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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지역·양자 외교를 총괄하는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담당 차관이 2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예방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미국의 지역·양자 외교를 총괄하는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담당 차관이 2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예방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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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 고위관계자가 과거사를 둘러싼 한·중·일 3국의 갈등에 대해 모두에게 책임이 있으니 과거사 문제를 덮고 가자는 식으로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한국과 중국이 소위 '위안부'문제를 놓고 일본과 논쟁하고 있으며 역사교과서 내용, 심지어 바다 명칭을 놓고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며 "이해는 가지만 실망스럽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또 "(동북아 역내에서) 민족감정이 이용되고 있으며,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이런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고 비난했다.

과거사 갈등의 근원적 책임이 있는 일본의 반성과 사과는 외면한 채 한·중·일 3국의 협력 필요성만 강조한 것인데, 이는 결국 미국의 이익만을 내세운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3·1절에 일본을 두둔하는 듯한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접한 누리꾼들은 씁쓸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 과거의 적 비난해 값싼 박수" 폄훼

미 국무부 3인자인 셔먼 차관은 이날 세미나에서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는 동북아를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섰다. 셔먼 차관은 특히 과거사 갈등을 빚는 한·중·일 3국을 겨냥해,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며 싸잡아 비난하는 등 강도 높은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는 "민족주의 감정이 여전히 이용될 수 있다", "어느 정치 지도자도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 등 이례적인 표현들을 써가면서 한국과 중국을 겨냥했다. 과거사 갈등을 처음 촉발한 일본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이 이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에 있었던 것을 넘어서 봐야 한다"며 거듭 일본 편을 드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셔먼 차관은 이어 "스스로 만든 역사의 덫에 갇히는 국가의 위험스런 이야기를 멀리서 살펴볼 필요가 없다"며 간접적으로 일본을 언급했지만, 한국과 중국을 비판하면서 균형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실제 30분에 걸친 셔먼 차관의 연설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촉구하는 발언은 한마디도 없었다.

'양비양시론'으로 해석되는 이날 셔먼 차관의 발언을 두고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변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주변국들이 수용할 수 있는 전향적인 태도를 밝혀야 한다고 독려해왔던 지금까지의 기조와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강간 피해자, 가해자와 공동책임?"

미국이 자국의 전략적·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거사 갈등의 본질을 외면하고 무조건식의 '화해'를 종용한 것으로 해석되는 셔먼 차관의 발언에 대해 정치권은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여당 간사인 심윤조 의원은 "미 행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닐 것"이라며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발언의 전후맥락을 봐야 할 것 같다"라면서 "여태까지 미국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일본에 유리하게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또 "미국의 기본자세는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잘 극복해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민족감정을 부추겨서 정치적 득점을 올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는 일반론적 얘기"라고 일축했다.

서영교 원내대변인 역시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인지 모르겠다"라며 신중히 답했다. 다만, 그는 "일단, 과거사 문제는 미국이 말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힐러리 전 국무장관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확실한 일본 입장을 촉구한 바 있다, (셔먼 차관의) 발언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이 독일과 같은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오히려 촉구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누리꾼들은 셔먼 차관의 발언에 대해 "순전히 미국의 이익에 치중해 있는 발언"이라며 성토했다.

아이디 'happ****'은 "자신 네들 이익에 치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피해자코스프레는 아니죠, 어따 대고 덮자는 겁니까"라고 일갈했다. 아이디 'kima****'도 "들을 가치도 없는 헛소리,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먼저이지, 이 문제가 덮는다고 덮어질 문제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디 'Wycliff ****'는 "미국은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부추겼고, 중국이 부상하자 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웬디 셔먼의 과거사 발언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미국이 과거사를 빙자해 일본을 노골적으로 편들고 한국과 중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데 더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3.1절, 미국이 과거 침략세력인 일본을 편들어줬다는 소식이 여러모로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leesanghoC)에 "강간 피해자, 가해자와 공동책임? 광주학살 희생자, 전두환과 공동책임?"이라며 셔먼 차관의 발언을 힐난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일) 양국이 미래로 함께 가는 여정에서 반드시 풀고 가야할 역사적 과제"라고 규정했다. 또 "이제 53분만이 생존해 계신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이 90세에 가까워서 그 분들의 명예를 회복시켜드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라며 일본 정부의 조속한 행동을 촉구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 시도에 대해서도 단호히 중단을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교과서 왜곡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도 이웃 관계에 상처를 주는 일"이라며 "일본이 용기있고 진솔하게 역사적 진실을 인정하고 한국과 손잡고 미래 50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함께 써 나가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태그:#3.1절, #과거사,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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