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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3일부터 19일까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아래 ABC) 트레킹을 일주일간 다녀왔습니다. 이 글은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마흔 언저리의 나와 K, 두 남자가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느낀 여러 생각과 소회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익히 히말라야를 경험하신 분들께는 그 때의 기억과 감흥을, 버킷리스트 한 편에 히말라야를 적어 놓고 '언젠가'를 준비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설렘과 정보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 기자말

데우랄리를 향해 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
 데우랄리를 향해 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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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른 봉우리
 차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른 봉우리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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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합니다. K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처음에는 밑에서보다 훨씬 추운 밤을 보내서 힘들어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괴로워하는 K의 상태는 고산병 증후였습니다. 머리를 감싸 안은 K는 잠을 못 잘 정도로 고통을 느꼈고, 고개를 숙였다가 들어 올릴 때는 극심한 두통을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못 올라갈 수도 있겠다'라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증세가 고산병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K는 어지간해서는 '못 하겠다', '힘들다'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성격에, 집이 있는 성남에서부터 상암 월드컵경기장까지 사이클로 왕복을 할 정도로 좋은 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번 트레킹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저질 체력의 나에게 먼저 신호가 오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지요.

고산병은 보통 해발 3000m 정도에서부터 증후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고산병의 증세는 누구에게나 잠복한다고 합니다. 고산병 증세는 극심한 두통, 현기증, 구토, 무기력 등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K는 '뇌를 쥐어짜는 아픔이 느껴지며, 아무 소리도 안 들어오고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행동만이 나왔다'고 고산병의 느낌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전문가들은 3000m 고도를 넘어서는 숨이 가빠지면 걷는 속도를 늦추고, 쉬는 중에 물을 조금씩 자주 마시라고 권합니다. 마늘 수프, 생강차, 비아그라 등이 고산병을 완화해 준다고 하기에, 고산 트레킹 도중에 만나는 한국 사람들끼리는 '약 챙겨 드셨어요?'라고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대 의학이 고산병에 대해 정확한 원인 규명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심폐 지구력이 좋은 마라톤 선수와 동네 뒷산에도 헉헉거리는 60대 남성이 함께 고산에 오른다면 마라톤 선수가 60대 남성을 업고 내려와야 할 듯합니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히말라야를 여러 번 다녀온 지인은 성공적인 트레킹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고산병을 이길 수 있게 기도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K의 기도보다 강력했던 걸까요? ABC까지 나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고산병에 콜라가 도움... 데우랄리부터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까지 

다행히 K는 아침에 마늘 수프를 먹고, 생강차를 마시고, 몸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려 우리의 산행은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눈이 부시다 못해 눈이 시린 파란 하늘과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데우랄리(3230m)에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콜라를 마셨습니다. 평소 좋아하지 않는 탄산음료지만, 고산병에는 콜라도 도움이 된다고 해서 보양 차원에서 마셔 두었습니다.

이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컨디션이 많이 떨어진 K와 보행 속도를 맞추어 준다고 먼저 걷다가 기다리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오후부터는 나에게도 문제가 생깁니다. 데우랄리부터 오늘의 목적지인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이하 MBC)까지는 정말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발목까지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발목까지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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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의 여유로운 휴식
 포터의 여유로운 휴식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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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고단한 휴식
 필자의 고단한 휴식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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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4일 이상 연속되는 산행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체력이 점점 고갈되었고, 고도가 올라갈수록 그 피로도 극대화되었습니다. 더구나 화창하던 하늘이 올라갈수록 짙은 안개로 덮여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도 없었습니다. 또, 발목까지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은 걸음 속도를 더디게 했습니다.

예전에 전투기 추락사고로 임사 체험을 했던 조종사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죽음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굉장히 편안했는데, 삶으로 다시 돌아오니 '죽을 만큼 아팠다'는 이야기였지요. 오늘 내가 느낀 것은 죽지 않을 것을 뻔히 아는데,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것은 더더욱 고통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은 '고(苦)'라는 깨달은 성현의 말씀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생(生)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사(死)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우리네 인생. 거기에 삶의 의미와 목적마저 없다면 인생은 정말 안개 낀 오리무중으로 방황 그 자체일 겁니다. 그렇다고 목적 있는 삶, 스스로 선택한 무엇이 있다고 하여 고통이 덜할까요?

히말라야를 간절히 원해서 이곳을 걷고는 있지만, 스틱을 휙 집어 던지고 눈밭에 그냥 몸을 던져 버리고 싶은 이 마음은 또 무엇입니까? 이래나 저래나, 깨달으나 무지하나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삶은 기본적으로 고통이라는 사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순간순간 맞이하는 상황에 대한 태도, 즉 '삶을 대하는 자세'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허망하기 그지없는 인생에 그토록 '의미부여'를 하려고 애쓰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삶과 죽음 사이….. 인생은 '고(苦)'입니다. 그리고 어쨌든 가야 하는 '고(GO)'입니다.

안개낀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의 전경
 안개낀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의 전경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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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 솟아있는 봉우리가 세계3대 미봉(美峯) 중 하나인 마차푸차레
 뾰족 솟아있는 봉우리가 세계3대 미봉(美峯) 중 하나인 마차푸차레
ⓒ 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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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MBC(3700m)에 이르렀습니다. 안개와 눈발 때문에 로지 주변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2시간 정도 더 오르면 되지만, 아무래도 우리 컨디션에는 무리다 싶어 여기서 여장을 풀기로 했습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구름이 싹 걷히면서 세계3대 미봉(美峰)이라 불리는 마차푸차레가 눈앞에 우뚝 나타났습니다.

내일은 결승전입니다. 최종 목적지 ABC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일찍 길을 나설 예정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평소보다 이른 저녁 잠을 청합니다.

(다음편에 계속)



태그:#히말라야, #트레킹,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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