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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I 'W3' 가변설치 64개 TV모니터 1994. 백남준은 이 작품을 1초당 다섯 프레임 머물게 한 후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는 속도로 세팅해 관객이 화면을 가장 즐겁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측면이 있다고 백남준의 전자기술자 이정성씨는 전한다
 백남준 I 'W3' 가변설치 64개 TV모니터 1994. 백남준은 이 작품을 1초당 다섯 프레임 머물게 한 후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는 속도로 세팅해 관객이 화면을 가장 즐겁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측면이 있다고 백남준의 전자기술자 이정성씨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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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갤러리(종로구 삼청로)는 작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백남준 전에 이어 오는 3월 15일까지 '백남준 개인전_W3'를 다시 연다. 이번에는 주로 1960년대 '참여TV' 작품과 1990년대 '전자조각' 작품을 중심으로 12점이 소개된다.

전시 제목인 'W3'는 인터넷주소를 지칭하는 'World Wide Web(월드와이드웹)'의 약자다. 총 64개의 모니터로 구성된 이 작품은 우리가 본격적으로 '인터넷 시대'에 와 있음을 알리는 서곡이다. 백남준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라고 했는데 그런 시대정신을 비디오아트로 실감나게 구현한 셈이다.

'W3' 작품의 개념은 1974년에 시작된다. 백남준은 록펠러재단에 예술기금을 신청하면서 기획안을 냈을 때 이미 '전자초고속도로'라는 용어를 썼다. 이게 나중에 업그레이드되어 미국 50개주 지도가 들어가는 '전자초고속도로'라는 작품이 발표된다. 이만큼 미국인에게 사랑받는 작품도 없다.

88년부터 백남준의 '손'이 된 이정성 기술자

백남준 I '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 TV' 21.3×58×45cm 1964-1995. 오실로스코프는 모니터에 교류신호와 진동현상을 표시해 주는 장치다. 이를 이용해 백남준은 모니터 이미지를 수직, 수평, 대각으로 이동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었다. 백남준 초기 TV'시리즈에 담긴 정신이 뭔지를 설명하는 이정성 전자기술자
 백남준 I '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 TV' 21.3×58×45cm 1964-1995. 오실로스코프는 모니터에 교류신호와 진동현상을 표시해 주는 장치다. 이를 이용해 백남준은 모니터 이미지를 수직, 수평, 대각으로 이동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었다. 백남준 초기 TV'시리즈에 담긴 정신이 뭔지를 설명하는 이정성 전자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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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전에는 백남준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그의 손이 되어준 전자기술자 이정성 선생도 참여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88년 '다다익선'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남준은 전자기술의 발전으로 진공관 위주로 작업해온 아베만으론 한계에 부딪쳐 삼성의 소개로 이정성씨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는 이에 흔쾌히 응했다.

무명 전자기술자였던 이정선 선생은 백남준과 인연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백남준의 작품을 다룰 줄 아는 비디오아트 기술자가 되었다. 이후 미국 뉴욕 백남준 휘트니전시에서 그곳 기술자가 손을 못 대는 것도 미국에 직접 가서 수리하기도 했다.

이정성 선생은 위 작품을 설명하면서 "백남준은 관객이 자신의 작품을 장난감처럼 만지거나 조작하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외국에서도 보면 미술관 측이 작품을 못 만지게 해 백남준과 충돌을 빚었고, 미술관이 사진촬영을 못하게 하는 것도 백남준은 반대했단다. 왜냐하면 그의 입장에서는 관객이 참여해야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60년대 'TV시리즈' 초기작 소개

백남준 I '오실로스코프 TV', '수평달걀 구르기 TV', '흰 잔재에 대한 발판스위치 실험', '수직 구르기 TV', '2개의 TV 세트에 음파입력(수직/수평)[왼쪽부터]
 백남준 I '오실로스코프 TV', '수평달걀 구르기 TV', '흰 잔재에 대한 발판스위치 실험', '수직 구르기 TV', '2개의 TV 세트에 음파입력(수직/수평)[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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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고재 기획전에는 백남준의 'TV아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정성 선생은 그의 초기 'TV시리즈'를 제대로 보여준다. 수백 개 왕관 모양 만들 수 있는 'TV크라운'이나 자석을 대면 여러 모양으로 바뀌는' TV자석'은 빠졌지만, '참여TV'시리즈라 할 만한 것이 한 자리에서 거의 다 전시된 셈이다. 매우 드문 일이다.

위 작품을 얼핏 보면 볼품없지만, 비디오아트의 혁명은 여기서 시작된다. 캔버스 대신 모니터에 수직선과 수평선을 그리는 획기적 개념이다. 화면을 수평으로 왜곡시키는 '수평달걀 구르기 TV'와 수직으로 왜곡시키는 '수직 구르기 TV' 또한 화면을 관객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2개의 TV세트(수평/수직)' 등이 보인다.

백남준 I '수평 달걀 구르기(Horizontal Egg Roll) TV' 45×47×50cm 1963-1995. 이 작품은 TV화면에 여성이 태아처럼 웅크린 채 달걀에 갇혀 허공을 떠다니는 모습이다. 이는 백남준이 동양의 윤회사상에서 말하는 생성과 소멸의 원리를 표현한 것이다
 백남준 I '수평 달걀 구르기(Horizontal Egg Roll) TV' 45×47×50cm 1963-1995. 이 작품은 TV화면에 여성이 태아처럼 웅크린 채 달걀에 갇혀 허공을 떠다니는 모습이다. 이는 백남준이 동양의 윤회사상에서 말하는 생성과 소멸의 원리를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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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듯 TV 아래 송신기가 있어 관객이 원하는 대로 작품의 화면을 조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여기에는 사운드를 이미지로 바꾸는 개념도 포함된다. 이런 '관객참여' 방식은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그의 첫 전시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여기에서 그에 대한 몇 마디 보충설명을 덧붙인다.

그의 첫 전시는 '연주형식'이라 특이했다. 제목도 '음악의 전시_전자 텔레비전'이다. 피아노가 전시장에 나온 것 그래서 당연하다. 하지만 백남준은 악기를 연주의 도구만 아니라 미술의 오브제로도 봤다. '전자 텔레비전'이 부제이니 또한 TV 13대도 등장한다. 당시 TV가 너무 비싸 이걸 사느라 백남준은 점심도 종종 굶었단다.

그런데 이런 전자아트를 구현하기 위해 백남준은 굶은 것뿐만 아니라 3년간 죽으라고 고생한다. 무슨 공부를 하려한 건가. 전자기술을 혼자 독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백남준은 첫 전시를 여는 데 무려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2년간 독일에서 숨어서 독학을 하다 이도 안 돼 당시 전자기술의 최강국인 일본으로 건너가 1년을 더 공부한다. 백남준은 일본잡지 <음악예술>의 통신원으로 원고를 기고해 그 이름이 일본에도 알려졌다. 일본에 가서도 그는 전자기술의 권위자 '우치다 히데오'도 만나고 그의 소개로 전자공학자 '아베'도 알게 된다.

전시의 주인공은 '관객'임을 선포

백남준 I '임의접속_막대꼬치' 백남준 첫 독일 전시 때 설치된 작품 1963. 2012년 8월 백남준아트센터 특강 때 찍은 사진
 백남준 I '임의접속_막대꼬치' 백남준 첫 독일 전시 때 설치된 작품 1963. 2012년 8월 백남준아트센터 특강 때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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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TV를 전시에 활용한 점도 그렇지만 또 하나의 혁명은 "전시의 주인공을 관객으로 봤다"는 점이다. 이는 '작가의 죽음'을 선언한 거나 매한가지인데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을 연상시켜 충격적이다. 5년 후 프랑스 문학비평가인 R. 바르트도 '저자의 죽음'을 선언한 바 있다.

이 말을 더 쉽게 풀면 이렇다. 지금까지 서구에서는 전시가 '작가 중심의 수직적 전시'였다면 백남준은 이를 해체하고 '관객 중심의 수평적 전시'를 연 셈이다. 전시는 작가가 시작하지만 그걸 완성하는 건 관객이라는 콘셉트다.

이것은 전시에서 관객이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한 것인데 '인간소외'를 언급한 사상가 맑스의 영향인지 모른다. 백남준은 첫 전시부터 이렇게 자신의 전시철학을 확실하게 반영한다. 그런 계열의 대표적 작품이 바로 '참여TV' 시리즈다.

위 사진은 백남준의 첫 전시에 선보인 작품 중 하나인 '임의접속_음반꼬치'다. 시장에서 사람들이 꼬치를 골라 먹듯 음반고치를 골라 디스크에 걸고 관객 스스로 음악을 작곡해 보라는 의도다. 억지가 아니라 그것도 우발적으로 참여해 보라는 메시지다. 하여간 백남준은 이걸 대비해 전시장에 그런 장치를 미리 마련해 뒀다.

비디오아트는 공간예술 이전에 '시간예술'

백남준 I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Nostalgia is an Extended Feedback), TV상자, 네,온 새시, 튜브 등(Vintage TV Cabinet, Neon, Chassis, Tubes, Laser Printed Canvas, Rug, Print, Lamp, Antique Photo Album, Three 4.5" KTV Monitors, 1 Sony Watchman, 1 Sony Laser Disk Player, 1 Paik Laser Disk) 165×78.74×34cm 1991[오른쪽]. 'W3'[왼쪽]
 백남준 I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Nostalgia is an Extended Feedback), TV상자, 네,온 새시, 튜브 등(Vintage TV Cabinet, Neon, Chassis, Tubes, Laser Printed Canvas, Rug, Print, Lamp, Antique Photo Album, Three 4.5" KTV Monitors, 1 Sony Watchman, 1 Sony Laser Disk Player, 1 Paik Laser Disk) 165×78.74×34cm 1991[오른쪽]. 'W3'[왼쪽]
ⓒ 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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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백남준 전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작품은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원제 La nostalgie est un feedback au carré)'이다. 제목마저 특이하다. 여기에서 백남준이 '노스탤지어'라는 과거를 암시하는 이 시간어휘를 중시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노스탤지어'는 뭔가. 그건 단순히 과거의 기억을 환기하는 기존의 시간개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디오를 통해 인간이 마치 조물주처럼 시간의 속도를 조정하거나 시간의 순서를 앞뒤로 뒤바꿀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말을 우리가 책을 볼 때 앞뒤 페이지를 왔다 갔다 하듯 비디오아트에서는 시간을 멋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된다. 백남준은 1981년 프랑스비평가 '장 폴 파르지에'와 대담에서도 '회화'에서는 색채가 공간적 기능을 하지만 '비디오아트'에서는 시간적 기능을 한다며 자신의 예술이 공간예술을 넘어 시간예술임을 밝힌다.

백남준의 영원한 예술파트너 '샬럿'

백남준 I '샬럿(Charlotte)' 복합매체(Mixed Media) 236×180×38cm 1995 I '샬럿(Charlotte)' 복합매체(Mixed Media) 236×180×38cm 1995.
 백남준 I '샬럿(Charlotte)' 복합매체(Mixed Media) 236×180×38cm 1995 I '샬럿(Charlotte)' 복합매체(Mixed Media) 236×180×38cm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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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백남준의 영원한 예술적 파트너 '샬럿 무어먼'을 추모한 작품을 보자.

위 작품 하단에는 첼로가 보이는데 이것이 샬럿 무어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한다. 상단 모니터에서는 그녀가 그동안 해온 퍼포먼스도 볼 수 있다. 샬럿은 백남준의 뮤즈이고 여신이자 영원한 예술적 동반자였다. 이 작품은 샬럿에 대한 오마주 작품으로 그녀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백남준과 샬럿은 환상적 예술 파트너로 서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불가결한 관계였다. 샬럿이 없는 백남준, 백남준이 없는 샬럿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샬럿은 1991년 암으로 백남준보다 먼저 타계한다.

샬럿 무어먼은 '줄리아드' 출신으로 초기에는 '아메리카 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이었으나 전위음악에 빠져 백남준과 함께 '액션뮤직'에 동참한다. 1967년 '뉴욕전위예술제'에 참가해 완전 누드로 연주하다 경찰에 체포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두 예술가는 유럽 등 전 세계를 누비며 해프닝 아트를 선보이며 동고동락했다.

그들은 TV나 악기를 인간의 확장된 몸으로 봤고 퍼포먼스를 통해 음악과 미술, TV와 악기,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시도한다. 백남준은 자신을 전자예술의 셔먼으로 봤다면 샬럿은 전위예술의 셔먼으로 본 게 거의 확실하다. 이를 증명하는 것 중 하나가 위에서 보듯 모니터를 덮은 무당 분위기가 나는 전선이다.

기사 끝에 한 가지만 덧붙이면 이번에 비디오 조각인 '톨스토이'가 4억 5천만 원에 팔려 화제가 됐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노자(老子)'를 자국어로 번역할 정도로 동양사상에 심취했고 인류공동체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백남준은 여기에 끌렸다. 이밖에 '테크노 보이'와 '램프', '금붕어를 위한 소나티네' 등도 감상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전시 정보] 학고재(종로구 삼청로 50) 홈페이지 www.hakgojae.com. 전화 02)720 1524~1526



태그:#백남준, #샬럿 무어먼, #이정성, #'참여TV'시리즈, #전자초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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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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