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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고정 언론칼럼으로 매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게재됩니다.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면서도 한국사회의 언론민주화를 위한 민언련 활동에 품을 내주신 분들이 '시시비비' 필진으로 나섰습니다.

앞으로 김동민(한양대 겸임교수), 김성원(민언련 이사), 김수정(민언련 정책위원), 김언경(민언련 사무처장), 김은규(우석대 교수), 김택수(법무법인 정세 변호사), 박석운(민언련 공동대표), 서명준(언론학 박사), 안성일(MBC 전 논설위원), 엄주웅(전 방통심의위원), 이기범(민언련 웹진기획위원), 이병남(언론학 박사), 이용마(MBC 기자), 정연우(세명대 교수), 김은규(우석대 교수)의 글로 여러분과 소통하겠습니다. - 기자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은 최고 권력기관들의 합작품

지난 2009년 3월 31일, <연합뉴스>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 소식을 전하면서 처음으로 명품시계에 대해 언급을 했다. 그리고 22일 뒤, KBS가 9시 뉴스를 통해 1억 원대의 명품시계 2개가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에게 전달되었다는 소식을 검찰을 인용해 단독 보도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금품수수 증거를 찾지 못하던 상황에서 터진 명품시계 전달설은 호재였다. 언론들의 선정적인 후속보도가 이어지면서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뒷받침했고, 동시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도덕성에는 치명상을 입히기 시작했다.

특히 이로부터 다시 20여 일이 지난 5월 13일, SBS는 권양숙 여사가 1억 원대의 명품시계 2개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단독보도를 했다. 당시 SBS는 앵커 멘트를 통해 "이 자체가 본질은 아닌 듯"하다며 검찰수사와 별도의 부수적인 보도임을 시인했다. 하지만 이 보도는 큰 파문을 일으켰다. KBS를 비롯해 다수 언론이 "시계를 찾으러 논두렁에 가자"는 누리꾼들 사이의 논란을 보도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도덕성을 먹칠하는 데 앞장섰고, 노 전 대통령은 10여 일 뒤 투신자살을 선택했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에 대한 망신주기를 통해 투신을 유도하는 과정에 이명박 정권이 깊숙이 개입했음이 드러났다. 수사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의 폭로가 의미하는 바이다. 검찰은 '공익'이라는 미명하에 피의사실을 매일매일 언론에 공표했을 뿐만 아니라, 국정원에도 매우 자세히 알렸다.

심지어 언론에 공표할 내용을 두고 국정원과 검찰이 협의했고, 이 과정에 의견이 상충하자 국정원이 스스로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다. 물론 검찰이 국정원에 정보를 제공하면서 청와대를 제외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사실은 삼척동자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이 청와대에 직접 정보를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국정원까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요컨대 검찰과 국정원, 청와대 등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기관들이 언론을 이용해 정치공작을 벌였다. 그리고 명예를 생명처럼 중시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후속보도의 외면은 또 다른 범죄

<경향신문> 2월 25일 '김용민의 그림마당' 스크랩
 <경향신문> 2월 25일 '김용민의 그림마당' 스크랩
ⓒ 김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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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이인규 전 부장의 말처럼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린 것이란 말이 오로지 국정원의 창작품이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언론은 보도 이전에 검찰에 충분히 사실 확인을 해야 했다. 최초 보도를 한 SBS의 기사를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술을 인용하면서도 누구로부터 확인했는지 최소한의 정보가 없다.

이 말을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간접적으로 들었다면 수사 당사자인 검찰에 반드시 확인을 한 뒤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야 했지만, 그 기본 과정이 빠져 있다. 다른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전직 대통령을 겨누고, "본질은 아닌" 보도를 베끼면서, 사실관계조차 정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정적인 기사를 남발했다. 그 결과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여론을 호도했다.

언론이 이처럼 불분명한 사실을 갖고 여론을 조작한 배경에는 권력에 대한 '눈치 보기'가 작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권이 이미 교체되어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된 데다, 현직 정부에서 구속까지 추진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사실관계가 일부 틀려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지는 않았을까. 더욱이 그 출처가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정원이라면 정권으로부터 충분히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계산은 아직도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논두렁 시계 보도를 앞장서서 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했던 언론은 이인규 전 부장의 폭로에 대해 좀처럼 다루지 않고 있다. 특히 이 사실을 최초 보도한 SBS, 이 사건을 확대 재생산한 <조선일보>와 KBS 등은 사과는커녕 이인규 전 부장의 발언과 그 후 이어지고 있는 야당의 강도 높은 비판 및 청문회 추진 등 관련 소식을 메인 뉴스에서 단 한 번도 다루지 않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 등의 정치공작에 대해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정부 및 여당에 대해 비판을 하고 진실규명을 촉구해야 할 입장에서 오히려 이들과 동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 및 여당과 언론이 공범 의식 하에 제2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제 기능을 상실한 감시견

국정원은 김대중 정부 이후 대국민 사찰기관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정치공작 기관으로 회귀했음이 거듭 확인되었다. 그 최고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불법선거운동일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감시의 역할(Watch Dog)을 해야 할 언론은 제 기능을 상실하고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또 다른 연쇄 범죄가 우려되는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용마 기자는 MBC 기자입니다. 이 글은 민언련 홈페이지(www.ccdm.or.kr)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시비비, #이용마, #국정원, #정치공작, #언론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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