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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자비의 손이 나를 기다리네!

몇해 전 아내와 단 둘이서 배낭을 메고 인도여행을 하다가 델리 빠하르간지(배낭여행자들의 숙소가 밀집된 거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어느 여행자로부터 인도여행에 대해서 말을 한 적이 들은 적이 있다.

"인도를 처음 갔다 온 사람은 매일 인도 이야기만 하고, 세 번을 다녀오면 책을 쓰고도 남을 만큼 인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고, 열 번을 다녀오면 그만 할 말을 잊고 입을 다문다."

이 말은 맞는 말이다. 나도 처음 인도 땅을 밟고 나서 매일 인도이야기를 떠들어 댔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인도여행을 다섯 번째로 오는 셈이지만, 도대체 인도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만다.

여행기를 써보려고 노트북을 열어보지만, 그냥 멍하게 앉아 있다가 노트북을 끄기 일쑤다. 내 머리는 혼돈 속을 헤매며 그야말로 먹통이 되고 만다. 아무것도 모르는 텅 빈 먹통 머리로 과연 인도여행에 대하여 무엇을 쓸 것인가? 그럼에도 나는 글쓰기의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다시 노트북을 열고 사진을 뒤척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 여행을 설계하고, 실행을 하며, 돌아와서는 사진을 정리하며 여행기를 쓰는 버릇이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그도그라를 이륙한 비행기는 2시간이 지난 오후 4시에 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빙빙 돌아가는 컨베이어에서 짐을 찾았다. 녹색게이트를 따라 세관을 통과하고 나니 벽에 부처님의 수인(手印, mudrā)이 퍽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수인이란 부처나 보살이 스스로 깨달아 몸에 지니고 있는 진리나 서원(誓願)을 밖으로 표시하기 위하여 열 손가락으로 짓는 손 모양을 말한다.

델리공항 벽에 설치된 부처님 수인
 델리공항 벽에 설치된 부처님 수인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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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공항의 금빛 찬란한 벽에 설치된 부처님의 수인은 대부분 통인(자비를 베푸는 의미)과 아미타정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중생을 교화하여 구제하려는 수인은 세계 어느 공항에서도 볼 수 없는, 오직 인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설치물이다. 이 차제에 부처님의 수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여행이란 보고 듣는 것뿐만이 아니라 여행지에 대한 문화와 종교도 이해를 해야 만이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인은 원래 불전도(佛傳圖)에 등장하는 석가의 손 모양에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불의 경우에는 그림처럼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 선정인(禪定印), 항마인(降魔印), 전법륜인(轉法輪印)의 다섯 가지 수인을 주로 취하고 있다.

대승불교의 여러 부처들은 대체로 이를 따랐으나 아미타불은 아미타정인 등 구품왕생(九品往生)과 관련하여 아홉 가지의 인을 새롭게 만들었다. 특히 밀교에서는 수인을 강조하여 대일여래(大日如來-비로자나불)의 지권인(智拳印)과 보살, 명왕, 천부 등 여러 종류의 다양한 손 모습이 나오게 되었다. 수인은 불상 종류에 따라 교리적인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상의 성격과 명칭을 분명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아미타정인은 다시 상생인, 중생인, 하생인으로 구분된다. 즉 엄지와 닿는 손가락에 따라 중생을 상품, 중품, 하품으로 구분하고 있다. 엄지와 둘째손가락이 맞대고 있으면 상품인, 셋째 손가락은 중품인, 넷째 손가락에 닿아 있을 때는 하품인이 된다. 과연 나는 어느 단계의 중생일까? 아마 최하위 품에 속하는 속인이리라.

아미타정인의 중품하생 수인
 아미타정인의 중품하생 수인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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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손 모양 하나에도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부처님의 각오가 담겨 있는 수인은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염화시중의 미소를 대하는 느낌이랄까? 잠시 부처님 수인에 눈을 팔던 우리 일행은 곧 인도라는 현실로 돌아왔다.

델리, 인간세계의 블랙홀 속으로...

"지금부터 인간의 숲으로 들어가 생활을 하려면 당장 루피가 있어야 합니다. 각자 100달러씩을 저에게 주세요."
"그렇군요. 우선 쓸 돈을 좀 바꿔야겠지요?"
"공항환전소가 환율이 좀 비싸긴 하지만… 밖에 나가면 인파에 밀려 정신이 없어질 테고, 환전소를 찾아가기도 복잡해요. 그러니 우선 며칠 쓸 공금을 좀 환전해야 합니다. 환전하는 동안 세 분은 먼저 밖에 나가 기다리세요. 아마 누군가 피켓을 들고 우리를 픽업하러 온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지요. 늦지 않게 빨랑 오세요."
"오케이!"

세 여인은 사람의 눈에 띠지 않은 곳에서 각자 100달러짜리 지폐를 한 장씩 전대에서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괜히 돈 주머니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 타깃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400달러를 루피로 바꾸기 위해 공항 환전소로 갔다. 그러나 환전소에 잔돈이 없어 한 참을 기다려야 했다. 마치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환전소 직원이 잔돈을 가지러 은행으로 갔다가 느릿느릿 걸어왔다. 나는 바쁜데 그는 바쁠 것이 없다. 여긴 인도니까 이해해야 한다.

"이거 손님에게만 특별히 서비스를 해드리는 겁니다."
"아하,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는 100루피 짜리 지폐다발을 나에게 내밀며 씩 웃었다. 400달러를 100루피짜리로 바꾸고 나니 22700루피나 되어 부피가 꽤 크다. 하지만 인도에서 쓸 돈은 반드시 잔돈이 필요하다. 큰돈은 위조 문제도 있고, 잘 거슬러 주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환전하고 밖으로 나가니 먼저 나간 세 여인이 손을 흔들며 환영을 해준다. 그 세 여인 가운데 한 인도 남자가 너스레웃음을 지으며 내 이름이 새겨진 피켓을 들고 있었다. 사람이 좋아 보이는 따뜻한 인상이다. 좌우간 이렇게 환영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반갑다. 네모난 얼굴이 믿음이 가는 인상이다. 사기를 칠 그런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배낭여행을 많이 하다보면 관상으로도 사람의 성격을 대강 파악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를 따라 플랫폼으로 나가자 우리는 곧 인간의 홍수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아니 인간세계의 블랙홀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예측불허! 하고 많은 여행을 다녀 보았지만, 인도만큼 '예측불허'라는 변수를 느껴보지는 못했다. 택시 운전사들이 자기 택시를 타라고 손을 잡아끈다.

"미스터, 한국 사람이지요? 제가 싸고 깨끗한 호텔을 소개해 드리지요."
"우린 이미 호텔을 예약했어요."
"그럼 그 호텔까지 싸게 모셔다 드릴게요."
"자동차도 이미 예약이 되어 있소."
"얼마에 예약했지요? 내가 그 차보다 더 싼값으로 모셔다 드릴게요."

그는 끈질기게 나를 따라오며 자기 차를 타라고 하고, 나는 애써 거절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델리에 도착할 때마다 나는 파도처럼 물결치는 사람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델리는 다른 도시보다 더 덥다. 그것은 사람의 체온이 공기를 덥혀서일 게다. 뭔가 알 수 없는 인도 특유의 냄새가 확 풍겨온다. 끈끈한 땀 냄새, 메스껍고 쾌쾌한 냄새, 사람 냄새…. 온갖 알 수 없는 냄새가 열대의 후끈한 열기를 타고 온 몸을 확 덮친다.

델리공항의 붐비는 인파
 델리공항의 붐비는 인파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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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정말 찰라님이 인간의 숲이라고 한 표현을 이해할 것 같네요."

H박사는 이번에 처음으로 인도 땅을 밟는다고 한다. 그러니 구름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당연히 놀랄 수 밖에 없다. 인도 땅을 밟은 느낌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황당함, 예측불허, 믿을 수 없는, 낯 설음, 상상초월, 문명 쇼크…. 인도에 도착하면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몰려온다. 그러나 그 특유한 느낌은 인도에 도착하여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인도는 현재도 22개의 언어, 400개의 방언 그리고  5000개가 넘는 카스트 공동체가 존재하는 나라다. 카스트 제도를 법적으로는 폐지를 해서 금하고 있지만 몇 천년 동안 내려온 관습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3300만 명의 신을 모시고 있으며, 놀랍게도 세계 제2의 이슬람 국가이기도 하다. 전 세계이슬람 인구의 절반이 인도 땅에 살고 있다. 한 마디로 뒤죽박죽…. 뭐 그런 느낌이 들지만 그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특유한 무화와 질서를 유지해 가며 살아가고 있다.

인도 지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14가지나 되는 문자가 씌어있다. 얼마나 다양한 인종과 언어가 있기에 지폐에도 14가지의 언어를 써 놓았을까? 영국에서 독립한 후 1961년 인도정부는 국세(國勢:인구, 산업, 자원 따위의 방면에서 한 나라가 지니고 있는 힘) 조사를 한 결과 1652종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많은 언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인도정부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인도의 모든 루피지폐에는 14종류의 언어가 기재되어 있다(왼쪽 글씨).
 인도의 모든 루피지폐에는 14종류의 언어가 기재되어 있다(왼쪽 글씨).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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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정부는 독립 후 영어를 추방하고 힌디어를 국어로 삼으려고 했지만, 다양한 민족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14종의 언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고 한다. 그 결과,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지폐가 탄생한 것이다. 모든 인도지폐에는 14종의 언어로 화폐단위가 깨알처럼 적혀져 있다. 이를 아는 사람은 흔치않다. 인도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잘 모른다. 그 14종의 언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삼어, 벵골어, 구자라트어, 칸나다어, 카슈미르어, 말라얄람어, 마라티어, 오리야어, 펀자브어, 라자스탄어, 타밀어, 텔루구어, 우르드어, 힌디어 등이다.

인도 대륙에 인구가 많은 이유

그 중에서도 델리는 인도에서 가장 인구 집중이 많은 도시다. 현재 델리 인구는 약 25백만 명이라고 한다. 인도 전체 인구는 12억 36백만 명으로 중국(13억 56백만 명, 2014년 7월 현재 CIA 자료)에 이어 세계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대륙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세 나라로 분리되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도 인도 땅이다. 그러므로 파키스탄 1억 96백 만 명, 방글라데시 1억 66백 만 명을 합하면 인도대륙의 실재 인구는 약 16억 명이나 된다.

"인도 인구는 13억인지 14억인지 제대로 파악을 할 수 없어요. 호적에 올리지 않는 사람도 엄청 많아요. 인구조사도 제대로 할 수 없고요."

지난해 남인도를 여행할 때 만난 인도 현지 가이드 센딥의 말이다. 실제로 인도 인구는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거기에 인구의 도시화 집중이 가파른 속도로 늘어나 2030년에는 델리의 인구는 3600만 명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나는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인도의 인구 증가에 대하여 의문점이 많아 센딥에게 물어 보았다.

"센딥 인도에는 왜 이렇게 인구가 많지요?"
"그거 어려운 질문인데요. 일단 인도에서는 종교적인 문제로 출산 자체를 성스로운 일로 받아드리고 있지요. 그리고 다산이 복이 많다는 다산문화 사상이 인구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어요. 문명 소외 지역에서는 섹스를 유일한 쾌락 활동으로 삼고 있는 있어서 정조관념도 희박한 편이지요.

광활한 토지에 쌀농사를 짓고 있는 인도는 혼외정사가 많고, 거기에다 강간, 간통문화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드리지 않고 있는 점도 있어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람이 죽으면 사람 몸을 받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어려운데 인도사람들은 죽으면 바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지요."
"죽으면 바로 인간으로 태어난다? 그건 왜 그러지요?"
"윤회를 믿는 인도인들은 사후에 더 좋은 곳에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평소에 선행을 많이 하기 때문이지요. 유럽이나 선진국들은 출생률도 저조하고 따라서 인구가 아주 적지요. 인구가 적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인도에 도착하면 구름처럼 몰려드는 인파 속에 빨려 들어가다 보면 도대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죽지 않고 생존을 해 있구나 하는 서바이벌에 대한 존재감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저 수많은 인파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만 나는 여전히 고독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강한 외침이 온 몸에 소용돌이친다. 바로 이 점이 나를 자꾸만 인도로 끌어 들이는 것이 아닐까?


태그:#인도 땅에 인구가 많은 이유, #부처님 수인, #아미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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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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