰였다. 쉼터는 도서관과 체험활동장으로 꾸며졌는데, 입구에는 예산금오초등학교의 이름이 새겨진 푯말을 붙여 두 나라 어린이들의 인연을 보여주고 있다.

"예산에서 보내온 성금으로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울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너무 너무 자랑스럽죠. 책은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는 매개가 되니, 도서관만큼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 있을까요?"

"기쁨 함께 누렸으면"

10개월 동안 캄보디아에 체류하면서도 세계적 관광지인 앙코르왓에 가보지 못했다는 황 교장.

"거기선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아플 새가 없을 정도예요. 하지만 작은 나눔으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느니 힘들기 보다 보람이 더 큽니다. 이 기쁨을 더 많은 예산분들이 함께 누리면 좋겠어요."

금오초(충남 예산군)에서 보낸 지정후원금으로 조성한 도서관 개관식이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는 한글과 영어로 예산 금오초의 기증사실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다.
 금오초(충남 예산군)에서 보낸 지정후원금으로 조성한 도서관 개관식이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는 한글과 영어로 예산 금오초의 기증사실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다.
ⓒ 황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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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머무는 짧은 시간동안 옛 동료와 제자들을 만나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세상을 알리고, 월드채널 본부를 오가며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그의 현재 관심사는 오직 한가지 뿐인 듯하다.

주제를 바꿔도 이야기는 어느새 캄보디아 학교에 가 있다.

"캄보디아 정부의 공식집계에 따르면 시골마을 문맹률이 50%, 실제 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은 채 20%도 안 되며, 중·고등학교 진학률은 10%안쪽이라고 합니다. 경제 수준은 우리나라 1960년대보다 더 못한 상황이지요. 그 안에서 아이들이 위험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누가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이 아이들의 아름다운 동반자가 되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올해 67세의 황 교장이 현장에서 은퇴하는 날은 언제가 될까? 황 교장은 4일 다시 캄보디아로 떠난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후원, #캄보디아 후원, #황규숙,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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