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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에 이창근씨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글과 사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은 김정욱 사무국장과 함께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내부 굴뚝에 올라 해고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2월 28일에 이창근씨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글과 사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은 김정욱 사무국장과 함께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내부 굴뚝에 올라 해고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 이창근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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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추운 날씨가 채 가시지 않은 2월의 마지막 날. 지난 2월 28일에 트위터에는 굴뚝 위 풍경이 사진으로 올라왔다. "텐트 바닥이 대낮에도 으슬으슬 한기를 뿜는다"는 글과 함께, 바닥에 깔아놓은 수건 위로 핫팩을 줄지어 붙여놓은 모습이다.

아직 쌀쌀한 겨울인데, 굴뚝에서 먹고 자는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바로 '굴뚝 위의 시인'으로 불리는 이창근씨가 전송한 글과 사진이다.

2014년 12월 13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인 이창근씨는 김정욱 사무국장과 함께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내 70미터 굴뚝 위에 올랐다.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에 나선 것이다.

그가 굴뚝에 오르기까지, 3년간의 기록

<이창근의 해고일기> 표지사진.
 <이창근의 해고일기> 표지사진.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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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출간된 <이창근의 해고일기>는 이창근씨가 2011년 6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언론에 기고한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페이스북 등 SNS에 올린 글과 사진도 들어 있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이 해고된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글은 2014년 12월, 그가 굴뚝에 오르기까지 3년간의 기록이다.

'경영상의 문제'를 이유로 시작된 쌍용차의 정리해고는 곧 옥쇄 파업을 불러왔고, 강경 진압이라는 끔찍한 결말을 낳았다. 그럼에도 이 싸움이 끝나지 않은 이유는, 자본의 논리와 공권력에 무자비하게 짓밟힌 아픔에 26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또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를 대하는 정치권과 기업의 태도는, 어느 한 사업장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노동 현실이 어디쯤 향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사안이기도 하다.

쌍용차 문제는 한국 사회 아픈 단면이다. 함께 머리 맞대고 풀 수밖에 없는 사회적 재난에 가깝다. 법의 흠을 사회가 메워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본문 401쪽 중에서)

테이저건과 최루액을 사용하는 등 용역과 경찰 병력이 기업의 편에서 노동자를 '사냥'하듯 몰아가는 당시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해고의 부당성과 기술 유출에 항의하던 사람들은 보수진영과 언론에 의해 순식간에 '불순분자'로 낙인 찍히는 상황. 본문을 읽다 보면, 차마 다시 떠올리기 힘든 기억을 써내려간 저자의 애절함이 와 닿는 것만 같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고 노동자가 써내려간 일기는 한국 사회가 겪은 사건들을 압축해 보여준다. <오마이뉴스>,<프레시안>, <시사인>, <경향신문>, <한겨레21> 등 많은 매체의 지면에 실린 이창근씨의 글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 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현안을 지적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언론 장악 문제로 연쇄 파업을 벌였던 여러 언론의 상황과 더불어 밀양, 울산으로도 시선이 향한다. 지난해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은 세월호 참사도 빠지지 않는다.

쌍용차 평택 공장 내 70미터 굴뚝에서 농성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 이창근 정책기획실장.
 쌍용차 평택 공장 내 70미터 굴뚝에서 농성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 이창근 정책기획실장.
ⓒ 이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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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함이 묻어나는 글

오랫동안 글을 써온 만큼 저자의 글에선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느껴진다. 그것은 진실을 기반으로 부당함을 지적하는 태도 덕분이기도 하지만, 또한 진솔함이 묻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의 중간 중간 자신의 아들, 동료 노동자들, 나아가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을 바라보고 대화하려는 이창근씨의 노력이 엿보이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한 남자의 일기라고도 볼 수 있다.

'재판정에서 쓴 편지'는 읽다가 울컥할 정도였다. 더운 5월까지도 늘 두꺼운 작업복만 입던 직장 동료이자 형에게, 3년 반 만에 안부를 묻는 편지글의 마지막을 읽다가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편지를 받는 사람이 이미 고인이 되어 버린, 쌍용차 해고노동자 중 두 번째 희생자였던 것이다. 두 사람의 작은 일화로 시작된 글은 곧 정리해고가 가져온 상처와 중압감을 독자들도 실감케 한다.

2009년 정리해고 이후 지금까지 26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문구는 그렇게 어느샌가 현실이 돼버린 셈이다. 노동자들의 '함께 살자'던 외침이 사측과 정부, 대법원으로부터 무시된 결과는 아닐까.

쌍용차 파업 기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연일 쏟아지는 최루액이 비를 대신했고, 시원한 바람을 대신해 경찰 헬기가 거세게 바람을 일으켰다. 곳곳에서 환자가 발생했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여태 병원 신세를 지는 동료가 부지기수다. '노동 탄압 종합백화점'으로 불리는 쌍용자동차 진압은 수많은 상처와 고통을 남기고 3년이란 세월을 지나고 있다. 인간 존엄과 공공성을 무시한, 국가 공권력에 의한 폭력은 쌍용차를 둘러싸고 외부로 드러난 모습이다. (본문 186쪽 중에서)

무분별한 해외 매각과 강제 정리 해고, 노조 파괴와 무력 진압. 본문에서 정리한 쌍용차 사태는 자본의 맨얼굴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회의 절망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비정규직의 확산과 정리 해고의 일상화, 파업을 향한 나쁜 인식 등 오늘날 문제로 대두되는 많은 점들이 한 곳에 집약된 사안인 것이다.

이창근의 웃는 얼굴, 보고 싶다

▲ 고공농성 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 "승리하고 내려가겠다" 15일 오전 경기도 평택공장 내 70m 굴뚝 위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3일째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공장 밖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을 바라는 종교,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마힌드라는 최근 푸조에 이어 사브까지 인수하면서 세계적 자동차회사로 성장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며 "그런 만큼 이제는 마음의 문을 열고 쌍용차 문제해결을 위해 대화와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 유성호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이창근씨는 결국 굴뚝 위로 올랐다. 회계 조작이 밝혀졌음에도 회사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의 판결을 보고, 좌절할지언정 포기할 순 없었던 심정이 그를 지상 70미터 탑으로 이끌었던 듯하다. 사람들의 걱정과 격려에 그는 트위터에서 활발히 글로 답한다. 한겨울 추위와 싸우면서도 그는 일출을 담은 사진과 묵직한 글을 계속 써나간다.

"지긋지긋한 현실을 바꾸려는 끊임없는 힘과 연대야말로 쌍용차 아픔을 근원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라는 글귀가 오래도록 맴돈다. "왜 다른 회사를 찾지 않느냐"고 묻는 만류에도, 쌍용차 노동자들과 이창근씨가 오늘도 해고 노동자로 사는 이유를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신과 나의 문제"라는 저자의 표현처럼, 쌍용차 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일하며 살아갈 우리와 아이들도 겪을 수 있는 노동 문제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3년이나 남았다. '약속의 정치'가 '야속한 정치'로 남을지, 그 귀추에 주목할 시간도 딱 그만큼 남은 셈이다. 책의 표지에 실린 따뜻한 가슴을 가진 글쓴이, 이창근씨의 웃는 얼굴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자면 2000일 넘게 싸워온 그들의 손을 이제 잡아 줘야 한다.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노동자들의 거칠지만 따스한 손을 말이다.

해고 노동자도 사람이라고, 그러니 함께 살자고 <이창근의 해고일기>는 말한다. 탄압에 맞선 전쟁과 같은 일들을 기록한 이 책을 읽으면 독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루에 50만 원씩 내야만 겨우 오를 수 있는 저 높은 굴뚝 위에,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고.

덧붙이는 글 | <이창근의 해고일기> (이창근 지음 / 오월의봄 펴냄 / 2015.2. / 1만 6000원)



이창근의 해고일기 - 쌍용차 투쟁 기록 2009-2014

이창근 지음, 오월의봄(2015)


태그:#이창근의 해고일기, #이창근, #쌍용차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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