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차마고도의 후세들, 말과 마부(호도협에서)
 차마고도의 후세들, 말과 마부(호도협에서)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멈춰 정착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난 아프다 

다리(大理)로 떠나는 날이다. 나는 배낭을 둘러메고 신발 끈을 조여 매는 이 순간부터를 좋아한다. 쿤밍(昆明)이 어떤 곳이었고 다리(大理)가 어떤 곳일까, 는 관계없는 거다. 그냥 어디론가 떠날 때가 좋은 거니까. 정확하게는 떠나 있는 시간 그 자체다. 출발과 도착, 그 사이에서 그냥 흘러가는 순간을 좋아하는 것이므로. 그러다 곧 어딘가에 멈추고 싶고 결국 멈추어서 정착 혹은 안정이란 것을 얻고 싶어질 테지만, 떠나 있는 이 순간만큼은 나의 시간이 나의 시간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경상도 사나이가 배웅을 한다.

"와, 처음부터 제가 가진 저 책 저자라고 말 안했십니껴? 그라모 더 잘해드맀실낀데."

그는 투박한 사투리로 아쉬워한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인 그의 등 뒤로 많은 사진들이 벽면에 붙어있다. 캄보디아 앙코르사원에서, 네팔 안나푸르나에서, 또 다른 어떤 여행지의 밝은 햇살 속에서 풋풋하고 자신에 찬 그가 서있다.

'사진 속 당신, 참 좋아 보이네요. 지금처럼 외로워 보이지도 않고요. 여행자는 길 위에 서야 비로소 존재감을 얻는 모양이지요.'

내 마음 속 언어는 마땅한 집을 얻어 태어나지 못한다. 전날 밤에, 다리(大理)가 그렇게 좋으셨다면서 왜 쿤밍(昆明)에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는지 물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따리, 좋지요. 근데 거기 촌구석에다 게스트하우스 했으면 아마 그만두었을 겁니다. 좋은 것도 마, 하루 이틀이지. 여가 좋십니다. 중국어 배우기도 좋고, 또 들락거리기도 편하고요."

나의 경우, 멈추어 정착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내 삶이 딱딱해지기 시작하면 아파온다. 심장이 조여오고, 호흡이 곤란해지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며 피 같은 한숨을 토해내는 날들이 많아진다. 일찍이 알아차린 것이긴 하나, 이건 병이다. 심각하고 치명적인, 그래서 고칠 수 없거나 고치려고 하지 않는 병. 여기 아마도 나랑 똑같은 병을 가진 한 사나이가 어설픈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따리고성 남문 성곽 위에서
 따리고성 남문 성곽 위에서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다리 천주당
 다리 천주당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뭐 잘 아시겠지만요, 따리 가시면요 남문으로 들어가서 왼쪽으로 돌면 성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거든요. 거기 한 번 가보시고요, 따리 천주당이라고 있십니다. 저는 뭐 거기가 가볼만 하더라고요."

여행자가 여행자에게 베푸는 최고의 호의는 자신만의 비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두 군데를 꼭 찾아보겠다고 답례를 하고 돌아선다. 이번 여행에서 그와의 인연은 여기까지겠지. 어느 때, 어느 나라, 어느 길에서 그와 혹은 그를 기억하고 있는 누구와 만나게 될 때 다리(大理)의 남문성곽과 천주당에 대한 나의 기억을 전해줄 수 있기를.

달리기보다 서있는 시간이 더 많은 버스

멀고 먼 다리 가는 길
 멀고 먼 다리 가는 길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다리(大理)행 버스는 8시간째 달리고 있었다. 아니, 달리다가 서있었다. 지금은 달리는 시간보다 서있는 시간이 더 많다. 5-6시간이면 도착한다던 버스는 쿤밍-다리 간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마냥 죽이고 있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언덕 끝점까지 차들이 늘어서 있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중국인들이 가장 가고 싶은 자기 나라 여행지가 윈난성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버스 안은 대부분 중국인 여행자였고,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발음대로 영문알파벳을 써넣어 나타난 한자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컴퓨터 자판 방식이 불편해 보이는데도, 그들에게는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카톡을 주고받는 속도를 보면 말이다.

아내와 나는 음악을 듣고 과자를 먹다가 잠이 들었고, 깨어나 또 음악을 듣다가 글을 끼적이다 말고 차를 마시다가 책을 읽었다. 그리고 깜박 잠이 들었다 다시 일어나,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노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는 여전히 놀라웠다. <바람이 분다>. 도쿄 대지진의 재앙을 그토록 생생하면서도 슬픈 아름다움으로 담아내다니.

얼마 남지 않은 두 부부의 소중한 하루하루가 아름다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늦은 밤 한 손으로는 비행기의 설계도면을 그리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아픈 아내의 손을 잡고 있던 영상이 영화가 끝나고도 잔상으로 남아, 잠시 여기가 어디일까… 초점을 잡으려고 눈을 휘둘러보니 버스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있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이미 많은 사람이 도로변에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하릴없이 앞쪽으로 걸어갔다 돌아오곤 했다. 어떤 이들은 도로변에 맞닿아 있는 산비탈을 타넘고 있었는데, 아마도 '볼 일'을 보러 가는 모양이었다. 도로에 서있는 차들은 대부분 고급 승용차들이었다. 중국인 여행자들 가운데 갑부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사실에 가까운 모양이다. 얼굴과 옷차림새에도 부유함이 묻어있었다.

조심스럽게 도로 가장자리로 나아가 고속도로 아랫마을을 내려 보았다. 수묵화에서 담묵으로 채색한 것 같은 먹기와집들이 주변 논밭의 붉은 황토 빛에 어울려 평화로워 보였다. 마을에서 벗어난 소로가 산허리를 타고 아슬아슬 이어지는 풍경도 아름다웠다. 예전에는 쿤밍에서 다리(大理)로 가는 이 길이 고속도로가 아니었다. 그래서 10시간씩 인내하며 꼬불꼬불 산길을 달려야 했으리.

저 아래 마을에서 며칠 살아보는 것도 좋겠지

차마고도의 후세들, 말과 마부(다리 가는 길)
 차마고도의 후세들, 말과 마부(다리 가는 길)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지상에서 가장 높은 길, 차마고도(호도협에서)
 지상에서 가장 높은 길, 차마고도(호도협에서)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평화로운 마을(호도협에서)
 평화로운 마을(호도협에서)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그보다 더 아주 옛날에 이 길은 차마고도(茶馬高道)였다. 그러니까 윈난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물물교역하던 지상에서 가장 높은 길이었다. 윈난성 남부에서 차(茶)를 실은 마부와 상인들은 지금 아내와 내가 향하고 있는 다리, 리장, 샹그릴라를 거쳐 티베트 수도 라싸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티베트의 말을 끌고 돌아왔다. 또 일부는 라싸에서 히말라야 설산들을 타고 넘어 네팔과 인도, 혹은 라다크와 파키스탄까지 교역을 했다.

생각해보면, 그 옛날 마부와 상인과 여행자들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이 길을 목숨을 내어놓고 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자신이 내어놓을 수 있는 최대치의 정성과 인내와 시간을 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 길을 나는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가고 있는 것이다.

차가 멈춘 것은 차마고도를 여행하는 여행자에게는 얼마간의 인내와 시간이 요구된다는 뜻일지도, 이대로 도로가 닫히고 시간의 틈새가 열려 저 아래 마을에서 며칠 살아보는 것도 좋겠지, 그리하여 차마고도의 소로를 따라 다리(大理)까지 남은 길을 걸어가 볼 수도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버스가 시동을 걸었다.

도로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하지만 1킬로미터나 달렸을까, 버스는 또 멈춰 섰고 우리들은 배가 고팠다. 어디선가 컵라면과 과자와 음료수를 가득 짊어진 장사꾼들이 나타났다. 대나무로 만든 사각모양의 들통으로 보아 소수민족인 바이족이나 나시족 같았다. 여행자들은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며 지루한 시간을 이겨간다. 다리(大理)에 도착해 저녁 6시에 시작하는 쿠웨이트와의 아시안컵 축구경기를 보겠다던 바람은 이미 사라졌다. 그 바람 대신 고산 지역의 찬 밤바람이 버스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에게 묻는다, 왜 또 길 위에 섰을까?

여행자가 늦은 밤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다리고성)
 여행자가 늦은 밤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다리고성)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다리(大理)에 도착했을 때는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쿤밍을 출발한 지 꼬박 12시간. 낯선 도시를 밤늦은 시간에 방문한 여행자는 몇 가지 고생을 각오해야 하는 법이다. 우선 시내버스가 끊겼으니 다리꾸청(大理古城)까지 택시를 타야 하고, 알면서도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

또 어두워진 거리를 눈에 익혀 가이드북에서 보아둔 숙소를 찾아가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어찌어찌 숙소를 잘 찾아간다 해도 이미 문을 닫았거나 빈방이 없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늦은 밤 여행자의 고생길은 더 깊은 밤으로 연장되기도 한다.

여행 전날 인천 부모님 댁에서 하룻밤을 자고 길을 나서던 날 아침이었다. 늙으신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을 또 하셨다. 

"야야, 니도 인자 나이도 묵고 힘들낀데 무거운 배낭 앞뒤로 매고 여행하는 짓은 그만두모 안 되겄나?"

다리 고성에 뜬 초승달
 다리 고성에 뜬 초승달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그때 아내가, 어머님 아들이 답답해서 다음 학기 선생질을 못하겠다잖아요, 라고 나를 대신해 대답했던 것 같다. 여행을 할 때마다 나는 나에게 묻는다. 왜 또 길 위에 섰을까? 그렇게 매번 물어보지만, 나는 여전히 이유를 잘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흘러가듯 그렇게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다시 얼마간은 머물러 있고 싶어지니까, 머물러 있어도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한동안 나를 둘러싼 틀이나 구조 속에 갇히지 않고 내 생각과 행동이 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느낄 수 있으니까.

떠남의 시간이 길었던 그 날. 길 위에서의 하루가 또 그렇게 가고 있었다.


태그:#윈난여행, #차마고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