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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메인포스터에 등장하는 어머니.
 <봄날> 메인포스터에 등장하는 어머니.
ⓒ 제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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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시를 써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을까? 가장 빠른 길은 사랑을 하는 것이다.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를 아시는지? 서정성 넘치는 그 영화에서 심장병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시나리오를 맡은 마시모 트로이시가 열연한 집배원역의 마리오는, 본국에서 추방당한 파블로 네루다와의 교감을 통해 자신의 영혼에 눈을 뜬다. 그러나 어부의 아들인 그가 정작 시인 감성에 눈을 뜨고 시를 쓰게 된 것은 전적으로 바(bar) 주인의 조카딸 베아트리체 루소 때문이었다.

이처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창작 뮤지컬 <봄날>이 그랬다. 네 명의 배우는 말할 것도 없고 관객 모두가 시인이 되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에 젖어들면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자기 자신과의 조우를 통해서다.

'소리'에 대한 향수 불러일으켜... 시인 캐릭터 큰 역할

이 뮤지컬은 부모가 따로 있다. 바로 <봄날은 간다>라는 연극이 원작이다. 2002년 동아연 극상 3개 부문을 수상한, 우월한 혈통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작품이 '포에틱 뮤지컬(Poetic Musical)'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우리 곁으로 온 것은 제목보다 조금 이른 늦겨울이었다.

2014년 창작뮤지컬 우수작품 지원 선정작으로 선정되어 이번에 관객과 만난 <봄날>에 대한 첫인상은 '봄날'이라는 켈리그라피가 각인해 줬다. 단언컨대 손글씨 특유의 힘 때문에 작품과는 상관없이 제목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더불어 쾌적함이 돋보이는 아트원씨어터 2관의 관객에 대한 세련된 서비스는 감상의 최적화를 위한 배려였다.

그래서였을까? <봄날>의 특징 중 하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익숙한 국내 관객에게 기존 뮤지컬 문법을 깨뜨리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아울러 70년대와 80년대의 라디오 드라마에 익숙했던 중장년층 이상의 관객들에게는 '소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거기에는 바로 시인이라는 캐릭터가 큰 역할을 한다. 원작에 없는 그 존재는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으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막간의 정서를 시(詩)적인 내레이션으로 풀어내며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변화를 노래하기 때문이다.

마치 동양화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서 감상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백의 미(美)가 존재하는 뮤지컬, 가히 독보적이며 한국적이다. 시와 노래가 있으니 술 생각이 절로 날 정도다. 한마디로 정겹고 흥겹다. 새로운 것이 낯설지 않은 이 도전과 모험은 극단 '하늘하늘'의 첫 번째 작품으로 테이프를 끊은 것이 성공한 것임을 증명한다.

원석을 누가 다듬느냐에 따라서 보석의 가치가 결정되듯이 원작을 재구성해 뮤지컬로 탄생시킨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극단의 대표인 최정식이다. 원작의 서정적인 문구들이 마음에 들어 뮤지컬로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그가 염두에 둔 것은 바로 뻔한 뮤지컬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장인(匠人)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뻔하지 않되 'Fun(재미)'한  '포에틱 뮤지컬'이 괜히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예의상 전부 18개로 이루어진 장면의 줄거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욕하면서 보는 아침드라마 소재의 줄거리지만...

여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모여 피붙이보다 더 진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가족이 있다. 어머니와 아들 은호와 딸 수야. 어머니는 남사당패에서 만나 의남매를 맺게 된 남편과 결혼하지만, 그 남편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핏덩이 하나를 데려다 놓고 집을 나가 버린다.

어머니는 남편이 데려다 놓은 아이를 자신의 친딸처럼 키운다. 고아원에서 보모로 일하던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과 똑 닮은 아이를 만나게 되고 데려와 아들로 키운다. 오누이 관계가 된 아들과 딸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지만, 자신의 내력이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질까 두려워한 어머니는 이들의 관계를 갈라놓으려고 애쓴다.

서로 사랑하게 된 아들 은호와 딸 수야는 두 사람의 사이를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 몰래 도망가려 하지만, 차마 어머니 혼자 남겨두고 갈 수 없는 딸은 남고 아들은 떠난다. 그 후 홀로 남은 딸은 어머니를 원망한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결국 집으로 다시 돌아온 아들에게 어머니는 딸을 부탁하고 세상을 떠난다. 한 세월이 흐른 후 어느새 나이를 먹은 은호와 수야는 부부가 되어 어느 봄날 어머니가 묻혀있는 바닷가 언덕의 무덤을 찾아간다.

그들은 그 옛날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를 입양해 기르려고 한다. 그들이 어머니를 찾아가며 떠올리는 아름다운 시절의 기억들. 죽은 어머니는 그들의 뒤를 따라 어둡고도 환한 봄볕을 받으며 어디론가 간다.

창작 뮤지컬 봄날의 주연배우들
▲ 어머니와 은호 그리고 수야 창작 뮤지컬 봄날의 주연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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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욕하면서 보는 아침드라마처럼 통속으로 흐를 수 있는 소재의 줄거리다. 그나마 서로 다른 피붙이라는 것이, 금기(禁忌)의 선이 명확한 성적 긴장감을 자체적으로 검열해 소화하지만, 다소 아슬아슬하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수야는 여자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어머니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이실직고를 한다. (이 폭탄선언은 뮤지컬의 말미에 이르러서 비로소 어머니의 입을 통해 은유처럼 관객에게 여운을 남긴다.)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이런 식으로 상처를 각인하는 것은 은호와 수야를 거두어 기른 존재가 어머니여서일까? 그녀 역시 몸속에 흐르는 예인의 기운을 떨치지 못해 집을 나가버린 남편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지 않은가? 그 트라우마는 극 중반 이후 문득문득 그녀를 죽음의 위기로 몰고 가는 복통으로 관객을 긴장시킨다. 2대에 걸친 불행의 재발에 수야가 할 수 있는 건 체념 이외에 사실상 없다. 밋밋한 공간에서 서성이는 건 오히려 관객들의 탄식이다.

하지만 개연성과 핍진성을 만족시킨 다고 해서 논리가 반드시 작품에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김현정이 열연한 어머니는 전직 남사당패답게 멋진 춤과 노래를 선보이지만, 딸이 자신처럼 버림받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은 결국 오지 않는 님에 대한 보상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소유물은 아니되 보험 정도는 될 수 있는 수야, 혈육은 아니지만 사랑했던 남자가 남겨주고 간 생명은 적어도 어머니 자신에게 있어서는 '님'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화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니 어찌 둘의 사랑을 허락할 수 있겠는가? 수야에게 대리 투영된 자신의 지난 날의 젊음이, 수야와 은호와의 결합으로 남편을 망령처럼 불러오는데 그 허망함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사이를 용인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그 집착의 해소인 것이다. 평생을 원망하면서 애태우고 기다리던 님처럼 자신도 머나먼 길을 갈 때서야 비로소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이다.

창작뮤지컬 봄날에서 시인으로 등장하는 박두수
▲ 시인으로 등장하는 박두수 창작뮤지컬 봄날에서 시인으로 등장하는 박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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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는 정에 가까운 콘셉트를 가진 포에틱 뮤지컬, <봄날>에는 이 세 명의 관계가 파국이 아닌 봉합에 이르도록 유도하는 관찰자가 있다. 전지적 시점의 소유자로 이승과 저승 그리고 이상과 현실을, 과거와 미래를 자유롭게 오가는 초현실적인 존재는 바로 나레이션을 맡은 시인이다. 그런데 이 시인, 남다르다.

예사롭지 않은 그의 시선을 음미하다보면 문득 그가 수야의 아버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혹 남사당패의 소리꾼이었던 자의 탈각(脫却)이 '소리'만 남아 지상에 남은 자들의 삶을 보살펴주고 인도하는 것이 아닐는지….

마치 극중극처럼 어린 은호와 수야의 과거 재현을 위해 인형을 조종하는 연기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시인은 완성을 향해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한(恨)의 대상인 것만 같다.

세 사람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과 미쟝센으로 두드러진 신발을 자유롭게 조종하는 모습은 가족의 내막을 알지 못하는 자는 엄두를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의 관계를 부정하는 어머니 곁을 은호가 떠나고 수야 마저 등을 돌릴 때 배를 움켜쥐는 어머니의 위기가 해소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인의 아름다운 노래가 완성될 때 까지 죽음은 아직 찾아와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국적 정서를 음악과 대본만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봄날>의 제작진이 정의한 한국적 정서는 덜어내고 비워내야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절제의 미'다. 무대와 배우들의 연기는 결말을 향해 갈수록 소실점으로 변해가고 비워진 공간은 잔잔한 몰입을 즐기는 관객의 상상으로 채워진다. 역설적이게도 텅 빈 충만이다. 결국, 한 걸음 물러났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정서를 그려내고자 한 의도는 충분히 성공한 셈이다. 완벽하다.

기존의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정적인 <봄날>이 우완정통파 투수가 새로 익혀야 하는 포크볼처럼 어쩌면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맑고 개운한 뒷맛의 저력에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황사와 미세먼지에 쩌 들어 세탁이 필요한 우리의 봄날에 정말 가뭄 끝의 단비 같은 뮤지컬이 아닐 수 없다. "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봄 볕 한 줌 만큼만..."이라는 시심(詩心)을 꼭 느껴보시기를 권한다.

공연기간: 2015년 2월 21일(토) ~ 3월 1일(일) 총 12회
공연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2관
공연시간: 평일 8시 |토요일 3시, 7시 | 일요일 2시, 6시 | 월요일 공연없음
기획, 주최, 제작: 극단 하늘하늘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덧붙이는 글 | 후아이엠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태그:#봄날, #창작뮤지컬, #극단하늘하늘, #포에틱뮤지컬, #최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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