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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지난달 14일 밤 서울 관악구 봉림교 근처에서 50대 택시기사 김모씨는 분통을 터뜨리며 112 신고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분명히 택시 안에 구토하면 15만원을 보상해야 한다는 뉴스를 봤는데 20대 여자 승객이 차 바닥에 '푸짐하게' 토를 해놓고도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얼마면 되겠느냐"며 돈을 줄 것 같이 나왔던 이 승객은 "15만원까지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김씨의 말에 태도가 돌변했고, 옥신각신하던 김씨가 홧김에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출동한 관악경찰서 당곡지구대 경찰관들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철수했다. 승객이 배상금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앞서 12일 신촌에서도 택시 안에 구토한 승객이 택시기사와 세차비를 놓고 말싸움을 벌이다 서대문경찰서 신촌지구대를 찾았다.

역시나 경찰에서 별다른 도움을 얻을 수 없었고, 싸우는 데 지친 두 사람은 결국 10만원에 합의하고 귀가했다.

1일 택시업계와 경찰,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택시에서 구토 등으로 차량을 오염시킨 승객이 최고 15만원의 배상금을 내도록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의 택시운송사업약관이 개정됐지만 시행 한 달 만에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배상금은 내지 않으면 법적 제재가 가해지는 벌금과 달리 강제력이 없다.
택시조합 관계자는 "이 규정으로 택시 이용객들을 처벌할 근거는 없다"면서 "약관 개정은 당사자 간 나름대로 기준을 두고 그 안에서 합의하도록 돕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택시기사들은 이런 기준도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반응이다.

'민폐' 승객 때문에 항상 까만 봉지를 차 안에 준비해둔다는 택시기사 신모(37)씨는 "바로 그 자리에서 승객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 된다지만 15만원이라는 상한선을 정한다고 해서 과연 만취 상태인 승객과 정상적인 합의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택시기사 중에는 15만원의 배상금 뉴스를 눈여겨본 이가 많지만 승객 중에는 이를 잘 모르는 이가 훨씬 많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강제로 배상금을 내게 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지난달 들어 무작정 찾아오는 택시기사와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고 난감해했다.

8년간 택시기사로 일했다는 이모(54)씨는 "지난달부터는 승객이 배상금을 내지 않으려 하면 경찰에라도 신고하면 되는 줄 알았다"며 "단순히 요구만 할 수 있는 배상금의 상한선이라면 굳이 왜 규정을 개정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은 오히려 택시 기사들의 무리한 배상 요구만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회사원 김희성(32)씨는 "작년 말 송년회 때 과음한 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다가 실수를 했는데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요구해 화가 난 적이 있다"며 "일부러 구토하는 것도 아닌데 이를 악용하는 택시기사들이 늘어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해당 약관 개정안은 서울시가 승인을 해준 사안으로 약관법에 따라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은 맞다"며 "현장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다툼이 생겼을 때 약관을 근거로 민사소송을 통해 대응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과연 15만원을 받자고 더 큰 비용이 드는 소송까지 할 택시기사가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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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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