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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의 기본이 되는 단위는 가족이다. 이것이 모여 촌락이 생겼고 공동체문화가 시작됐다. 공동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좋은 우물이 필요했다. 공동 우물은 청결하고 효율적으로 관리돼야 했기에 신성성이 부여됐고 샘제라는 의식으로 전해내려 왔을 것이다. 정주제(井主祭), 용왕제(龍王祭), 유황제라 이르기도 했다.

시대가 변하고 생활이 개선되며 공동 우물이 사라졌다. 집집마다 펌프를 설치한 이후에도 샘제 풍습은 일부 농촌가정에서 유지해 오다가 상수도가 보급되며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2리 원성굴에서 정월이면 어김없이 마을 샘제를 지낸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예산군 내에서 유일한 데다 전국적으로도 보기드문 풍습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신암면지(2008년 발간)에조차 소개돼 있지 않다. 지난 2월 21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된 이 마을 샘제에 함께했다.... 기자말

박승규 제관이 샘제를 올리는 동안 주민들이 마을과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박승규 제관이 샘제를 올리는 동안 주민들이 마을과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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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원성굴 마을 우물이 샘제를 잡순다는 정월초사흘(양력 2월 21일)이다. 정월 들어 보름 안쪽의 '용날'을 택일해 제를 올린다고 한다. 제관인 박승규(76)옹이 아침 일찍 경로당에 나와 제물을 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조금 있으니 마을사람들이 샘 주변으로 하나둘씩 모여든다.

샘은 마을 한복판에 용의 기운을 담고 있다. 사방 3미터 가까이 되는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샘턱까지 물이 잘름잘름하다.

샘제를 올리는 때는 늦은 밤이지만 아침일찍부터 샘 청소를 하고, 황토를 뿌리고, 할 일이 많다. 마을 아주머니들까지 나서 샘 주변을 말끔하게 치우고 나니 마을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 원종묵(50)씨가 양수기를 단 경운기를 끌고 샘으로 들어온다. 샘물을 바닥까지 품어내고 깨끗하게 청소를 하기 위해서다.

"양수기가 생기기 전엔 나무로 만든 두레박으로 장정들이 번갈아 가며 샘을 퍼냈는데 지금은 많이 편해졌어."

마을 어르신들이 한마다씩 하며 익숙한 솜씨로 양수기를 연결한다. 샘제의 유래에 대해 박승규 제관은 "언제부터 지냈는지는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 우리 선대들조차 몰렀어. 하지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해마다 지내왔지. 6·25 난리가 났을 때도 지냈으니까…"라고 말한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 샘이여. 더구나 샘턱이 낮고 깊이가 두질(어른 키의 두배)이 넘는데도 사고가 한 번도 나질 않았다니까."
"전에는 샘제를 지내고 나서 먼저 물을 떠가면 그 집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해서 다투어 가면서 물을 떠갔어. 그리고 정월보름날이나 칠석날 지신밟기를 할 때면 늘상 샘에서부터 풍물을 치기 시작했지."

마을사람들은 너도나도 샘 자랑을 한다. 마을내 상수도가 들어오고부터 샘물을 식수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푸성귀나 김장배추를 씻을 때는 이 샘을 이용한다.

"수돗물로 씻으면 맛이 없어. 옛날에는 아침에 나와서 보리쌀 씻는데, 늦게 오면 앞자리에 앉을 수가 없어 한참을 기다렸지. 한 겨울에도 손이 시렵지 않고 물이 미적지근혀."
"고추니 마늘이니 양념거리도 여기 와서 씻고 빻우고, 그저 빨래도 하고 이웃소식도 듣고…. 이 샘없이 살 수가 없었어."

선장에서 시집왔다는 정인옥(80) 할머니와 원성굴 토박이인 이종예(78) 할머니가 고생많았던 시집살이를 기억해 낸다. 실제로 샘터 가장자리에는 지금도 돌절구통과 맷돌 아랫부분이 나란히 박혀 있어 샘이 원성굴 아낙들의 삶터였음을 짐작케 한다.

잡신과 부정이 근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동네 어귀에 황토를 뿌리고 있다.
 잡신과 부정이 근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동네 어귀에 황토를 뿌리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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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른들이 마당 한켠에 앉아 금줄로 쓰일 왼새끼줄을 꼬고 있다.
 마을 어른들이 마당 한켠에 앉아 금줄로 쓰일 왼새끼줄을 꼬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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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기로 샘물을 품어내 중간정도까지 줄어들자 대빗자루로 안쪽까지 깨끗히 청소를 하고 있다.
 양수기로 샘물을 품어내 중간정도까지 줄어들자 대빗자루로 안쪽까지 깨끗히 청소를 하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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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 엔진소리가 힘차게 돌더니 양수기에서 샘물이 '콸콸' 쏟아진다. 환갑·칠순이 지났지만 마을 주축 연령대인 박승노, 권영식, 신광현씨가 일륜차로 황토를 퍼와 마을 어귀부터 한삽씩 떠놓으니, 마당 한켠에서 이종길(86), 김용태(82) 어르신과 제관이 금줄로 쓰일 오여사내끼(왼새끼줄)를 꼬고 있다.

점심 때가 가까워서야 모든 준비가 끝난다. 샘물이 바닥을 드러내자 대빗자루를 들고 들어가 개운하게 청소를 끝낸다. 사방에 금줄을 걸고 옻나무 가지를 매단다. 제를 올리기 전까지 행여 부정탄 사람의 접근을 금하기 위함이다. 이제 샘 안에 새물이 한가득 차오르도록 기다리면 된다.

오늘 제를 올리는 시간은 오후 8시다. 샘제는 강과 하천, 호수, 바다를 다스리며 호풍환우를 관장한다는 용왕신을 위하는 제사다. 원성굴 샘제는 한동안 용궁리에 사는 박수무당인 원아무개씨에게 맡겨 제의식을 올렸는데, 그가 죽은 뒤로는 마을 전 이장이었던 박승규씨가 줄곧 제관을 맡아오고 있다.

박승규 제관이 축문을 읽고 있다.
 박승규 제관이 축문을 읽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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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의 손에서 소원을 담은 소지가 타오르고 있다.
 어머니들의 손에서 소원을 담은 소지가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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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내려앉자 샘 바닥에 제상이 놓인다. 떡시루와 쌀, 돼지머리, 사과, 배, 밤 등 제물이 정갈하게 차려진다. 사방에 촛불이 켜지고 한켠에서는 불을 환히 밝히기 위해 짚불을 놓는다. 전기불이 있어도 옛날부터 줄곧 해오던 것이어서 짚불을 놔 사위를 밝힌단다.

봉청남무사해용왕대신 지위(奉請?無四海龍王大神之位)라고 쓴 지방이 붙고, 제관은 상 앞에 꿇어앉아 축문을 읊조린다. "원성굴 마을주민 일동은 사해용왕대신 전에 삼가 발원하오니 을미년 한해에도 가정과 타지에 나가있는 가족들까지 무사와 건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제관이 발원을 마치자 주민들이 하나둘씩 소지를 하며 마을의 안녕과 가족의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원성굴에 사람들이 모여 처음 마을을 이루고 살던 수천년 전에도 마을의 안녕과 가족의 무병장수를 비는 기원의 내용은 같았을 것이다.

오늘 아무탈없이 무사히 샘제를 마친 주민들은 경로당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떡과 술을 나누며 밤이 이슥하도록 얘기꽃을 피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샘제, #용왕제, #우물, #풍습,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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